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친, 2조달러 사회복지·기후변화 지출 법안에 반대

바이든 핵심 공약에 타격…진보진영 “바이든 실망”

‘CNN’ 조사,  “66%가 바이든 리더십에 의구심”

인플레이션 · 공급망 차질·주거비 상승 등 우려

파우치 “오미크론 때문에 힘든 몇주·몇달 될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15일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더 나은 재건’을 위한 사회복지 지출법안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취임 11개월째를 맞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국내외 난제들에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며 극심한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다. 대외적으로 중국과 전략 경쟁, 러시아와 갈등 고조라는 ‘두개의 전선’, 국내적으로는 코로나19 재확산, 인플레이션, 대표 공약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법안 통과 지연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여당인 민주당의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주)에게 크게 한 방 맞았다. 최대 공약인 ‘더 나은 재건’을 위한 2조달러(약 2400조원) 규모의 사회복지 지출법안에 대해 맨친 의원이 <폭스 뉴스> 인터뷰와 개인 성명을 통해 재정적자 확대 우려 등을 이유로 “지지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현재 상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수가 50 대 50이기 때문에, 공화당이 일제히 반대하는 가운데 민주당에서 맨친 의원 한 사람만 반대하면, 지출법안은 통과될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맨친 의원 등을 의식해 애초 3.5조달러 규모였던 사회복지 지출법안을 2조달러로 줄이는 타협안을 내놨지만, 이마저도 걷어찬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무너진 `미국을 재건하겠다’고 선언하며 지난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지난달 통과된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은 미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회간접자본을 재건하겠다는 것이고, 지금 추진 중인 사회복지 지출법안은 사람과 환경을 재건하겠다는 뜻이다. 지출법안엔 △자녀세액공제 확대 △무상 유치원 △탁아수당 강화 등 중산층 이하 가정 지원을 위한 내용과 기후변화 대응 예산(5550억달러) 등이 담겨 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 예산엔 석탄 등 화석에너지를 풍력·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세금 혜택 3200억달러를 지원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석탄 중개업체 가문인 맨친 의원은 이 법안에 담긴 친환경 조처에 반대해왔다.

 

맨친 의원의 반대 선언에 백악관은 비상이 걸렸다. 젠 사키 대변인은 일요일이던 당일 오후 성명을 내어, 바이든 대통령과 맨친 의원이 회담할 때 백악관은 맨친 의원이 타협 가능한 태도로 대화를 계속하는 데 동의했다고 믿었다며 “갑작스럽고 설명할 수 없는 입장 번복이고 약속 위반”이라며 놀라움과 강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회복지 확대와 기후변화 대응은 정권의 핵심 공약이라는 점에서, 법안이 좌절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입게 될 정치적 타격은 헤아리기 힘들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10일 전세계 110여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도 “미국 가정에 좀더 숨 쉴 공간을 줄 것”이라며 법안 통과를 희망했다.

맨친 의원의 반대 선언은 기록적인 인플레 등 경제 불안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는 가운데 나왔다. <시엔엔>(CNN)이 미국 성인 1256명을 온라인과 전화로 조사해 19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6%가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응답자 가운데 75%가 각자의 지역사회 경제 상황을 걱정한다고 대답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난달 16~22일 한 조사에서는 “어느 당의 경제 정책이 더 낫냐”는 질문에 공화당(43%)이라는 대답이 민주당(34%)이란 답을 앞질렀다.

 

미국의 여론조사 분석업체인 ‘538’의 각종 조사 결과 종합집계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8월 초까지 50%대로 부정 평가보다 높았다. 하지만 혼돈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태가 벌어진 8월 말을 기점으로 이 흐름이 역전됐다. 지난 17일 현재 부정 평가는 50.5%, 긍정 평가는 43.9%다.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으로 다시 폭증세를 보이는 코로나19 확진자 흐름 또한, 다음달 20일로 취임 1돌을 맞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 “미국은 죽음의 바이러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서 있다”고 선언했지만, 19일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오미크론 때문에 우리가 겨울로 더 들어갈수록 힘든 몇주, 몇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8월 말 아프간 충격 때처럼 ‘두개의 전선’에서 불길한 뉴스가 들려올 경우 바이든 대통령은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정의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