[1500자 칼럼] 덜 채우는 슬기를

● 칼럼 2012. 1. 13. 16:00 Posted by SisaHan
임진년 새해 달력이 내어 걸린 지 벌써 일주일째다. 밖에서는 흑룡의 비상(飛上)을 연일 주지시키지만 내 안에선 그저 덤덤한 한 해의 시작일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무디어 가는 것 중 하나가 세월의 흐름이라더니 역시 그런가보다. 떠들썩한 망년회에서의 감흥도 희망찬 새해의 설렘도 줄어들고 시간만 급하게 내달리고 있는 듯하다. 
부엌 싱크대 앞에 섰다. 정면에 걸린 달력에 시선이 멎는다. ‘일월’이란 활자에서 풍겨오는 뉘앙스는 차가우면서도 정갈한 느낌이다. 언뜻 설원의 소나무 숲이 연상된다. 그리고 미지에 대한 경이로움과 약간의 두려움도 엄습해 온다. 올해는 어떤 일들로 저 무언의 날들이 채색되어질까. 흐린 날보다 맑은 날이 더 많았으면 하고 희구(希求) 해 본다.
 
새 달력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 해의 염원을 풀어내어도 ‘일월’은 여전히 냉기를 띈다. 자신의 등에 업힌 무수한 날들을 희망대로 운용하라는데도 방만한 자세로 일관하는 탓 일게다. 세제 범벅인 그릇들을 손으로 굴리며 ‘식구들의 무탈과 그들이 뜻하는 바를 이루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고 때 늦은 소망을 읊조려 본다. ‘일월’은 그런 나를 차갑게 응시하며 에둘리지 말고 너 자신의 바램을 가져보란다. 
나는 손이 큰 사람이다. 맏며느리의 건성인지는 몰라도 음식은 무조건 많이 해야 직성이 풀린다. 종종 남은 음식 때문에 곤욕을 치루기도 하지만 빠듯함보다는 넉넉함이 몸에 배어 편 한대로 한다. 오늘도 큼직한 스테인리스 용기에 만두소를 버무린다. 양을 줄인다고는 했지만 십여 가지 재료가 섞이다보니 또 만만치 않은 양이 되었다. 빠듯한 시간에 만들고 쪄야할 과정이 은근히 부담으로 다가온다.
늦은 저녁 아들내외와 만두를 빚는다. 쟁반위엔 두 가지 모양의 만두들이 차곡차곡 자리를 잡아간다. 속을 두둑하게 채워 오동통한 모양새를 가진 놈들은 우리 내외 솜씨이고 좀 빈약해 보이긴 해도 주름을 잡아가며 모양을 한껏 낸 놈들은 아이들 솜씨다. ‘만두 맛은 속 맛’이라며 속을 더 채우길 채근해도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저희들 뜻대로 손을 놀린다.
 
만두를 쪄낸다. 열탕 속에서 풀려난 놈들을 한 김 식히느라 쟁반마다 그득하게 담는다. 부자 부럽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하나 손질하다보니 예전에 비해 터진 놈들이 현저히 줄어든 듯하다. 
모양새나 쓰임새나 터진 만두만큼 만든 이의 정성을 무색하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이번엔 특별한 비법을 차용한 것도 아닌데 좋은 결과가 나오니 흔쾌한 마음 되어 면면을 살펴본다. 근데 웬걸, 터진 놈은 전부 우리내외 솜씨이고 아이들이 만든 것은 하나같이 말짱하다. 더구나 생김새도 돼지와 사슴의 차이라고나 할까.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가 맥없이 결론이 난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맛을 내세우며 제한된 만두피를 넓혀가며 속을 가득채운 오랜 숙련자의 솜씨와 주어진 규격 하에서도 맛과 멋은 물론 효용성까지 잡은 비 숙련자들의 솜씨가 그것이었다. 옳지, 올해의 화두는 덜 채움이다.
주변을 관조한다. 수납장, 냉장고, 옷장, 등등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까지 허접한 것들로 포화상태다. ‘여백의 미학’이란 어구는 철학자의 소관으로 일관하고 채우기에만 열중했던 지난날을 반추한다. 
비우고 줄이면서 덜 채우는 해, 나의 2012년은 터지지 않는 만두를 만들어 가는 해이다.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