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밥퍼 본부 '무단 증축' 혐의…주민들도 '혐오시설' 민원
최일도 목사 10일간 단식…"지칠 대로 지쳤다" 토로
14일 오전 11시께 밥퍼 도시락 나눔이 시작된 '청량리 쌍굴다리' 모습.
"아침에 여기서 받은 밥으로 한 끼, 저녁에 남은 밥을 라면에 말아서 두 끼를 먹어요. 밥퍼 덕에 자식도 없는 노인들이 살아가는 거예요…."
14일 오전 10시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굴다리 지하차도 앞. 두꺼운 외투 차림으로 몸을 웅크린 채 굴다리 한쪽에 기대서 있던 한모(82)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뒤이어 얼굴이 새카만 노숙인부터 턱이 무릎에 닿을 듯 등이 구부러진 할머니까지 150여명의 사람들이 굴다리를 따라 100m 넘는 줄을 만들었다.
오전 11시가 되자 주황색 앞치마를 두른 봉사자들이 사람들에게 비닐봉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밥과 3가지 반찬, 캔 음료와 감귤 1개가 담긴 비닐봉지를 받아든 사람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굴다리를 떠났지만, 도시락을 건네는 봉사자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서울 청량리 일대에서 34년째 이어지고 있는 무료급식사업 밥퍼나눔운동(밥퍼)이 최근 서울시·지역 주민과의 갈등 속에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16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최근 동대문경찰서에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65) 목사를 상대로 건축법 위반 혐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14일 오전 11시께 '청량리 쌍굴다리'에서 도시락 나눔을 시작한 밥퍼 관계자들.
최 목사가 시유지인 동대문구 답십리동 554번지 일대에서 지난해 6월부터 무단으로 증축 공사를 진행했다는 이유다.
최 목사는 다일공동체를 운영하며 1988년 11월부터 '쌍굴다리'라 불리는 답십리 굴다리 지하차도에서 라면을 끓여 나눠주는 것을 시작으로 무료급식사업을 시작해 지지를 받아온 목회자다.
2009년에는 시유지인 현재 자리에 가건물을 짓고 매일 아침 노인·노숙인 등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왔다.
그러던 지난해 6월 노인 고독사 예방 등 추가 사업을 진행하려면 노후한 밥퍼 본부 공간을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기존 건물을 확장하는 증축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관할인 동대문구청은 시유지에서 무단 증축을 하고 있다며 두 차례에 걸쳐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최 목사가 이를 따르지 않자 서울시에 경찰 고발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청 관계자는 "(최 목사가) 계속해서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민들도 밥퍼 때문에 다른 동네 노숙인까지 모인다고 민원을 넣으셔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들은 차제에 밥퍼가 다른 동네로 이전하는 등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쌍굴다리 인근은 과거 '청량리 588'이라 불리던 사창가였는데 지금은 마천루도 들어서는 등 서울 중심가로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며 "밥퍼는 음침하고 가난했던 옛 동네를 떠올리게 하는 시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민원과 경찰 고발이 이어지자 최 목사는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남기고 9박 10일간의 묵언·단식기도에 들어갔다.
최 목사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거의 탈진 상태다. 밥퍼를 청량리에서 내쫓아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도 있다"며 "다일공동체는 창립 34년 만에 최대의 위기 속에 있다. 모든 인간적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가야 할 길을 묻고자 한다"고 썼다.
14일 리모델링과 증축 공사 중인 청량리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 뒤편으로 청량리 일대에 신축 중인 고층 아파트들이 보인다.
전문가들은 밥퍼의 증축이 다른 건축법 위반 사건과는 성격이 다른 만큼 사법적 해결보다는 대화를 통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무료급식소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저소득자·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급식 서비스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며 "시에서 더 넓은 장소를 물색해주는 등 취약계층 대상 서비스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은 서울시와 밥퍼 측의 협의 결과를 지켜본 뒤 입건 및 수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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