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총’ 규제 등 행정조처들 발표
보정장치 사용한 권총도 총기법 대상으로
신원조회 강화·공격무기 금지 등은 입법 필요
공화당과 총기협회 등 반대로 법제화 난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총기 규제를 위한 행정조처 등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일 이른바 ‘유령 총’을 당국의 통제 대상이 되도록 하는 등 총기 규제 조처를 내놨다. 지난달 조지아주와 콜로라도주에서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총기 규제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바이든 정부가 내놓은 첫 행정조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에서의 총기 폭력은 전염병이고, 국제적 부끄러움”이라며 의회 입법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우선 할 수 있는 조처들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온라인에서 부품들을 구매해 조립해 만드는 이른바 ‘유령 총’을 규제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유령 총에 쓰이는 부품들에도 일련번호를 매기도록 해서 법적으로 화기로 분류하고, 구매자 신원조회를 하도록 하며, 총기 추적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처다. 유령 총은 신원조회가 필요 없고 추적 불가능한 총기를 원하는 범죄 조직이나 우파 극단주의자들로부터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미 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은 2019년 당국에 의해 적발된 유령 총을 1만건으로 추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안정성과 정확성을 높여주는 안정화 보정장치(암 브레이스)를 사용해 권총을 소총 수준으로 개조했을 경우에 국가총기법에 의해 규제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경찰관 한 명을 포함한 10명의 사망자를 낸 콜로라도주 볼더 총격에 이 보정장치가 달린 권총이 쓰였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배석한 메릭 갈랜드 법무부 장관은 ‘유령 총’과 보정장치 총기 규제와 관련한 규칙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울러 경찰관과 가족 구성원이 위험 인물로부터 총기를 임시로 제거하도록 청원할 수 있게 하는 ‘적기법’(Red Flag Law)을 각 주들이 채택하는 것을 돕기 위해 법무부가 견본 법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총기 폭력을 막기 위해 지역사회에 10억 달러 규모의 기금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2015년 이후 공석인 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 국장에 이 기관에서 25년간 일한 뒤 총기 규제 단체에서 활동해온 데이비드 칩맨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내놓은 조처들은 상원 의원 시절부터 강력한 총기 규제를 주장해온 그가 취임 뒤 내놓은 첫걸음이다. 의회의 도움 없이 대통령의 행정조처로 가능한 것들이다. 좀더 과감한 규제 조처들은 입법이 필요하지만 공화당의 반대가 버티고 있는 의회의 문턱을 못 넘고 있다. 공화당과 전미총기협회(NRA)는 총기 보유가 헌법상 권리라며 규제에 반대하고 있다.

미 하원은 지난달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회를 강화하는 법안 2개를 통과시켰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으로 동수인 상원에 머물러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공격용 무기와 대용량 탄창을 금지해야 하고, 소송에서 총기 제조업체들이 면책받는 것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이 또한 의회를 통해 법제화되기는 쉽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갈 길이 멀다”며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총기 규제 행정조처를 발표한 이날도 텍사스주의 한 가구 업체에서 총격이 발생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전날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록힐의 한 주택에서 전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필립 애덤스가 총을 쏴 어린이 2명 등 5명이 숨졌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