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시위는 “국제테러단체의 무장공격”
그동안 쌓인 경제격차 시정 뜻도 밝혀
카자흐스탄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11일 하원 회의에서 시위 진압을 위해 파병된 러시아 중심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평화유지군이 이틀 내에 철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카자흐스탄 대통령 누리집 갈무리
시위 진압을 위해 카자흐스탄에 파견된 러시아군이 주축이 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평화유지군이 이틀 내로 철수를 시작할 전망이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하원에 출석해 “집단안보조약기구 평화유지군의 주요 임무가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이틀 안으로 평화유지군의 단계적인 철수가 개시된다. 철수 과정은 열흘은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카자흐스탄의 대테러 진압 작전은 끝났고 현재 모든 지역이 안정을 되찾았다.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선언했다.
중앙아시아의 자원 부국인 카자흐스탄에선 지난 2일 연료 가격 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돼 4일 최대 도시 알마티 등으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관저가 습격당하는 등 대혼란이 벌어졌다. 사태 악화로 통치 기능이 정지될 것을 우려한 카자흐스탄 정부는 5일 집단안보조약기구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요청했다. 그러자 옛 소련 국가들에 대해 절대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러시아는 이튿날부터 공수부대 등으로 구성된 병력 2500여명을 현지에 파견했다. 카자스흐탄의 군경과 평화유지군이 시위 진압에 나서며, 최소 164명이 숨지고 8천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된다.
도카예프 대통령은 파병 요청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권력 찬탈을 위해 전문가들(테러단체들)이 준비를 했었다. 이것이 카자흐스탄에 대한 국제테러단체의 무장 공격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법적 근거를 갖고 집단안보조약기구 회원국에 평화유지군 파견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부 테러 세력이 어떻게 시위에 개입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또 신임 총리 후보자로 알리한 스마일로프(49) 제1부총리를 지명하며 시민들이 요구한 ‘경제 개혁’을 시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번에 발생한 비극적 사태는 상당 부분 심각한 사회·경제 문제와 일부 국가기관의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업무 탓”이라며 “새 정부 구성안과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의회에 제출하겠다. 국민에 합당한 몫을 돌려주고 제도적으로 국민을 도울 때가 됐다”고 말했다.
초대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30년 가까이 이 나라를 통치하며 자원 개발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냈지만,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냈다. 지난 시위를 통해 드러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과 차별화를 이루며 권력을 안정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길윤형 기자
중, ‘테러’ 명분 내세워 카자흐 사태에 적극 나서나
왕이 외교부장, 반정부 시위 ‘테러’로 규정
테러리즘·분리주의·극단주의 등 ‘3대 악’ 대응
카자흐 외교장관, “중국과 함께 싸울 것”
10일 카자흐스탄 수도 누르술탄에서 거리를 순찰하던 병사들이 한 남성을 붙잡아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다. 누르술탄/타스 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시위 사태를 ‘테러’로 규정하고 나섰다. ‘대테러 활동’을 명분으로 중국이 카자흐스탄 사태에 적극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11일 중국 외교부 발표 내용을 종합하면, 왕 부장은 전날 무크타르 틀레우베르디 카자흐스탄 부총리 겸 외교장관과 한 전화 통화에서 “영구적인 전면 전략 동반자로서 중국은 폭력 사태를 멈추고 안정을 유지하려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조처를 단호하게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테러 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최일선 법 집행요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카자흐스탄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를 ‘테러’로 못박았다. 왕 부장은 또 테러리즘·분리주의·극단주의 등 이른바 ‘3대 악’을 거론하면서 “중국은 외세로부터 카자흐를 보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틀레우베르디 장관도 “3대 악에 맞서 중국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날 왕 부장이 언급한 ‘3대 악’은 중국 당국이 신장위구르 자치구 문제를 언급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문구다. 국제사회가 인권탄압이라 비판하는 위구르족 집단 수용시설 운영에 대해서도 중국은 위구르족이 주축이 된 분리독립운동 조직인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등을 거론하며 “3대 악에 맞서기 위한 직업교육 시설”이라고 주장해 왔다.
중국은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이 신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중국~아프간 국경지대는 76㎞에 불과해 자체 방어가 충분한 상태다. 하지만 인접한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각각 1063㎞와 1782㎞씩 국경을 맞대고 있어, 테러단체가 ‘우회 통로’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카자흐스탄의 내부 혼란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도 이번 사태를 ‘테러단체’와 연계시키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카자흐스탄 외교부는 전날 성명을 내어 “지난주 정부 청사를 공격하고 보안군과 맞선 세력 가운데 외국에서 훈련받은 이슬람주의 과격파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이번 사태를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 연결시킨 것이다. 이들은 이어 “초기 수사 결과 반정부 공세에 나선 세력 가운데 해외 전투현장 참전 경험이 있는 과격 이슬람주의 단체 조직원이 포함돼 있다. 카자흐스탄은 현재 외국에서 훈련받은 잘 조직된 테러범들의 무장 공세에 직면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외교냐 대결이냐…미-러, ‘우크라 위기’ 놓고 연쇄회담 돌입
9일 제네바에서 실무만찬 하며 탐색전
미 “주권과 영토 온전성 원칙 강조”
러시아 “쉽지 않았지만 실제적 대화”
유럽의 미래 결정할 중요한 한주될 듯
8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친러시아 반군의 참호를 감시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한 고위급 실무회담인 ‘전략안정대화’(SSD)를 10일 열었다. 도네츠크/AP 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1991년 말 소련 붕괴 이후 가장 중요한 변곡점 위에 올라섰다. 13일까지 진행되는 연속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외교적 해법을 도출해내지 못하면, 러시아의 군사행동과 미국의 보복조처가 이어지며 유럽 전체가 신냉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될 수 있다.
미-러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한 고위급 실무회담인 ‘전략안정대화’(SSD)를 하루 앞둔 9일(현지시각) 두시간 넘게 실무 만찬을 했다. 미 국무부는 만찬 직후 보도자료를 내어 웬디 셔먼 부장관이 이날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에게 “주권과 영토 온전성에 관한 국제적 원칙, 주권국가가 동맹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에 관한 미국의 약속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럅코프 차관도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화가 쉽지는 않았지만, 원칙적으로 현실적이었다”며 낙관할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내일(10일) 시간 낭비를 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가 타협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미국이 타협에 이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회담을 앞두고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인 셈이다.
이번 회담은 소련 붕괴 이후 30년 동안 러시아와 미국 등 서구 사이 갈등의 핵심 원인이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을 둘러싸고 타협점을 찾는 자리이다. 이날 양자 회담을 마친 뒤 12일엔 나토와 러시아의 회담, 13일엔 우크라이나도 참여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담이 이어진다. 회담이 세차례로 나뉘어 이뤄지는 것은 우크라이나 위기의 당사자인 나토와 우크라이나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를 강조하듯 미 국무부는 “미국은 러시아와의 특정한 양자 사안들을 논의하겠지만, 유럽 동맹, 파트너 없이 유럽의 안보를 논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이번 회담의 중요성을 인식한 듯 양국은 연쇄 회담에 기대치를 낮추는 한편 “양보는 없다”며 서로를 압박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9일 오전 <시엔엔>(CNN) 등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은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에 대한 양보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면서 “다가오는 주에 우리가 돌파구를 찾진 못할 것 같다. 러시아가 10만 병력을 배치해놓고 우크라이나에 총구를 겨누면서 긴장 고조 행위를 계속하면 실질적인 진전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럅코프 차관 역시 만찬에 앞서 “당연히 우리는 압박을 받아 어떤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관영 통신 <리아 노보스티>(RIA)가 보도했다.
하지만 양국은 서로에게 자신들이 가진 카드를 내보인 상태다. 러시아는 지난달 15일 미국에 △나토의 동진 중단 △러시아 국경 인근 공격용 무기 배치 중단 △러시아의 동의 없이 1997년 이후 나토에 가입한 폴란드·헝가리 등에 배치된 나토군 철수 등의 명시적 안전 보장 등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특히, 나토의 동진 금지 등 핵심 요구 사안에 대해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 형태로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8일 고위 당국자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공격형 미사일 배치 감축 △동유럽에서 미국과 나토의 군사훈련 제한 등의 문제는 논의할 수 있다는 여지를 뒀다. 블링컨 장관 역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8월 일방 폐기한 미-러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의 부활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9일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그걸 갱신하는 데 관한 바닥(기본적 논의)을 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러시아가 진지하게 나올 때만 검토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지금 진짜 질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외교와 대화의 길을 택할 것이냐, 대결을 택할 것이냐이다”라고 말했다. 럅코프 차관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원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수십년간 이어진 파괴적인 나토의 행위를 축소시키고, 나토를 1997년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양쪽의 입장이 날카롭게 맞선 만큼 이번 회담 결과는 즉각 발표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번의 회담으로 똑 부러진 결론이 나오기 힘든 구조인데다, 실패를 인정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민감한 국내 여론을 살피며 신뢰 회복을 위한 세밀한 사전 정지 작업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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