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2위 억만장자 ‘꿈의 경쟁’

로켓 · 우주선 · 인터넷위성 · 관광 … 우주산업 놓고 전방위 격돌
사사건건 부딪치며 신경전…지금까진 머스크 스페이스엑스 우세
어릴 적부터 우주 꿈꾼 두 사람,  지구 밖 인류의 삶이 최종 목표

 

 

“궤도까지 올라가지도 못해요 ㅋㅋ”(Can’t get it up (to orbit) lol).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엑스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 아래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이끄는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의 달 착륙선 소개 기사를 붙였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은 달 착륙선 제조업체로 스페이스엑스를 단독 선정했다. 며칠 후 경쟁업체인 블루오리진이 이에 항의하는 문서를 제출하자, 머스크는 그다음날 조롱하듯 트위트를 날렸다.

 

지난 5일 블루오리진은 6년간 준비해온 첫 유인비행 계획을 공개했다. 몇 시간 뒤 스페이스엑스가 새로운 로켓의 첫 고고도 비행 성공 소식으로 응수했다. 둘 사이 신경전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미국 최초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가 첫 우주비행을 한 지 꼭 60년이 되는 날이었다.

 

스페이스엑스의 스타십 시제품(왼쪽)과 블루오리진의 뉴셰퍼드.

 

세계 최고 억만장자 기업가들의 대회전이 시작되려는 것일까?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 사이 신경전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로켓과 우주선 개발은 물론 우주인터넷, 우주관광 등 곳곳에서 사사건건 부딪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성과만 놓고 보면 블루오리진은 스페이스엑스의 상대가 안 된다. 2002년 출범한 스페이스엑스는 이미 로켓을 120차례 가까이 지구 궤도에 쏘아올렸고, 한 로켓을 9번이나 쓰는 등 로켓 재사용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했다. 인류 최초 민간 유인우주선을 개발해 세 차례나 우주비행사들을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냈다. 우주인터넷망을 구축할 군집위성 스타링크 1500개를 지구 궤도에 올려놓았다.

 

반면 블루오리진은 스페이스엑스보다 2년 앞서 출범했으면서도 아직 지구 궤도에 로켓을 보낸 적이 없다. 이제서야 올여름 고도 100㎞의 준궤도 우주관광을 위한 유인 비행을 시작한다. 우주인터넷망 구축은 아직 계획만 있을 뿐이다.

 

베이조스가 역전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던 게 나사 달 착륙 프로그램 ‘아르테미스’였다. 목표 시점은 2024년이다. 스페이스엑스와 블루오리진은 지난해 아르테미스 달 착륙선 제조업체 선정 경쟁에 뛰어들었다. 스페이스엑스는 재사용 로켓과 유인우주선 기술을 내세웠다. 블루오리진은 록히드마틴, 노스럽 그러먼, 드레이퍼연구소 등 1960년대 아폴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기업들과 한 팀을 이뤘다. 세간에선 나사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경쟁에 나선 세 업체 가운데 두 업체를 선정할 가능성이 높으며, 화려한 개발 진용을 갖춘 블루오리진이 포함될 것으로 보는 쪽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발표된 결과는 스페이스엑스 단독 선정이었다. <워싱턴 포스트>가 확보한 나사 문서에 따르면 예산 문제가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이었다. 나사가 스페이스엑스와 계약한 금액은 28억9천만달러다. 반면 블루오리진이 제시한 개발비는 59억달러로 알려졌다.

 

아르테미스 사업 탈락은 블루오리진으로선 이중의 타격이다. 이미 달과 화성 여행을 목표로 스타십 우주선을 개발 중인 스페이스엑스는 탈락해도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하다. 하지만 블루오리진의 달 착륙선은 오로지 아르테미스를 위해 개발하는 것이어서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블루오리진은 지난달 26일 회계감사원(GAO)에 50쪽짜리 항의 문서를 제출했다.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서로 감정적 언사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라이벌 의식이 강한 두 사람은 이미 우주산업에서 몇 차례 부딪쳤다. 지금까지 대결은 모두 머스크 승리로 끝났다.

 

첫 대결은 2013년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 39A 발사대 장기임대 계약이었다. 아폴로 우주선을 달에 보냈던 이 역사적인 발사대는 논란 끝에 스페이스엑스가 차지했다. 이어 스페이스엑스는 2014년 블루오리진이 특허를 신청한 로켓 회수 기술을 놓고 법정 소송을 벌여 대부분의 특허를 무산시켰다.

 

감정이 틀어진 두 사람은 2015년 12월 스페이스엑스 첫 로켓 회수 성공을 두고 입씨름을 벌였다. 당시 베이조스의 뉴셰퍼드 로켓은 고도 100㎞ 준궤도이기는 하지만 이미 세 차례 회수하는 기록을 세운 터였다. 베이조스가 “우주 클럽에 가입한 걸 환영한다”고 이 사실을 상기시키자, 머스크는 “블루오리진은 10년이 넘었는데도 궤도를 넘지 못했다”고 역공했다. 지난해 8월 미 국방부의 차세대 우주발사체 개발 업체 선정 경쟁에서도 블루오리진은 고배를 마셨다.

 

저궤도 우주인터넷 사업을 둘러싼 공방전도 뜨겁다. 머스크가 2018년 위성 1만2천개 군집위성으로 고도 수백㎞ 저궤도에 우주인터넷망을 구축하는 사업에 뛰어들자, 베이조스도 이듬해 3236개 저궤도 위성인터넷망 ‘카이퍼’ 구상을 발표했다. 이후 스페이스엑스가 일부 위성들의 궤도를 바꾸려 하자 아마존이 발끈했다. 아마존은 궤도를 바꾸면 카이퍼 위성과 충돌할 위험이 있으므로 이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연방통신위원회에 요청했다. 머스크는 “기껏해야 몇년 후 작동하는 아마존 위성 시스템을 위해 지금의 스타링크를 방해하는 것은 대중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연방통신위는 최근 스페이스엑스의 궤도 변경 요청을 승인했다.

 

블루오리진은 지난 5일 준궤도 우주관광을 위한 첫 민간인 탑승객 선정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우주관광이 두 사람의 새로운 대결장으로 떠올랐다.

 

우주관광 사업에서도 현재로선 나사가 공식 인정한 유인우주선을 갖고 있는 스페이스엑스가 단연 앞서 있다. 스페이스엑스는 오는 9월 4명의 첫 저궤도 민간 우주관광과 내년 초 3명의 첫 민간인 우주정거장 여행 계획을 확정한 상태다. 저궤도(700㎞) 관광은 국제우주정거장보다 높은 궤도에서 며칠간 머물다 돌아오는 여정이다.

 

블루오리진은 스페이스엑스보다 훨씬 낮은 고도 100㎞ 준궤도 관광을 추진한다. 고도 100㎞는 우주 경계선으로 불리는 공간이다. 여행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여행 시간도 아주 짧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중력 우주 체험관광이라는 장점을 내세운다. 스페이스엑스 우주관광은 수천만달러, 블루오리진 준궤도 관광은 수십만달러대다. 블루오리진은 7월20일 첫 민간인 탑승객을 태운다.

 

캘리포니아 호손의 스페이스엑스 본사(왼쪽)와 워싱턴주 시애틀 남쪽 켄트의 블루오리진 본사.

 

두 사람이 펼치는 우주사업은 기존 우주업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어릴 적 꿈을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우주는 그래서 두 사람이 걸어온 사업 여정의 종착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베이조스는 다섯살 때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을 보고 자란 ‘아폴로 키즈’ 출신이다. 어린 시절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모험담을 다룬 <스타트렉> 드라마에 빠져들며 우주를 향한 꿈을 키웠다. 그는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2016)에 카메오로 출연했을 정도로 <스타트렉>의 열렬한 팬이었다.

 

머스크는 어린 시절 은하제국 흥망성쇠를 다룬 아이작 아시모프의 에스에프(SF) 대작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탐독하며 우주를 동경해왔다. 그는 지식강연회 ‘테드’에서 “대학 시절 인류의 미래에 어떤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우주다. 머스크 역시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는 영화 <아이언맨2>(2010)에 깜짝 출연했다.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에 깜짝 출연한 제프 베이조스(왼쪽)와 영화 <아이언맨2>에 나온 일론 머스크(오른쪽).

 

두 사람은 모두 지구 밖에서 인류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지만, 추진하는 방식은 다르다.

머스크 목표는 화성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개발 중인 스타십 우주선과 슈퍼헤비 로켓으로 화성 기지를 건설하고, 100만명 화성 거주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베이조스는 우주 어느 공간에 거대한 자급자족 주거기지를 건설해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꿈을 꾼다. 1974년 물리학자 제러드 오닐이 제안한 원통형 우주 주거시설 ‘오닐 실린더’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지구 자원이 감소하고 기후 혼돈이 심해지면 지구 가까운 곳에 하와이처럼 연중 날씨가 좋은 100만명 규모의 우주 주거단지를 만들고, 지구도 오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둘 다 불과 20여년 만에 세계 최고 부를 쌓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성장 과정은 판이하다. 머스크는 이방인형, 베이조스는 모범생형이었다.

 

1971년생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막 뜨기 시작한 인터넷 사업에 매료된 그는 스탠퍼드대 에너지물리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이틀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실리콘밸리로 갔다. 당시 잘나가던 인터넷기업 넷스케이프 문을 두드렸지만 거절당하고, 1년 후 창업 세계에 뛰어들었다.

 

1964년생 베이조스는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한 데 이어, 프린스턴대를 우등 졸업했다. 대학생 시절 우주탐사개발학생연맹(SEDS) 프린스턴대 지부장을 맡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며 상당 기간 직장인으로 성공 가도를 달린 뒤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일하는 방식도 대조적이다. 머스크는 소셜미디어를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지만 베이조스는 떠벌리지 않고 결과로 말하는 편이다. 두 사람이 우주기업을 설립했을 때 보여준 모습도 그랬다. 머스크는 2002년 스페이스엑스를 출범시키며 “궁극적 목표는 사람들이 다른 행성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큰소리부터 쳤다. 반면 베이조스는 5년이 지난 2005년이 돼서야 한 인터뷰에서 블루오리진을 설립한 사실을 밝혔다.

 

스페이스엑스의 유인우주선 내부(왼쪽)와 블루오리진 뉴셰퍼드 캡슐의 내부.

 

우주산업은 투자분석가들이 첫 조만장자가 탄생할 것으로 꼽는 분야다. 그중에서도 소행성 자원 채굴 산업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한다. 모건스탠리는 현재 3500억달러 규모인 기존 우주산업 성장세만 계산해도 2040년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우주산업이라는 거대한 블루오션은 두 사람에게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시장이다. 머스크도 베이조스도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우주 자원 채굴에는 아직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자존심을 건 베이조스와 머스크의 경쟁은 우주산업의 발전을 가속하는 불씨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규제 당국과 시민들이 두 사람의 경쟁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관련 시장과 일자리가 요동치는 것은 물론이고, 우주 쓰레기, 우주 빛공해, 우주자원 독점 등 인류 공통 이익과 직결된 문제들이 계속해서 불거질 것이기 때문이다.  곽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