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종인과 윤석열의 공생

● 칼럼 2021. 12. 23. 02:2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21일 오후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임선대위원장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신승근 | 정치에디터

 

국민의힘을 혼돈에 빠트린 이준석 대표와 조수진 최고위원의 ‘선대위 격돌’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자기 정치에 몰입한 이 대표를 탓하는 이들, 대선 후보를 팔아 완장질하는 조 최고위원을 비난하는 이들로 갈린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정권교체가 물 건너간다”고 근심하지만 분란은 필연에 가깝다. 변한 듯하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국민의힘의 현실을 드러낸 블랙코미디일 뿐이다.

 

선대위 공보단장의 지시 불이행을 지적하며 체계와 계통을 문제 삼은 이 대표의 지적이 틀린 게 없다. 하지만 당대표가 대선에서 손을 떼는 처방을 할 만큼 중대 사안인지 의문이다. 정당엔 실세, 이른바 ‘핵심 관계자’가 있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는 대선에선 더욱 그런 존재가 힘을 쓴다는 걸 보수 정당에서 10여년 구르며 성장한 이 대표가 더 잘 알 것이다.

 

더욱이 지금 국민의힘은 반문재인 세력이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확실한 주인이 없는 정당에 모여든, 이익공동체에 가깝다. 누구는 용광로, 누구는 잡탕밥이라 부른다. 사실 ‘윤석열-김종인-이준석 삼각편대 선대위’는 정치 초년병과 킹메이커를 자처한 원로, ‘이대남 정서’에 기대 성장한 30대 당대표가 힘겨루기를 거듭하며 급조한 ‘대선용 프로젝트 팀’ 성격이 강하다.

 

서로 이해도 다르다. 윤 후보는 ‘조국 일가’ 수사 등으로 ‘공정과 정의’라는 상징자본을 구축했지만 독자 세력화엔 실패했다. 결국 “별의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김종인 위원장과 ‘경선버스 정시 출발론’을 외친 이준석 대표의 압박에 밀려 국민의힘에 몸을 실었다.

 

김 위원장과 이 대표는 내부에서 대안을 찾지 못해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인 그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안에서 존재감을 키워온 이 대표는 진짜 당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가 “선거에 대한 무한 책임은 후보자가 갖게 된다”며 선대위 직책을 내던졌지만 당대표 사퇴 요구엔 “내가 왜?”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건 본심을 잘 드러낸 장면이다.

 

김 위원장도 국민의힘엔 나름 지분이 있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고,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국민의힘을 기사회생시켰다. ‘보수 꼴통당’ 이미지를 탈색한 것도 그의 기여가 제일 크다. 그러나 그를 불편한 존재로 여기며 비토하는 이들도 많다. 상당수는 윤 후보의 ‘핵심 관계자’다. 이 대표가 당무를 거부한 채 제주로 울산으로 떠돌며 윤 후보와 힘겨루기 한 끝에 가까스로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다시 입성할 수 있었다. 이번 갈등은 한배를 탄 김종인·이준석 팀과 윤 후보와 ‘윤핵관들’이 울산 회동을 통해 대강 봉합한 균열이 18일 만에 다시 깨진 것일 뿐이다.

 

조 최고위원의 완장질은 갈등을 폭발시킨 불씨일 뿐이다. 모든 문제는 윤 후보에게서 비롯했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정작 아내의 허위이력엔 내로남불 행태를 보이며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윤 후보 때문에 분란은 시작됐다. 조 최고위원의 공보단장직 사퇴로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을 크게 키운 것도 윤 후보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라며 조 최고위원을 보호하려 했다. 이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하자 김 위원장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 건 대통령이 되려는 윤 후보의 자질과 판단력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했다. 국민의힘 게시판에 ‘대선 후보 교체’와 ‘당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상반된 글이 빗발치는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이번에도 김종인 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나선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그립을 세게 쥐겠다”며 선대위 개편을 공언했고, 윤 후보는 추인했다. 유력 주자와 협력하고 갈라서기를 반복해온 김 위원장은 일단 후보와 공생을 모색하고 있다. 공정경제를 내걸고 네거티브 중단을 지시하는 김 위원장의 존재는 위기의 윤 후보가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가릴 수 있는 그럴듯한 가림막이다. 그러나 윤 후보 스스로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실현할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측근들도 완장질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당원과 국민을 설득하는 겸손함을 먼저 배워야 한다. 윤 후보와 ‘윤핵관들’의 자질과 능력에 의문을 키운 유권자들도 더욱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