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 아닌 회전 운동 에너지 이용해 우주로

고고도 시험비행 성공…2024년 상용화 목표

 

   뉴멕시코주의 우주공항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에 설치한 준궤도 가속기. 스핀론치 제공

 

로켓을 수직으로 쏘아 올리는 대신, 빙빙 돌린 뒤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위성을 우주 궤도에 올리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연료 대신 운동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현실화할 경우 친환경·저비용 로켓 개발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발한 도전의 주인공은 2014년 설립된 미국 캘리포니아의 신생기업 스핀론치(SpinLaunch)다. 이 회사는 최근 뉴멕시코주의 우주공항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에서 첫 고고도 시험비행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곳은 지난 7월 리처드 브랜슨이 이끄는 우주개발업체 버진갤럭틱이 처음으로 준궤도 유인 비행을 한 곳이다.

 

새로운 로켓 발사 방식의 핵심은 원심분리기 방식의 가속기다. 원심분리기 안에서 시속 수천㎞ 속도로 로켓을 회전시킨 뒤, 그 원심력으로 로켓을 고고도로 날려보낸다. 올림픽 해머 던지기 종목 선수들이 둥그런 원 안에서 줄에 매단 해머를 빙빙 돌리다 멀리 던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스핀론치의 10월22일 첫 시험비행 장면. 원 안의 작은 물체가 시험발사체다. 스핀론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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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층권에서 로켓 엔진 점화

 

물론 원심분리기만으론 대기권을 탈출해 지구 궤도까지 오르기는 어렵다. 원심분리기로 일단 고도 20만피트(60㎞) 부근 성층권에 로켓을 보낸 뒤, 이곳에서 로켓 엔진을 점화해 위성을 궤도에 배치한다. 성층권은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연료를 적게 쓰고도 2만8100㎞의 궤도비행 속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

 

스핀론치가 시험비행을 위해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에 구축한 준궤도 가속기는 지름이 궤도 가속기의 3분의1인 33미터에, 발사관을 포함한 전체 높이가 50미터에 이른다.

 

이 가속기에 쓰인 원심분리기는 케블라섬유와 탄소섬유 소재의 장축과 이를 돌려주는 전기모터로 구성돼 있다. 먼저 원심분리기 안의 축에 로켓을 매달아 반진공 상태에서 회전시킨다. 이어 회전 속도를 높인 뒤, 최고 속도에 이르면 로켓이 발사관을 통해 밖으로 튕겨 나간다. 발사 각도는 35도 경사각이다. 반진공 상태를 만들기 위해 공기를 내보내는 데 1시간, 발사 회전 속도까지 다다르는 데 90분이 걸린다. 발사 속도는 시속 8000㎞. 이 회사는 이런 방식으로 하루 5번까지 발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핀론치의 준궤도 가속기 발사 방식에 사용되는 로켓은 길이가 3미터에 불과하다.

 

회사 설립자이자 대표인 조너선 야니(Jonathan Yaney)는 “첫 시험비행에선 가속기 전체 출력의 약 20%를 사용해 수만피트 고도(1만피트=3000m)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번 시험비행에선 로켓에 엔진을 탑재하지 않았지만 이후 준궤도 시험비행에선 로켓 엔진을 탑재할 계획이다. 사용한 로켓은 회수해 재사용한다. 야니 대표는 “이번 첫 시험비행 로켓도 회수했다”고 말했다. 스핀론치는 앞으로 6~8개월 동안 약 30번의 준궤도 시험비행을 할 계획이다.

 

 

로켓을 날려 보내는 각도는 35~40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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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는 4분의 1, 발사 비용은 10분의 1

 

야니가 가속기 방식의 로켓 발사 기술 개발에 뛰어든 것은 연료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면 로켓의 크기와 복잡성,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로켓 크기와 무게의 대부분은 연료가 차지한다. 지난달 발사한 누리호 중량의 90%가 연료였다. 따라서 연료를 덜 쓸수록 로켓 크기도 작아진다. 이번에 시험비행한 로켓의 길이는 3미터에 불과하다.

 

스핀론치는 “우리의 궤도 발사 시스템은 전기모터를 사용함으로써 연료는 4분의 1, 비용은 10분의 1로 줄이고 하루에도 여러번 발사할 수 있다”며 “이는 우주에 도달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이라고 밝혔다.

 

스핀론치는 현재 2024년 말 첫 궤도위성 발사를 목표로 궤도 가속기를 만들고 있다. 궤도 가속기의 목표는 최대 200㎏의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는 것이다.

 

야니 대표는 “궤도 발사 시스템은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가 아니라 해안 지대에 구축할 것이며 현재 부지 계약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스핀론치는 신속 위성 발사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미 국방부와 지난 2019년 궤도 발사 계약을 체결했다.

 

    회전축에 매달려 있는 로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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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론 가능하나 현실은 달라” 냉소도

 

그러나 스핀론치의 계획에 대해선 냉소적인 반응도 여럿 있다. 이들은 이론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공학자들은 로켓과 위성이 원심분리기 안에서 중력보다 1만배 강한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지에 의문을 표시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 댄 어윈 교수(우주항공공학)는 기술 전문 미디어 ‘와이어드’에 “어떤 로켓도, 로켓의 어떤 전자기기도 이를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로켓이 우주로 날아갈 때 받는 힘은 중력의 5~7배이다. 이 회사의 전직 직원은 익명을 전제로 시제품은 상대적으로 조립하기가 복잡하지 않았지만, 덩치를 키우는 건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이 매체에 말했다. 어떤 이들은 진공상태의 원심분리기에서 공기 밀도가 높은 대기로 나오면 콘크리트벽에 부딪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야니는 ‘와이어드’에 배터리, 지피에스 모듈, 망원경 렌즈, 아이폰 등을 테스트한 결과 모두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물리 법칙만이 장애물은 아니다. 장소도 문제다. 주변에 피해를 입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2018년엔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시설 구축 허가를 타진했다. 주정부는 처음엔 긍정적이었으나 환경파괴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에 입장을 바꿨다. 스핀론치는 결국 하와이를 포기했다.

 

레트 알렌(Rhett Allain) 사우스이스턴 루이지애나대 교수(물리학)는 ‘와이어드’ 기고문에서 “공학적 관점에선 가능해 보이지만 당신의 뒤뜰을 비롯해 어떤 장소에도 구축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고도 400㎞에서 궤도 비행을 하려면 속도뿐 아니라 공기 저항 등 궤도 운동에 필요한 여러가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핀론치의 로켓 내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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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 육군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 얻어

 

창업자 야니는 원래 미디어 스타트업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투자금을 확보할 수 없었다. 다른 사업을 궁리하던 중 1960년대의 군사 프로젝트 하프(HARP)에 꽂혔다. 하프는 미 육군이 거대한 총을 이용해 발사체를 우주로 쏘아올리는 프로젝트였다. 실제로 하프는 로켓 없이도 우주로 갈 수 있음을 증명했다. 길이 36미터, 무게 200톤의 하프총으로 84㎏ 화물을 탑재한 발사체를 최고 181㎞ 고도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를 보고 자신감을 얻은 야니는 몇몇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2016년 개념증명 시스템을 만들었다. 당시 처음으로 완성한 원심분리기는 지름 40피트(12미터)였다.

 

스핀론치가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이번 고고도 시험비행 성공으로 중요한 첫 걸음은 뗀 셈이다. 스핀론치는 지금까지 구글, 에어버스 등으로부터 1억1천만달러(약 1300억원)의 투자금을 모집했다. 곽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