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웃도는데도 오로지 ‘반문재인’을 외치면 정권교체가 되리라 생각하는 단순명쾌함은 그렇다 치자. 탄핵 당한 정당이 다시 집권을 호소하려면, 적어도 ‘이번 대통령후보는 국정을 망치지 않을 자질과 태도를 갖췄다’고 국민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윤석열 후보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논란을 사과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박찬수 | 대기자

 

윤석열 후보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리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나온다. 선거란 게 언제나 요동치게 마련이고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신문·방송이 앞다퉈 보도했던 걸 기억하면, 지금의 출렁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대선을 70여일 앞둔 시점에 맞닥뜨린 윤석열 후보의 위기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는 배경엔, ‘과연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 운영을 잘해낼 수 있겠는가’라는 ‘대통령 자격’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잘하거나 못하는 범위를 넘어서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국정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참담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으리란 불안감이 윤 후보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국민의힘은 5년 전 탄핵 이전의 새누리당에서 별로 바뀐 게 없다. 지난 6월 전당대회에서 36살의 청년 이준석을 당대표로 선출한 게 변화의 상징인 양 포장됐지만, 그 젊은 당대표는 지금 윤 후보 측근들의 조리돌림 속에 대표직에서 쫓겨날지 모를 처지에 놓였다. “나는 윤석열 후보 지시만 따른다”며 당대표를 치받은 조수진 국회의원의 행동에서, 박근혜 대통령 시절 오로지 ‘박심’을 쫓으며 충성 경쟁을 벌였던 수많은 ‘친박’, ‘진박’ 인사들의 잔영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허위 이력’ 파문에 휩싸인 김건희씨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제가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검사라고 하기에 무서운 사람인 줄만 알았습니다. …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해 밥은 먹었냐, 따뜻하게 입어라 늘 전화를 잊지 않았습니다”라며 연애편지 읽듯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걸 보노라면, 대체 윤 후보 캠프엔 부인의 기자회견문 하나 제어할 수 있는 참모가 없는 건가 새삼 놀라게 된다. 그렇게 대선 후보의 눈에 들어 권력을 잡으면 한자리 하겠다는 사람들로 가득찬 정당이 집권했을 때 나라가 어떻게 될지는 박근혜 정부가 이미 똑똑히 보여줬다.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과 논문 표절 의혹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며 “죄송하다”는 한마디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비슷한 사안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를 가혹하게 수사하고 사법처리한 게 바로 검찰총장 시절의 윤석열 후보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정과 정의’의 상징으로 떠오른 윤 후보가 자기 아내의 허물에 대해선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고 무심하게 넘기는 모습에서, 그에게 덧씌워진 가공의 이미지는 현저히 빛이 바랜다. 비록 결혼 전의 일이지만 장모의 사기 및 건강보험 부정수급 사건이 왜 윤 후보가 검사로 재직할 때는 죄가 되지 않다가 그가 검찰을 떠난 뒤에야 사법적 단죄를 받는 건지 국민은 의구심을 갖는다. 국민의힘이 그토록 비난했던 ‘내로남불’의 극치가 바로 윤석열 후보인 것은 아닌가.

 

대통령 선거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큰 선거다. 설령 아내와 장모의 문제가 있더라도 또는 자식이 속을 썩일지라도 쉽게 판세가 흔들리지 않는다. 윤석열 후보 본인이 지도자로서 능력을 갖췄다면, 그래서 젊은 이준석이 튀고 늙은 김종인이 우왕좌왕하는 낡은 정당을 휘어잡을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지금 이렇게 휘청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문제의 본질은 윤석열 자신에게 있다. 며칠 전 유튜브에 올라온 <삼프로티브이>의 윤 후보 대담을 보면, 그가 경제 현안을 제대로 고민해본 적은 있는지, 오로지 근거 없는 자신감에만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묻는 패널들의 질문에 윤 후보는 “실력 있는 정부는 시장에 개입을 해도 문제가 없지만 실력 없는 정부는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라고 답했다. 자신이 집권하면 검찰 수사를 할 때처럼 언제든지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뜻인가. 그 실력이 뭔지를 설명해야 국민이 믿고 투표할 텐데, 실력을 보일 생각은 안 하고 “내 실력을 의심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데서 검사 특유의 독선과 오만을 엿보게 된다. 그래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에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 맡겼다”고 칭찬한 거 같은데, 윤 후보나 주변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런 권한 위임도 위험해 보일 뿐이다.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웃도는데도 오로지 ‘반문재인’을 외치면 정권교체가 되리라 생각하는 단순명쾌함은 그렇다 치자. 탄핵 당한 정당이 다시 집권을 호소하려면, 적어도 ‘이번 대통령후보는 국정을 망치지 않을 자질과 태도를 갖췄다’고 국민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윤석열 ‘폭주’…“독재정부는 산업화, 이 정부는 바보들 데려다 나라망쳐”

 

TK 찾은 윤, 막말 수위 높여…안동 선대위 출범식서 즉흥연설

“토론 같잖다” “조사하면 감옥 갈…” 연이틀 이재명 향해 비난 퍼부어

문 정부 겨냥 “무식한 3류 정권” “북 주사이론 집단” 색깔론도

 

민주당 “초조한 나머지 대선 진흙탕 몰아넣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29일 1박2일 일정으로 대구·경북 지역을 찾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무식한 3류 바보들을 데려다 나라를 망쳐놨다”며 “독재 정부가 산업화 기반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두고는 “(대장동 의혹을) 조사하면 감옥에 갈 (사람)” “(이 후보와) 토론하는 것은 어이없고 같잖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최근 부인 김건희씨 허위 경력 파문 등으로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하자 초조해진 나머지 보수층에 호소하려 발언 강도를 위험수위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이날 경북 안동의 경북도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원고 대신 즉흥연설로 문재인 정부 비판을 시작했다. 윤 후보는 “저와 제 처, 누이동생까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통신 사찰을 당했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검찰개혁 해서 권력 남용 막고 국민 위한 공정한 검찰 만들겠다며 공수처를 만든 거 아닌가. 결국 국민을 속였다. 사찰 정보기관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당 의원들 60% 정도가 통신 사찰을 당했다”며 “제가 볼 때는 대선도 필요 없고, 이제 곱게 정권 내놓고 물러가는 게 정답이지”라고 했다.

 

색깔론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현 정부를 겨냥해 “좌익 혁명 이념, 북한의 주사이론 배워서 민주화운동 대업에 끼어 마치 민주화 투사인 것처럼 지금까지 끼리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이렇게 살아온 그 집단들이 이번 문 정권 들어서서 국가와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전문가 들어오면 자기들이 해먹는 데 지장이 있으니 무식한 3류 바보들 데려다가 정치를 해서 나라 경제 망쳐놓고 외교·안보 뭐 전부 망쳐놨다”며 “권위주의 독재 정부는 우리나라 산업화 기반 만들었다. 이 정부는 뭐 했나. 정말 가지가지 다 하는 무능과 불법을 동시에 다 하는 엉터리 정권”이라고 맹비난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북은 핵개발 계속하고 미사일 펑펑 쏘는데 종전선언 하면 뭐 하나. 떡이 나오나, 국민의 먹거리가 나오나”라며 비난했다. 이어 “자유민주주의 지키려고 하는 것인지 이 나라를 사회주의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인지”라며 색깔론을 동원하며 종전선언을 비판했다.

 

윤 후보는 전날에 이어 이재명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토론 제안을 거부했다. 그는 “(이 후보가 대장동) 특검을 왜 거부하느냐. 죄를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것이다. 진상을 밝히고 조사를 하면 감옥에 가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에서 후보가 저보고 토론을 하자고 하더라. 제가 바보입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음습한 조직폭력배 이야기, 잔인한 범죄 이야기를 다 밝히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재명 후보의 공약 수정을 언급하면서 “집권여당 후보는 잘하는 게 한가지 있다. 변신술이다” “제가 이런 사람하고 국민들 보는데 토론을 해야겠나. 어이가 없다. 정말 같잖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전날도 이 후보를 “중범죄가 확정적인 후보자”라고 칭했다. 윤 후보는 이 후보가 대장동 사업의 핵심이며 “관여한 사람들이 줄줄이 자살한다”며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상규명하고 불법적으로 약탈해 간 재산을 국민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당원들에게 “뭉치면 정권교체고 흩어지면 국민약탈”이라며 “정권을 회수하지 못하면 정말 한국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빠진다”고 지지를 당부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후보가 마지막으로 기댈 것은 네거티브 전략밖에 없냐”며 윤 후보를 비판했다. 조오섭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돌아서는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경북까지 내려가 경쟁 상대에게 색깔론을 덧씌우고 독재의 낙인을 찍으려는 것”이라며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선거를 진흙탕으로 몰아넣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둠으로 덮으려는 무책임한 책동을 중단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공사가 중단된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아 공사 재개를 약속했다. 그는 원자력발전 비중을 30%대로 유지하고 원전 수출을 통해 일자리 1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울진 안동/배지현 기자, 최하얀 기자

 

“내가 하면 수사, 남이 하면 사찰?”…윤석열 검찰 땐 282만명 통신자료 조회

 

여야 모두 제도 개선 없이 ‘사찰’ 주장만 반복

국민의힘 “공수처, 의원 78명 통신자료 조회”

윤 “게슈타포나 할 일…대통령되면 책임 묻겠다”

정작 서울중앙지검장 때는 홍준표 비서 조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3월4일 검찰총장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들머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소속 의원 105명 가운데 최소 78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며 ‘불법 정치 사찰’을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씨도 조회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 사안을 두고 “공수처 존폐 검토”를 언급했던 윤석열 후보는 29일 “대통령이 되면 공수처의 불법 행위에 책임있는 자들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공수처가 게슈타포나 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조회 대상인 된 ‘통신자료’는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서비스 가입·해지일 등이다. 공수처가 법원 허가 없이 간단한 사유만 적어 이동통신사에 요청해 받아낸 것들이다. 검찰 등 수사기관은 우선 법원 영장을 받아 수사 대상자의 통화 내역을 확보한다. 통화 내역에는 수사 대상자가 통화(발신·수신)한 누군가의 전화번호와 통화 시간 등이 뜬다. 수사기관은 이 전화번호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동통신사에 통신자료를 요청해 이름 등을 확인한다. 범죄와 연관이 있는 인물로 드러나면 추가 수사가 이뤄지지만 대부분은 일반적인 통화여서 버려진다.

 

국민의힘은 공수처의 고발 사주 의혹 수사 대상이다. 지난해 4월 ‘손준성 보냄’ 텔레그램 메시지를 이용해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달된 고발장이 그해 8월 당 공식계통을 통해 법률자문위원장이던 정점식 의원실을 거쳐 당 법률자문위원에게 전달됐다. 이 고발장은 당 공식직인이 찍힌 뒤 대검찰청에 접수돼 실제 수사와 기소까지 이뤄졌다. 피의자로 입건된 윤석열 후보와 김웅 의원 등 수사 대상자와 통화한 불특정 다수에 대해 공수처가 통신자료 조회를 했고, 이 과정에서 의정활동 등으로 통화가 잦은 국민의힘 의원들 다수가 그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공수처가 통신자료 조회 논란에 대해 “수사 중인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면서도 “고발 사주 의혹 수사”를 언급한 이유다.

 

사찰이 성립하려면 처음부터 대상자를 특정해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져야 하는데 통신자료 조회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잘 알고 있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한 2019년 하반기부터 2020년까지 1년6개월 간 검찰은 모두 282만6118건(전화번호수 기준)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수백만명의 국민이 통신자료 조회를 당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나갔다.

 

서울중앙지검은 2017년 3월과 4월 두 차례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 수행비서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윤석열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장이던 그해 8월에도 수행비서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졌다. 홍 전 대표 쪽은 “사찰”을 주장했지만,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대상자와 여러 차례 통화한 전화번호 가입자 인적사항을 확인하다 그 중 한명이 수행비서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사찰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조선일보>는 “통신자료 조회는 통신 수사의 한 수단일 뿐 특정인을 겨냥한 사찰로 단정짓기 어렵다. (사찰 주장 등) 여야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기보다는 통신조회 남용 방지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통신자료 조회가 구체적 통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시기에 누가 누구와 통화하는지 등 ‘인적 네트워크’를 재구성할 수 있다. 수사·정보기관이 이를 다른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법무부와 경찰청 등 수사기관은 “수사 사실 노출 우려”를 이유로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당사자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도록 하는 등의 개선안에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검찰 출신이 대거 포진한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와 국민의힘에서도 이 문제를 ‘불법 정치 사찰’로 선거 쟁점화할 뿐 정보·인권단체 등에서 10년 넘게 요구해온 통신자료 조회 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선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야당이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인·정치인 등에 대한 수사·정보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를 ‘불법 사찰’로 규정했지만, 거대 여당이 된 지금은 조회 근거가 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통신자료 조회 제도 개선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온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지난 27일 “통신자료 제공 요청은 위헌적인 제도임에도 윤석열 후보 자신이 검찰총장직에 있었던 검찰은 물론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일상적으로 자행해 온 것이다. 오히려 규모로 따지면 공수처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다. 윤 후보 발언과 같이 사찰이 된다면 검찰총장 재직 시절 이뤄진 검찰의 통신자료 요청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하면 수사, 남이 하면 사찰인가”라며 통신자료 조회에 대한 영장주의 도입 등 근본적 개선 방안을 촉구했다. 전광준 기자

 

윤석열의 원전 공약, 전문가들은 탄식했다

 

원전 비율 30% 공약에 “어디에 지을 것인가”

“MB 정부 땐 원전 80기 수출 공약…못 지켜”

재생에너지 경쟁력 상승 등 시장 바뀐 탓

“원전, 목적 아닌 기후위기 대응 수단이어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윤 후보 뒤로 보이는 원자력 발전소 돔은 공정률 99%에 시험 운전 중인 한울 1, 2호기다.

 

29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원전 관련 공약을 발표하자 전문가들은 현실성 부족과 위험성을 먼저 꼬집었다. 일부는 탄식하고 조소했다.

 

이날 윤 후보는 “세계 최고의 원전기술력을 재입증해 원전 수출의 발판을 마련할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가동원전의 계속 운전 등을 통해 기저전원으로서의 원자력 발전 비중 30%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조화한 탄소중립 추진”이라고 밝히기도 했지만, 재생에너지 확충보다는 원전 활용을 선명히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부터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향후 5년내 원전을 30%대로 유지한다는 공약이 특히 그렇다. 2000년 40% 비율이었던 원전은 지난해 29%로 감소 추세에 있다. 사실상 늘리는 정책이 된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원전 비율 30%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폐로 원전 수명을 고려할 때 6기 정도를 더 지어야 한다. 노후 원전을 폐로하지 않고 계속 가동한다면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월성 원전은 사용후핵연료가 새고 있다는 문제 제기까지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비율을 유지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사용후핵연료 폐기물 처리도 난제다. 영구처분장에 기본적 합의도 마련하지 못한 가운데, 기존 원전시설에서의 방폐물 임시저장을 이어가며 지역사회 갈등이 비등하고 있는 상황이다.

 

윤 후보의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지원을 통한 원전 강화 방안에 대해서도 한 소장은 “SMR이라도 수십개를 더 지어야하는데 어디에 지을 수 있을까, 2,3층으로 올릴 것인가, 지을 땅이 없다는 걸 알고 합리적인 대안을 세워야 한다. 원자력에 대한 종교적 접근(맹신)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원전 수출(10기 이상)을 통한 일자리 10만개 창출 공약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많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에 APR-1400 4기를 수출한 뒤 원전 수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이명박 정부 때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을 수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UAE 수출 이후 1기도 추가하지 못했다”며 “게다가 10기면 약 40조원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 돈을 들여 일자리를 10만개만 창출한다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UAE가 애초 이명박 정부와 논의했던 추가적 원전 건설을 취소한 이유는 태양광 발전 사업 단가가 하락하면서 산업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유럽도 유럽연합의 강화된 안전 기준과 시장경쟁 과정에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 영국의 원전들이 모두 애초 견적대비 2배 이상 상승하고 있다”며 “결국 중동이든 동유럽이든 세계적으로 원전 퇴조 추세에서 (한국이) 수출할 시장은 없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원전 안전 문제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의 원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 윤 후보에겐 원전이 ‘목적’이 되어버렸다는 탄식이 전문가들 사이에선 나온다. 현 정부와의 차별화 전략으로서 치닿는다는 우려로도 읽힌다. 한병섭 소장은 “절전하고 에너지 효율을 올리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의) 수단으로 활용할 원전을 더 짓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렸는데 이런 접근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신한울 3·4호기를 건설할 경우 석탄발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연간 약 1700만톤 감축할 수 있고, 10기 운영할 경우 연간 약 5천만톤을 감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원전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원전을 가동하면서 생기는 온배수를 바다에 흘려보내는 문제, 이미 포화 수준의 사용후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은 검토되지 않은 모양새다. 최우리 김민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