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대통령비서실 신현수 민정수석. 연합뉴스

 

청와대에서 물러날 뜻이 완강했던 신현수 민정수석이 22일 업무에 복귀한 것은 더 이상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수석비서관 사의 파동으로 대통령의 리더십과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청와대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강조한 것은 지난 16일부터 불거진 신 수석의 ‘사의파동’이 “일단락됐다”는 점이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께) 거취를 일임했으니 (상황은) 일단락된 것이다.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이 있었고, (대통령이) 반려를 했다” “그 뒤에 (추가로) 진행된 상황이 없는 상태에서 (신 수석이) 거취를 일임했으니 대통령께서 결정할 시간이 남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수석의 업무 복귀는 본인이 마음을 바꿔 돌아온 것이지만, 여전히 사의 수리 여부를 결정하는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는 문 대통령의 재신임 여부에 대해서도 따로 밝히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주무 참모의 갈등이 외부로 노출되고 대통령의 리더십 논란으로까지 번진 사안인 만큼, 대통령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복귀를 수용하고 신임 여부를 밝히는 형식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또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문 대통령의 재가 없이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발표하고 이에 신 수석이 박 장관의 감찰을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고위 관계자는 “신 수석에게도 직접 확인했는데 ‘감찰을 건의드린 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박 장관 역시 “구체적인 인사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다”면서도 “제 머릿속에는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한다는 개념조차 없다. 수사 현안이나 인사와 관련해서 언론 플레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또한 휴가 중인 신 수석이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협의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검찰 중간간부) 인사위원회가 있을 예정인데 (신 수석이) 휴가 중에 협의를 했고, 이 사안에 대한 검토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패싱’ 논란을 빚었던 검찰 인사가 민정수석과 협의를 거쳐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법무부가 이날 오후 단행한 검찰 중간간부급(차장·부장검사) 인사 역시 문 대통령이 신 수석의 면을 세워주는 방향으로 이뤄졌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번 검찰 인사 과정을 잘 아는 한 검찰 간부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인사위 전까지만 해도 핵심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질지 확신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주말 사이 신 수석이 잔류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이번 검찰 인사의 방향도 함께 정리된 게 아니겠냐”고 짚었다.

하지만 이날 검찰 인사가 무난히 마무리지어졌다고 하더라도, 신 수석이 원했던 ‘법무부와 검찰의 안정적 협력관계’가 복원될지 미지수다. 신 수석은 휴가기간에 “박 장관과 평생 만나지 않을 것이다. 법무부와 검찰의 안정적 협력관계는 시작도 못 해보고 깨졌다”고 강경한 문자를 보낼 만큼 둘 사이는 틀어져 있다. 민정수석실 업무를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법무부는 통상적인 업무의 경우엔 법무비서관을 통해 소통하지만, 민감한 부분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이 직접 얘기해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임기가 1년여 정도 남은 상황에서 주요 정책이나 우선순위 등을 결정할 때 수석과 장관이 잘 소통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오는 7월 윤 총장이 퇴임하고 나면 후임 총장 인선부터 시작해 검사 인선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번엔 인사 폭을 소규모로 하고 7월 이후 대규모 인사를 예고한 박 장관과 또다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완 옥기원 이지혜 기자

 

신현수 복귀날 문 대통령 수사청 속도조절 주문사실 장관이 전해

박 법무장관,  ‘수사청’ 추진에 “문 대통령, 수사권 개혁 안착 먼저”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현수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등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검찰개혁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전했다.

검찰개혁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온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복귀와 맞물려 민주당이 6월 내 입법 완료를 공언해온 ‘검찰개혁 시즌2’의 일정과 강도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박 장관은 22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수사청’ 신설 등이 시기상조라는 취지의 문 대통령 입장을 전했다. 이날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수사-기소 분리는 시대적 사명”이라며 “수사-기소 분리 법안에 대한 장관의 입장을 말해달라”고 하자 박 장관이 이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박 장관은 “저는 원칙적으로 (검찰의) 수사, 기소가 분리돼야 하고 검찰은 송치된 사건에 대한 잔여 수사와 기소 여부 판단, 공소유지에 전념하고, 원칙적으로 별도의 조직이나 경찰 등에서 직접 수사를 맡는 게 맞지 않느냐는 판단”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건넨 발언을 소개했다. 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저에게 주신 말씀은 크게 두가지다. 올해 시행된 수사권 개혁이 안착되고, 두번째로는 범죄수사 대응 능력,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해선 안 된다는 차원의 말씀을 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의 직접수사권만 남긴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안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의 수사-기소’를 분리하는 수사청 신설까지 바로 나아가는 것은 이르다는 말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당내 검찰개혁특위 논의 등을 거쳐 최근 ‘3월 수사청 신설 법안 발의-상반기 관련 법안 통과’라는 결론을 낸 바 있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청와대는 신 수석 복귀 이전부터 민주당이 수사청을 급하게 밀어붙여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1월1일부터 검경수사권 조정이 시행됐는데 또다시 수사권에 손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수석이 돌아온 날 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말씀’을 밝힌 것은 수사청 입법의 완급을 조절하라는 청와대의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법사위원은 “박 장관과 여러번 얘기를 해봤는데, 문 대통령은 일단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개혁과제를 완수했고 그에 따라 형사사법체계가 많이 변했기 때문에 이걸 제도적으로 안착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 생각을 전제로 “수사청을 꺼내들면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이 반쪽짜리 개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올해 모든 이슈가 또 검찰개혁 문제로 빨려들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의 이날 발언은 청와대가 신 수석의 업무 복귀를 전한 뒤 2시간여 지나서 나왔다.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낮 기자들과 만나 “오늘 신 수석이 대통령에게 자신의 거취를 일임하고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 수석은 이날 아침 청와대 고위 참모들이 참석하는 현안회의(티타임)와 오후에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는 등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정 수석은 설명했다. 박 장관이 이날 전한 문 대통령의 뜻은 신 수석의 평소 입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민주당의 한 법사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신 수석이 최근 민주당 법사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내에서 수사청 설치가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흘러가고 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서영지 기자

 

청와대 곤혹스럽게 한 민정수석의 '월권적 몽니'

  법무장관과 갈등설 흘리고 사퇴의사 표명 휴가

  지인들에 “나는 이미 동력 상실” 문자 메시지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서울 청와대에서 신임 신현수 민정수석이 문답을 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의 인사 갈등으로 사의를 밝힌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8일 휴가에 들어간 뒤 ‘이미 나는 동력을 상실했다. 박 장관과는 평생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지인들에게 전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신 수석은 22일 청와대에 출근해 거취를 밝힐 예정이다. 청와대는 “나흘의 숙고 기간을 거쳤으니 결론을 내렸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 수석은 휴가 기간 지인들에게 사의 파동과 관련해 자신의 심경과 입장을 담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석줄로 이뤄진 메시지에는 “이미 저는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박 장관과는 평생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법무부와 검찰의 안정적 협력관계는 시작도 못 해보고 깨졌습니다”라는 세 문장이 적혀 있다. 청와대 업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이 확고해 보인다. 신 수석과 가까운 한 변호사는 전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평소 성정과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으로 미뤄 신 수석이 민정수석을 그만둘 것 같다”고 말했다.

메시지의 내용과 어투를 보면, 신 수석은 휴가 기간에 박범계 장관과 만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의 제안이 없었던 것인지, 제안했지만 거절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애초 청와대는 박 장관이 신 수석과 조율하지 않은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발표했고, 여기에 좌절감을 느낀 신 수석이 사의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이 박 장관과의 충돌 때문에 빚어진 일이란 것이다. 박 장관도 지난 18일 기자들을 만나 “마음이 아프다. 더욱 긴밀히 소통하겠다”며 신 수석의 휴가 기간에 만날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신 수석은 휴가 기간 서울을 떠나 지역에 머무른 것으로 전해진다.

신 수석의 업무 복귀를 기다려온 청와대에선 신 수석의 완강한 태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내일 검찰인사위원회도 있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데…”라며 곤혹스러워했다. 동시에 신 수석이 사의를 고집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신 수석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 사의 표명 사실을 이례적으로 알리는 등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신 수석이 마음을 돌리지 않는 것은 청와대 참모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여권 인사들 역시 공개 비판은 삼가고 있지만,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신 수석이 사의 파동으로 검찰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게 만든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짙다. 한 여권 관계자는 “신 수석이 나가면 국정 운영에 지장이 있는 만큼 복귀하는 게 최선”이라면서도 “법에는 검사 인사를 법무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재가한다고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좌진인 수석이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인사의 지분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돌아오길 바라지만 안 돌아오면 어쩔 수 없다. 민정수석이 중도에 그만두는 게 그렇게 큰일은 아니다”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주말 동안 신 수석과 박 장관의 갈등, 검찰 인사 등을 둘러싼 보도가 잇따르자 청와대는 20일 출입기자들에게 두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 “무리한 추측 보도 자제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한 언론은 이날 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정식 재가 없이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발표했고, 이에 신 수석이 박 장관의 감찰을 요구했으나 문 대통령이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이 보도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브리핑을 내려다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보고 대응을 자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청와대는 이날도 신 수석의 업무 복귀를 위해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 설득 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영지 기자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사설] ‘법무장관 평생 안 보겠다’는 민정수석, 교체가 정도다

 

검사장급 인사를 두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고 사의를 표명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를 두고 청와대가 냉가슴을 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표를 여러차례 반려하고, 더불어민주당까지 그의 업무 복귀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지만 신 수석이 21일까지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거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부터 휴가를 내고 칩거 중인 신 수석은 최근 지인들에게 “이미 저는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박 장관과는 평생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법무부와 검찰의 안정적 협력관계는 시작도 못 해보고 깨졌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자신을 만나 ‘검사장급 인사 패싱’ 논란을 해소하고 앞으로 검찰 인사에 대해 충분히 협의하겠다는 박 법무부 장관에 대한 강한 불신과 함께, 민정수석으로서 법무부와 검찰의 중재자 역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휴가를 마치고 22일 복귀하길 바라는 청와대의 희망과 달리, 수석직을 수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이 인사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그 내용이 이번처럼 속속들이 공개된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더욱이 ‘추-윤 갈등’ 봉합을 기대하고 발탁한 장관과 수석의 대립으로 청와대와 윤석열 검찰총장의 힘겨루기가 여전하다는 게 확인되고, 문 대통령의 ‘레임덕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등을 앞둔 청와대와 여권은 어떻게든 봉합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재가한다. 장관이 민정수석과 협의해온 게 관행이라지만, 이미 대통령이 재가했다고 밝힌 것을 계속 문제 삼는 신 수석의 태도는 옳지 못하다. 민정수석 업무가 검찰 인사 협의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신 수석이 업무에 복귀한다 해도 애초 기대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 수석의 언급처럼 그는 이미 동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대통령이 참모에게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임기가 1년여 남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 큰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제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신 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을 인선해야 한다. 아울러 청와대는 이번 사태가 발생한 원인을 꼼꼼히 되새기고, 인사 협의 과정 등에 관한 문제점도 철저히 개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