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시키는 일만 하다가는

● 칼럼 2012. 1. 14. 13:49 Posted by SisaHan
‘파블로프의 개.’ 먹이를 줄 때 종소리를 울려주면 어느 순간부터 종소리만 울려도 침을 흘리게 되는 참으로 멍청한 개다. 
파블로프는 그 개를 가지고 좀더 복잡한 실험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종소리가 아니라 원을 보여주면서 먹이를 줬다. 어느 순간부터 개는 원 모양만 보면 침을 흘리게 되었다. 이제는 훈련의 강도를 더 높여, 개가 원과 타원을 구별하도록 훈련시켰다. 원 모양을 보면 침을 흘리도록 먹이를 주고, 타원 모양을 보면 먹이를 주지 않았다. 이제 개는 원과 타원을 아주 정확하게 구별하게 되었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부터 생겼다. 짓궂은 파블로프가 타원 모양을 점점 원에 가깝게 했다. 어느 순간부터 개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원과 타원의 구별이 어려워지자 아무 때나 침을 흘렸다. 그래도 실험이 계속되자, 개는 낑낑거리기 시작했고, 우리 안을 빙빙 돌아다니며 오줌을 흘렸다. 주변에 있는 물건을 물어뜯는 등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파블로프는 신경증 환자가 보여주는 행동과 유사하다고 하여 ‘실험적 신경증’(experimental neurosis)이라 불렀다. 개도 똥오줌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면 정신병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개를 가지고 파블로프보다 더 못된(?) 실험을 했다. 우리에 갇힌 개에게 전기고문을 가하는 실험이다. 개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의 개는 코로 지렛대를 누르면 전기고문을 멈출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다른 집단의 개는 몸을 꽁꽁 묶어 꼼짝 못하게 했다. 한동안 전기고문을 가하니, 첫번째 집단은 고문이 시작되면 바로 코로 지렛대를 눌러 고문을 멈추게 했다. 두번째 집단은 그저 전기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두 집단의 개 모두 우리 문을 열어놓고 전기고문을 가했다. 고문이 시작되자 첫번째 집단의 개는 바로 문밖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두번째 집단의 개는 도망갈 수 있는데도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전기고문을 당했다. 이 현상을 셀리그먼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 불렀다. 무기력도 학습된다는 이야기다. 

‘실험적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은 개의 정신질환이 아니다. 인간의 상황을 개에게 적용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오랜 기간 처하면 누구나 이 병에 걸린다. 스스로 차를 운전하면 절대 멀미를 하지 않지만,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멀미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차가 언제 가고 언제 서는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이 그저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 개같이 한다!’고 투덜대는 거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약한 정도의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더하다. 집안 문제든 사회문제든 도무지 내가 어떤 결정에 주체적으로 관여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 어떻게 밀려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있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더이상 무기력하게 ‘바보상자’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계속 듣고 싶은 노래, 계속 보고 싶은 사람을 결정할 수 있는 까닭에 즐거운 것이다. 그깟 티브이 출연자를 결정하는 버튼 누르기도 그렇게 즐거운데, 내 삶을 내가 결정하는 일은 얼마나 설레고 흥분될까? 

시키는 일만 하면 개도 미친다. 이제라도 뭐든 스스로 결정하며 살자는 거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일에 제발 쫄지 말자는 이야기다!

< 김정운 명지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