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불똥 파이시티

최시중, 청와대 걸고 승부수‥검찰 칼끝 주목

“올 것이 왔다.” 23일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던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왕차관’ 박영준(52)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수상한 돈거래 의혹이 불거진 뒤 검찰 내부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 내내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시달리던 검찰은 과연 이번 수사로 그동안의 오명을 씻을 수 있을까?
 
지난 19일 다소 느닷없었던 ㈜파이시티 압수수색을 통해 집권 4년차 ‘레임덕’에 빠진 정권 실세의 측근 비리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검찰 안팎에서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이번 사건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다. 정권 말기 차기 대권 레이스가 시작될 때마다 청와대 권력의 비리가 불거지는 일이 5년마다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이 줄줄이 구속 수감됐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신성해운·태광실업에 대한 수사에서 시작된 측근 비리 수사가 결국 대통령 본인을 겨누기도 했다. 집권 말기에는 검찰이 대통령 측근을 수사하게 마련이라는 학습 효과가 생기게 된 셈이다.
 
특별수사에 밝은 검찰 관계자는 “이런 수사 한두번 해본 것도 아니고, 정권 말기엔 나오면 나오는 대로 간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수사를 맡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도 최대한 속도를 내 사건을 수사할 계획이다.
더구나 검찰은 이미 구체적인 진술과 물증을 확보한 상태다.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장한테 돈을 건넸다고 주장하고 있는 ㈜파이시티 대표 ㅇ씨는 △돈의 전달 경위 △액수 △목적 등을 상세하게 털어놓고 있다. 검찰은 돈이 전달될 당시의 사진까지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빼도 박도 못할’ 정황과 진술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최 전 위원장도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언론을 통해 시인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정도 증거가 있다면 알선수재를 입증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전 위원장의 발언은 검찰에 또다른 숙제를 남겼다. 그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가 관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금품 수수 사실은 인정하되, 범죄 의도를 부인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그는 “당시 받은 돈은 대통령 선거 당시 ‘여론조사’ 용도로 쓰였다”고 밝혔다. 검찰의 금기 단어 가운데 하나인 ‘대선자금’을 언급한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검찰에 들고 와, ‘너희가 열 수 있겠느냐’며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심산으로도 비친다.
 
한상대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가 이번 수사에 끝까지 의지를 보여줄지도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한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동문으로,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검찰총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검 관계자도 “한 총장이 평상시 매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긴 하지만, 자신을 총장으로 임명해준 인사권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수 접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점차 구심력을 잃어가는 청와대의 자장이 이번 수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상납끊자 사업권 강탈
파이시티측 주장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 일로를 걷고 있는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이 불거진 뒷배경에는 지분과 사업권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 있었다. 강남 한복판을 개발하는 2조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두고 물밑 힘겨루기가 진행된 셈이다.
24일 개발사업을 추진한 ㈜파이시티 쪽 관계자들은 <한겨레>와 만나, “수십억원을 상납받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돈줄을 끊자, 곧바로 사업권 자체를 강탈했다”고 주장했다. 2005년 12월부터 정기적으로 이뤄진 상납이 끊기자, 오히려 “지분을 내놓으라”고 협박해 왔다는 것이다.
 
이 업체 한 관계자는 “2008년 회사에 자금난이 닥쳐 상납을 끊자, 최 전 위원장한테 돈 전달을 해왔던 브로커 이씨를 통해 지분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해 왔다”며 “지분 이전 요구에 응하지 않자, 이후에는 채권은행단 주간사인 우리은행을 통해 우회적으로 압박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결국 업체 대표 ㅇ씨는 2009년 5월29일 지분 대신 사업 이익금 800억원을 넘긴다는 약정서에 서명을 했다. ㈜파이시티 쪽에서는 “이같은 약정 역시 강제로 맺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퇴임직전 시설변경 승인

최시중·박영준 두 현 정권 실세의 거액 수수 파문을 불러온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터 복합유통단지(파이시티) 조성 사업과 관련해, 서울시가 2006년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위원들의 반대에도 대규모 점포 건설을 허용하는 시설 변경 승인을 밀어붙인 정황이 24일 드러났다. 터미널 연면적보다 4배 넘는 판매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해준 이런 결정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임기 종료를 50일 앞두고 확정됐다. 
파이시티 사업 관련 안건이 상정된 2005년 11월24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소관 부서인 서울시 도시계획국은 ‘화물터미널에 대규모 점포를 들이는 것은 경미한 사항’이라며 도계위 심의·의결 안건이 아닌 자문 안건으로 올렸다.  이에 몇몇 도시계획위원들은 “중요사항의 변경에 해당한다”, “엄청난 안이다. 경부고속도로 옆인데다 교통난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세부시설 변경이므로 자문사항’이라며 안건 논의를 독려했다.
 
이어 서울시는 13일 뒤인 2005년 12월7일 도계위에 파이시티의 대규모 점포 용적률(연면적을 대지면적으로 나눈 비율) 400% 이하로 하는 안을 자문안건으로 올렸다. 일부 도시계획위원들은 해당 지역이 도시계획상 화물터미널 터인데도 “대규모 점포 연면적이 18만7300㎡로 화물터미널 면적(3만9800㎡)의 4배가 넘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교통 문제가 우려된다”, “서울 관문에 서울에서 세번째로 큰 건물이 들어서는데, 이렇게 급속히(13일 만에) 안건이 올라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사회자는 교통 문제를 시 관련 부서가 보완하도록 하는 조건으로 하자며 회의를 끝냈다. 서울시 내부 의견수렴 과정에서 ‘교통영향 의견’을 냈던 정순구 당시 서울시 교통국장은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시설변경을 하면 토지가치가 훨씬 올라간다. 로비 의혹 등 위험이 있어 ‘애초 화물터미널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침을 직원들에게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