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오· 구본길· 양학선…'세월의 무게' 절감한 2012 영웅들
머리카락보다 중요했던 '꿈의 무대'…강유정은 왜 삭발했나
아쉬워하는 진종오= 24일 일본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10m 공기권총 예선에서 진종오가 경기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진종오는 이날 576점(평균 9.600점)으로 15위에 그쳤다.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는 금메달 13개를 획득한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 이후로 내리막길을 탔다.
당시 대회 금메달리스트로 2020 도쿄올림픽에도 출전한 선수는 '사격 황제' 진종오(42), 펜싱의 베테랑 구본길(32)과 '맏형' 김정환(38), 김지연(33), 남자 기계체조 양학선(29), 남자 양궁의 대들보 오진혁(40) 등 6명이다.
이들 중 진종오, 구본길, 양학선이 흐르는 세월을 피하지 못하고 도쿄올림픽에서 쓴맛을 봤다.
진종오는 대회 개막 후 첫날인 24일 10m 공기권총에서 15위에 머물러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이 종목과 50m 권총에서 금메달 2개를 수확했다.
이미 4차례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한 진종오는 메달 1개만 보태면 역대 한국 선수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다.
50m 권총에서 올림픽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진종오는 27일 10m 공기권총 혼성 단체전에서 추가은(20)과 짝을 이뤄 다시 메달에 도전한다.
* 공격하는 구본길= 펜싱 사브르 국가대표 구본길(왼쪽)이 24일 일본 마쿠하리 메세홀에서 마튀아스 스차보(독일)와 도쿄올림픽 32강전을 하고 있다. 구본길 패.
2012 런던 대회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세계랭킹 구본길도 같은 날 32강에서 탈락했다.
초반에 너무 점수를 내준 끝에 정작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씁쓸하게 물러났다.
아시안게임 사브르 개인전 3연패에 빛나는 구본길은 "관중이 없는데도 서는 것 자체가 긴장됐다"며 올림픽이 주는 중압감이 여느 대회와는 남달랐다고 토로했다.
* 날아오르는 양학선= 남자 기계체조 국가대표 양학선이 24일 일본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예선전에서 도마 연기를 하고 있다.
9년 만에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한 양학선도 도마 예선 9위에 그쳐 8명이 겨루는 결선 티켓을 눈앞에서 놓쳤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통(햄스트링) 트라우마 탓에 양학선은 도약에 절대적인 폭발적인 주력을 뽐낼 수 없었다.
그 탓에 회전이 부족해 고득점에 실패했다. 결선 예비 선수 1번 자격인 9위에 올랐지만, 상위 8명 중 결장자가 나와야 결선 무대를 밟는다.
진종오, 구본길, 양학선에겐 금맥을 이을 후계자가 있었다.
김모세(23), 오상욱(25), 신재환(23)이 세 선수의 뒤를 받치거나 세 선수보다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셋은 올림픽 데뷔전을 치르는 '초짜'였다.
많은 체육인들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며 내심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이미 경험한 세 선수의 관록에 더 많이 기대했다.
김모세는 10m 공기권총 결선에서 8위, 세계랭킹 1위 오상욱은 8강에서 전진을 멈췄다.
신재환은 전체 1위로 도마 결선에 올라 양학선이 이루지 못한 한국 체조 사상 두 번째 금메달의 꿈을 이어간다.
나이를 거꾸로 먹은 펜싱 김정환은 구본길, 오상욱 두 동생이 떨어진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내 한국 펜싱 사상 첫 3회 연속 올림픽 메달의 쾌거를 달성했다.
김정환은 2012 런던 대회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을 수확했다.
2012 런던 대회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김지연과 같은 대회 양궁 남자 개인전 우승자 오진혁은 도쿄에서 금메달 영광 재현에 나선다.
수술 여파로 계체 탈락 위기에 놓인 강유정, 5분 남기고 '삭발' 결심
아쉽게 끝난 올림픽 도전에도 끝내 울음을 참다…"무너지지 않겠다"
여자 유도 48㎏급의 간판 강유정(순천시청)의 왼쪽 무릎이 다시 아프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의 일이다.
2015년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았던 강유정은 부상 부위가 재발해 다시 수술대 위에 올랐다.
강유정은 국제대회에 나가지 못했고, 세계랭킹은 뚝뚝 떨어졌다.
2020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얻기 위해선 국제대회에 나가 랭킹을 끌어올려야 했다.
강유정은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5월 카잔 그랜드슬램 대회와 6월 세계선수권대회를 연거푸 치렀다.
꿈꿔왔던 올림픽 티켓을 획득했지만, 재활 훈련 없이 실전 경기를 치른 탓에 몸 상태는 크게 망가졌다.
세계선수권대회 후엔 제대로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강유정은 도쿄올림픽을 준비해야 했다. 무릎 통증을 꾹 참고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다.
한계가 있었다. 밸런스가 깨진 탓인지 체중 조절에 문제가 생겼다.
강유정은 도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식이요법과 훈련을 통해 체중을 조절했는데, 평소처럼 몸무게가 빠지지 않았다.
도쿄에 입성한 뒤에도 그랬다. 염분만 섭취하며 버텼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결국 그렇게 경기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 강유정, 아쉬운 패배= 24일 오전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여자 유도 48kg급 예선 32강 대한민국 강유정 대 슬로베니아 스탄가르 마루사 경기. 강유정이 패한 후 아쉬워하고 있다.
유도 선수들은 대회 전날에 도쿄올림픽 선수촌 계체실에서 몸무게를 재야 하는데, 이때 개체를 통과하지 못하면 실격된다.
계체 시간은 경기 전날 오후 8시. 강유정은 23일 오전부터 음식 섭취를 하지 않고 몸 안의 수분을 짜내고 또 짜냈다.
오후 6시쯤 올라간 체중계는 48.850㎏을 가리켰다. 48㎏급은 48.5㎏까지 계체를 통과할 수 있다.
2시간 안으로 빼야 하는 몸무게는 350g이었다.
여자유도대표팀 배상일 감독은 연합뉴스 통화에서 "계체 2시간을 남겨두고 350g이 남았다는 건 사실상 계체 실패와 다름없다"며 "특히 경량급 체급에선 이미 뺄 수 있는 모든 것을 뺐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강유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뛰고 또 뛰었다. 숨이 가빠 뛸 수 없을 땐 계속 침을 뱉었다.
이미 많은 침을 뱉은 탓에 입안은 바싹 말랐다. 그래도 강유정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7시에 다시 체중계에 올랐을 때 눈금은 48.750㎏을 가리켰다.
다시 뛰었다. 강유정은 뛰다가 쓰러졌다. 탈수 증세와 현기증으로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강유정은 대한체육회에서 파견한 국내 의료진의 긴급 처치를 받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도 강유정은 침 뱉기를 멈추지 않았다.
계체까지는 이제 5분이 남았다. 체중계 눈금은 48.650㎏을 가리켰다.
강유정은 "머리카락을 깎겠다"고 했다.
배상일 감독과 김정훈 코치는 급하게 문구용 가위를 가져와 강유정의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올림픽 무대에 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강유정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
머리를 하얗게 민 강유정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은 눈금을 보고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계체 통과였다.
* 강유정, 32강 패배= 24일 오전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여자 유도 48kg급 예선 32강 대한민국 강유정 대 슬로베니아 스탄가르 마루사 경기. 강유정이 패하고 있다.
다음날인 24일. 강유정은 하얗게 민 머리로 일본 도쿄 지요다구 일본무도관에 섰다.
도쿄올림픽 유도 여자 48㎏급 첫 상대는 슬로베니아의 스탄가르 마루사.
강유정은 경기 시작 27초 만에 배대뒤치기로 절반을 얻으며 16강 진출 청신호를 밝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상대 선수의 세로누르기를 막지 못하며 한판패를 기록했다.
강유정이 도쿄올림픽 무대에 선 시간은 단 2분이었다.
잇따른 부상과 수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준비 과정의 보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았다.
경기 후 만난 강유정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쉽게 말을 건네기 힘들 정도였다.
강유정은 위로의 말을 전하자 "머리카락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며 "생각보다 너무 아쉬운 결과가 나왔지만 무너지지 않고 일어나겠다'고 말했다.
울음을 참는 듯 강유정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그는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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