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문건에 ‘자체 수사 뒤 종결할 수 있다’ 방침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대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검사의 비위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하지 않고 자체 수사한 뒤 종결할 수 있다는 검찰의 방침이 공식 문서로 확인됐다. 검찰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를 막고 검찰개혁을 위해 출범한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한겨레>가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대검찰청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이첩 대상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검토’ 문건을 보면, 검찰은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자체적으로 불기소 처분할 수 있다는 방침을 세웠다. “수사 필요성 또는 수사 가치가 없거나 수사를 마친 시점에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여 혐의없음 등 불기소 결정을 할 경우에는 공수처에 이첩할 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수처 출범 전처럼 검사 비위 사건을 자체적으로 수사해 불기소 결정까지 내릴 수 있다는 게 검찰의 논리인 셈이다.

 

검찰은 이 문건에서 검사 비위 사건의 공수처 이첩 시기를 ‘수사를 통해 범죄 혐의가 있음을 확인한 경우’로 명시했다. 공수처법 25조2항은 검찰 등이 검사의 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검은 “‘범죄혐의를 발견한 경우’는 해당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조사, 검증 등을 통해 범죄혐의가 있음을 확인한 경우로 해석함이 타당하다”며 “검찰에서 범죄 혐의를 발견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할 수 있으며, 그 수사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에 의하여 혐의를 발견한 경우 해당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 착수에 앞서 혐의를 인지했을 때 사건을 즉시 이첩해야 한다는 공수처의 의견과 달리, 대검은 이첩 전에 검찰이 자체적으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먼저 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 문건은 검찰의 공수처 소통 창구인 대검 형사정책담당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지난달 중순 ‘검사에 대한 불기소처분 내역을 달라’는 공수처 요청을 대검이 사실상 거절하면서 회신한 공문에도 첨부됐다.

 

대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수처가 검사 비위에 대한 전속 수사 권한을 가진 게 아니란 내용이 공수처법 24조 등에도 담겨있다”고 말했다. 공수처법 24조에는 ‘수사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 범죄수사에 대해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수사처에서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하면 수사기관은 응해야 한다’는 조항과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즉시 수사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이첩도 하지 않은 검사 비위 사건의 수사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검찰의 이런 방침과 해석을 두고 공수처 설립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자체 수사를 통해 검사 비위 사건의 불기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주장은 공수처법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며 “(검찰 주장은)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자기 직역 수호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최근 5년간 검찰의 검사 사건처리 현황’을 보면, 검찰의 검사 관련 사건 불기소율은 99%에 달한다. 전체 사건 불기소율(59%)에 견줘 과도하게 높은 수준으로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송기헌 의원은 “공수처 출범 뒤 검찰은 공수처 권한을 최대한 좁게 해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두 기관 간 갈등에 따른 피해는 결국 국민의 몫이다. 기관끼리 협의가 되지 않는다면 모호한 법 조항을 개정하는 등 입법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