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는 한번 시작하면 뒤로 물리기 어렵다. 제재 대상국이 행동을 바꾸지 않았는데도, 제재를 해제하면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금 상대하는 나라가 약소국이 아닌 강대국이라는 점도 변수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곧바로 보복성 제재로 응수한다.

 

중국 최대 인공지능 업체인 센스타임은 지난해 12월 미국의 제재 발표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홍콩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사진은 상하이에 있는 센스타임 건물 모습. 상하이/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최대 인공지능(AI) 업체 센스타임은 지난달 10일 미국 재무부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재무부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내 인권유린과 관련된 투자제한 블랙리스트에 센스타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홍콩 증시 신규 상장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자 애초 기업공개(IPO)에 ‘코너스톤(초석) 투자자’로 참여하기로 돼 있던 기관투자자 9곳 중 4곳이 참여를 거부했다. 일부는 미국 투자기관이 아니었으나 미국의 제재를 받을까 우려해 빠져나갔다. 홍콩의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기관투자자가 기업공개 전 공모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공모주를 장기투자하기로 하고 배정을 확약받는 투자계약을 말한다.

 

그러나 센스타임은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30일 홍콩 증시 상장에 성공했다. 공모가는 희망 밴드(범위)의 하단인 3.85홍콩달러(약 594원)였다. 센스타임은 이 기업공개 공모에서 15억주의 신주를 발행해 57억7500만홍콩달러(약 89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센스타임이 무사히 상장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 정부의 도움이 컸다. 상하이인공지능펀드 등 정부의 전략산업 육성 펀드와 여러 국유기업들이 애초 계획보다 더 많은 물량을 배정받거나 새로 참여했다. 이에 힘입어 계획했던 공모가 희망 밴드와 신주 발행 규모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센스타임은 지난달 21일 “(센스타임 주식은) 미국증권법 등 미국의 법률에 따라 등록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내에서 거래되지도 미국 투자자들에게 팔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시장과 연결되는 걸 차단함으로써 혹시나 미국의 제재에 노출될까 우려하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는 것이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 탕샤오어우가 2014년 설립한 센스타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면인식 기술 보유 업체로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대부분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번 공모 성공은 중국 기술 기업이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중국 첨단기술 기업들에 대한 제재의 포문을 연 이래 제재 대상 기업은 현재 200개 이상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2018년 10월 반도체 회사인 푸젠진화를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처음 제재 대상에 올렸으며, 2019년 6월 화웨이 제재를 계기로 본격화했다. 중국 군산복합체 기업과 신장위구르 자치구 인권유린에 이용된 기술 기업 등이 주요 표적이었다. 제재 대상 분야는 반도체·5G·인공지능·원자력·클라우드컴퓨팅·데이터·드론 등 대부분 4차 산업혁명 관련이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보안감시·바이오테크·슈퍼컴퓨터 등으로 제재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제재는 외교와 군사개입의 중간적 성격을 띠고 있다. 목표는 모두 상대국의 행동을 바꾸려는 것인데, 그렇게 하기엔 외교는 불충분하고, 군사개입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제재를 동원한다. 제재는 또한 효과가 어떻든 간에 자국 국민들에게 정부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제재를 외교정책의 한 수단으로 사용해왔지만, 지금은 금융제재가 외교정책의 핵심적 도구로 자리잡았다. 금융제재는 크게 세차례의 사건을 계기로 ‘진화’했다. 첫번째는 2001년 9·11 사태다. 미국은 애국법을 제정해 테러조직과 연루된 기관을 ‘자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해 제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도입했다. 이때 재무부가 범죄를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지정할 수 있는 길을 텄다.

 

두번째로 2010년부터 북한·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이른바 ‘2차 제재’를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1차 제재는 제재 대상자와의 거래제한을 미국인들에게만 한정하지만, 2차 제재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외국인이 1차 제재 대상이 된 사람과 거래를 할 경우 2차 제재 대상이 되는데, 민형사상의 직접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미국 금융시장 접근이 거부되기 때문에 사실상 제재 효과가 발휘된다. 2005년 북한이 은행계좌를 갖고 있는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이 제재를 처음 도입해 ‘효과’가 입증되자 2010년 이란 제재부터 본격 적용했다. 후안 자라테 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저서 <재무부의 전쟁>에서 “중국 은행들도 당시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했다”며 “중국 은행들도 미국의 금융시스템 접근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사실상 미 재무부의 조치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다. 세번째는 2017년 트럼프의 등장이다. 트럼프는 달러 패권 체제를 이용한 금융제재를 가장 적극적으로 동원했다.

 

미국이 이런 독자적인 제재를 할 수 있는 것은 거대한 미국 시장과 함께,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는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기축통화 지위에 올라 지금까지 무역·금융 등 국제 지불결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벨기에에 본부를 둔 국제결제시스템(SWIFT)과 미국 내 은행 간 결제시스템인 칩스(CHIPS)를 활용한다. 스위프트에는 전세계 200개 이상 국가의 1만1천여개 금융기관이 참여해 자금결제를 한다. 미국의 제재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제재 대상에 오를 경우 미국 금융시장은 물론 국제결제시스템에 접근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정상적인 국제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렇듯 달러를 사실상 무기화하는 중심에는 재무부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2020년 7월 ‘홍콩자치법’을 제정해 그동안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를 철회하자, 재무부는 홍콩 전·현직 관료와 중국 관료 등 11명을 ‘특별지정 제재 대상자’(SDN) 목록에 올렸다. 이 목록에 오르면 미국 내 자산동결과 투자제한 등 금융제재를 받게 된다. 같은 해 12월에는 중국 군산복합체 관련 44개 기업을 이 목록에 올렸다. 바이든 행정부도 이를 이어받아 지난해 3월 홍콩자치법 관련 제재 대상자를 34명으로 확대했으며, 6월에는 중국 군산복합체 투자제한 기업을 59개로 확대했다.

 

이런 제재가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미국이 그동안 북한·리비아·시리아·이라크·이란 등 다른 나라들에 시행한 경험을 보면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가 쉽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란의 핵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해 20여년간 제재의 강도를 높였으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대상국들은 사활을 걸고 제재를 회피하며 핵개발에 성공했거나 여전히 진행 중이다. 리비아·이라크 같은 경우는 결국엔 미국의 군사개입으로 귀결됐다. 그렇지만 제재는 한번 시작하면 뒤로 물리기 어렵다. 제재 대상국이 행동을 바꾸지 않았는데도, 제재를 해제하면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금 상대하는 나라가 약소국이 아닌 강대국이라는 점도 변수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곧바로 보복성 제재로 응수한다. 중국은 2020년 미국이 홍콩·중국 관료 등 11명을 제재하자,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 11명에게 금융제재를 부과했다. 지난해 6월에는 아예 ‘반외국제재법’을 공포했다. 외국이 중국인과 중국 기업에 대해 차별적 제한 조처를 할 경우, 이에 대응해 반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조치 내용도 중국 내 자산동결과 중국인과의 거래 금지 등으로, 미국의 금융제재와 거의 비슷하다. 물론 중국 위안화가 달러 위상에는 훨씬 미치지 못해 미국만큼 위력이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무역 부문에서는 세계 최대 수출국인데다 세계 2위 수입국이다. 2020년 기준 중국의 수입 규모는 2조556억달러로 미국(2조4075억달러)을 바짝 뒤쫓고 있다. 시장 규모가 커 유럽이나 아시아 등 국가들이 중국을 무시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미국의 제재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금융의 디지털화 가속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통화 발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중국이 가장 앞서고 있다. 이는 달러 패권을 뒤흔들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마지막 재무장관인 잭 루는 2016년 3월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재가) 비용이 적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제재가 사업환경을 너무 복잡하거나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또는 세계 자금 흐름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면, 금융거래는 완전히 미국 밖에서 움직이기 시작할지 모른다. 이는 앞으로 제재의 효과성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미국의 중심적 역할을 위협할 수 있다.” 미국에 예외적으로 부여된 달러의 ‘과도한 특권’을 남용할 경우 오히려 미국의 금융 패권을 스스로 침식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박현 논설위원

 

중국산 반도체 틀어막나…미·일, 첨단기술 수출규제 ‘새 틀’ 검토

“반도체 제조장치·AI 등 유럽으로 협력 넓힐 것”

 미국, 다자간 경제 협력체제 만들어 중국 압박

 

중국 선전의 화웨이 본사 로비. AFP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이 첨단기술 분야 제품이 중국에 수출돼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못하도록 ‘새 규제 틀’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10일 “미·일이 반도체 제조장치, 양자 암호, 인공지능(AI)에 관한 기술 등을 대상으로 수출을 규제하는 틀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며 “가치관을 공유하는 유럽의 우호국과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민간의 첨단기술을 활용해 군사력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중국을 겨냥하기 위한 것이다.

 

신문은 미·일 양국 정부가 “중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한 제품 등을 자국의 기술 개발에 활용해 경제·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에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 미 의회 등에서도 미국의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가 중국의 무기 개발에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실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일본과 네덜란드의 첨단 장비 등이 중국의 생산력 강화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수출 규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다자간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안보상 우려 등을 이유로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 통신업체인 화웨이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에 나섰지만, 미국 혼자만의 제재로는 한계가 크다고 보고 있다. 이 틀이 만들어져 첨단 반도체 제조장치의 중국 수출이 원천 차단되면, 중국은 사실상 첨단 반도체를 자체 생산할 수 없게 된다. 한발 더 나아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역시 생산 설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없어 장기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이 구상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 주도의 규제에서는 일본의 의향이 반영되기 어렵다. 새로운 수출 규제 협의에 주체적으로 참여해 일본 기업에 대한 영향을 예측하기 쉽게 하거나, 국익에 따른 구조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유럽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이번 틀이 1949년 옛소련 등 공산권 국가로의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만든 ‘코콤’(COCOM)의 현대판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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