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탈출’ 여자축구 선수들이 유독 많을 수 있었던 건…

 레전드 포팔·나딤, 후배들의 ‘탈 아프간’ 용기 북돋다

포팔, 선수 엑소더스 지원…‘걸 파워’ 조직해 난민 여성 도와

스타 나담은 ’롤 모델’ 구실, 미국 리그 활약하며 의사 꿈도

 

지난달 18일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여자 청소년 축구 선수와 가족들이 영국 런던 공항에 도착해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칼리다 포팔 트위터 갈무리.

 

지난 8월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아프간 여자 축구 선수들의 집단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선수 수십명 혹은 가족을 포함한 100명 넘는 인원이 카타르, 포르투갈, 영국 등으로 탈출하는 사례가 이어지며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왜, 유독 여자 축구 선수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을까?

 

첫 시작은 탈레반 함락 직후인 지난 8월 말에 있었다. 아프간 여자 축구 대표 선수와 가족 등 70여명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도움으로 아프간을 탈출했다. 9월에는 여자 청소년 축구팀 선수들이 포르투갈로, 10월에는 여자 대표팀 선수 20여명과 그 가족 등 100여명이 카타르로 탈출했다. 지난달에도 청소년 축구 선수와 그 가족 등 100여명이 파키스탄을 거쳐 영국으로 이동했다.

 

여자 축구 선수들이 아프간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국가와 단체는 물론 유명 인사들의 협력과 지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간 출신 두 여성 축구인이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칼리다 포팔. 본인 트위터 갈무리

 

‘걸 파워’ 이끄는 칼리다 포팔, 탈출 주도

 

칼리다 포팔(34)은 자신이 이끄는 비영리 단체와 관계망을 활용해 아프간 여자축구 선수들의 탈출을 여러 차례 주도했다. 본인 역시 아프간 난민 출신인 포발은 현재 덴마크에 정착해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 체육 교사였던 엄마에게 몰래 축구를 배운 뒤 탈레반이 1차 집권(1996~2001)을 끝내고 물러가면서 2007년 아프간 축구협회의 도움으로 여자축구 리그를 만들었다. 그는 아프간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기도 했다.

 

뛰어난 실력은 곧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반여성주의자 등의 살해 표적이 됐고 위협에 시달리다가 결국 2011년 아프간을 떠났다. 그는 2017년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떠나지 않으면 총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만 말씀 드리고 아프간을 떠났다”고 했다.

 

인도와 노르웨이를 거쳐 덴마크에 정착한 포팔은 무기력했던 난민 센터에서의 경험을 살려 ‘걸 파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스포츠를 통해 무기력과 불안 상태에 놓인 난민 여성들의 체력과 자존감을 되살리는 활동을 했다. 이 단체를 통해 국제 인권단체 등과 협력하는 경험을 쌓았다. 이는 최근 아프간 여자축구 선수들의 탈출에 큰 도움이 됐다.

 

포팔은 카불 함락 직후인 8월 중순 <비비시>(BBC)와 <에이피>(AP) 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여자운동 선수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고, 지난달 18일 청소년 여자축구 선수 등 130여명이 영국 런던 공항에 오자 “큰 기쁨의 날”이라며 이들의 도착을 축하했다.

 

나디아 나딤. 파리 생제르맹 누리집 갈무리

 

축구, 의학, 9개국어…아프간 소녀들 축구로 이끌어

 

포팔이 아프간 여자축구 선수들 탈출을 직접적으로 주도했다면, 아프간 출신으로 덴마크 국적의 세계적인 축구 스타 나디아 나딤(33)은 아프간 여성들을 축구의 세계로 끌어들인 롤모델 역할을 했다.

 

나딤은 12살에 아프간을 탈출해 덴마크에 왔다.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가 2000년 탈레반에 처형당하면서 온 가족이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 위조 여권을 활용해 파키스탄-이탈리아-영국을 거쳐 덴마크 난민 캠프에 도착했다.

 

난민 캠프에서 축구에 몰두하기 시작한 나딤은 2005년부터 덴마크 여자 축구팀에서 공격수로 활동했고, 이후 스코틀랜드와 미국, 영국, 프랑스 리그를 거쳐 현재 미국 리그에서 뛰고 있다. 2009년부터 덴마크 여자축구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총 99경기에 출전해 33골을 넣는 등 덴마크 여자 축구계의 레전드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의 성공 경험은 ‘롤 모델’로 작용해, 많은 아프간 소녀들을 축구의 세계로 이끌었다. 아프간 축구리그를 운영했던 샤픽 가와리는 2017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나딤은 많은 아프간 소녀들, 특히 축구 선수들의 롤 모델”이라며 “해외에서 활동하는 아프간 운동선수와 예술가들은 모두 아프간 청소년 수만 명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는 2007년 여자 국가대표 축구팀이 처음으로 네팔과 해외 경기를 치렀고, 같은 해 여자 축구리그가 꾸려졌다.

 

나딤의 인생 경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축구 선수로 뛰면서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아프간 언어인 다리어를 비롯해 덴마크어, 영어 등 9개 국어를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지난 9월 (CNN)과 인터뷰에서 “ 나는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원하지 않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며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평등하게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