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백악관 야외 테이블에서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를 주메뉴로 오찬을 함께 하며 단독 회담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사진
“바이든 대통령님과 해리스 부통령님, 펠로시 의장님 모두 쾌활하고, 유머 있고, 사람을 편하게 대해주는 분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모두가 성의있게 대해주었습니다. 정말 대접받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2021년 5월22일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글)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대면 정상회담을 마치고 전용기에 오른 뒤 남긴 페북 글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여러 차례 만났지만 문 대통령이 만남 뒤에 ‘인간적인 편안함’을 강조한 적은 특별히 없었습니다.
정상회담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국 간 외교·군사·경제·문화 사안을 전반적으로 다루기 때문이죠. 심지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새 대통령과 처음 만나는 것이니 그 중요성은 더욱 컸습니다. 이를 ‘성공한 회담’으로 만들기 위해 실무진에서 사전조율에 나서지만 그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결국 정상들입니다. 정상끼리 이른바 ‘케미’가 맞지 않으면 회담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종교도 같은 문 대통령-바이든…20년 만의 한-미 ‘민주당 수반’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확대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외형상으로도 두 정상의 단독회담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를 사이에 놓고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으며, 20분으로 예정됐던 두 사람의 단독회담도 37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단독회담을 했을 때 너무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오래 논의했기 때문에 제 스태프가 ‘너무 오랜 시간을 대화하고 있다’는 메모를 계속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두 정상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정도로 말이 통한 것은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변호사 출신이자 가톨릭 신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통화 때부터 종교가 대화의 소재가 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문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라고 하시니 당선 직후 교황께서 축하 전화를 주신 기억이 난다”며 “기후변화, 민주주의 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 문 대통령과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니 우리 두 사람이 견해가 비슷한 것 같다”고 동질감을 보였습니다.
두 정상이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 루스벨트 초상화를 걸어놓았는데 문 대통령에게 그 그림을 가리키며 “문 대통령이 루스벨트 기념관을 찾아주고,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해 주는 점에 대해서도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나타냈습니다. 두 정상은 김대중-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마주하는 ‘민주당 정부’의 수반이기도 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에 대해 매우 만족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진솔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미 정상회담 뒤 백악관 고위 실무자가 전한 평가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 간 케미는 꽤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장사꾼 트럼프…문 대통령과 조화로울 수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7년 11월 7일 청와대에 도착해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반면 문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계는 사실상 파경을 맞이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노력을 “변죽만 울렸을 뿐 완전한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며 ‘할 말’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관계를 ‘그레이트 케미스트리(great chemistry)’라며 친분을 과시했던 2017년 6월 첫 만남으로부터 4년 만이었습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궁합이 맞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트럼프는 전통 우방인 나토 동맹국들과도 방위비 부담을 놓고 불편한 관계를 마다하지 않는 등 외교 관례보다는 장사꾼 흥정 같은 협상을 즐겼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무려 5배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했죠. 정상회담이나 정상 간 통화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국 정상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인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케미는 조화로운 관계라고 할 수 없다. 트럼프는 밀어붙이고 즉흥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흐름이 트럼프의 개인적인 성격과 만나 즉흥적으로 나타나는 일이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순간순간 불쾌함을 느껴도 드러내 본 적은 없다”며 “대표적인 게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는데, 문 대통령은 인내와 예의, 배려로 참고 견디면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소리 나지 않게 관리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야 그런 속내를 조금 내비쳤습니다. “문 대통령은 전직 미 대통령의 일정하지 않은 행동과 트위터를 통해서 하는 외교가 불만스러웠던 듯하기도 했다”고 지난달 문 대통령을 인터뷰한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중단한 것에 대해 “타당하고 합리적인 산정 근거가 없는 그런 요구였기 때문”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6월29일 G20 정상회의에 앞서 정상 대기실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 대통령-바이든, 외형상 최고의 케미 자랑했지만…
문 대통령에게 ‘인내’의 시간은 가고, 이제 ‘환상의 짝꿍’을 만난 것일까요? 그러나 그렇게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정상의 발언이나 제스처라는 게 모두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외교적 움직임이니까요. 바이든 대통령은 미 상원 외교위원장 등을 지내는 등 외교 쪽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입니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부통령을 지내며 본인보다 나이 어린 대통령을 8년이나 보좌했습니다. 트럼프와는 달리 동맹국들을 ‘인권’, ‘민주주의’ 등의 가치로 묶어 대중 견제 전선에 나서는 노련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미 이런 요구에 직면한 것 같습니다.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서는, 직접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중국을 겨냥한 문구가 보입니다. 외교 사정에 밝은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는 미국 외교라인보다 문 대통령에게 중국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요구하진 않았다. 그러나 중국 문제에 관해서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이 더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다”고 짚었습니다.
문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에 맞서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나라임을 설득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 같습니다.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장에서 “중국이 대만에 압박을 가하는 것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이) 더 강력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하진 않았냐”는 질문이 나오자 바이든 대통령은 답변을 준비하는 문 대통령에게 “굿 럭(행운을 빈다)”이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미국의 요구도 수용하면서 중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국의 어려운 처지를 잘 알고 있다는 취지의 농담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다행스럽게도 그런 압박은 없었다”며 곤란한 질문을 넘겼습니다.
조지 부시 “노무현 솔직화법으로 좋은 관계 형성” 회고
2005년의 노무현-조지 부시 정상회담은 최악의 정상회담으로 꼽힙니다. 대북 금융제재 등을 놓고 두 정상이 직설적인 말들을 주고받으며 설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두 정상은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며 ‘최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201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봉하마을을 찾았던 부시 전 대통령은 “대부분의 정상들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직설적으로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그래서인지 저와 노 대통령은 편하게 이야기 했다. 이러한 대화가 양국 정상 간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문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들과의 ‘케미’는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합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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