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삶을 구속하는 사회

● 칼럼 2012. 5. 14. 09:20 Posted by SisaHan
1989년 12월20일, 파나마를 침공한 미군의 험비차량들이 파나마시티 주재 바티칸 대사관 앞을 둘러쌌다. 이곳으로 도망친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국제 마약거래 혐의였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하수인이었던 노리에가의 마약 거래가 미국의 니카라과 우익 반군 지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들통난데다, 노리에가가 제멋대로 굴면서 미국의 중남미 전략에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미군 험비차량들은 총이나 로켓포가 아니라 고성능 스피커로 무장했다. 귀청을 찢을 듯한 헤비메탈 음악이 대사관 주변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로큰롤 폭격’의 위력은 엄청났다. 극심한 소음과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노리에가는 14일 만에 미군에 투항했다.
국제법상 외교 공관은 주재국이 아닌 파견국의 영토로 간주되며 치외법권을 인정받는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비엔나) 협약’(1961년)에서 확립된 외국 공관 불침해 원칙이다. 노리에가가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망친 것도, 미군이 이곳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 대사관은 모든 정치적 난민이나 피억압자들의 피난처 1순위다. 헝가리의 요제프 민첸티 추기경은 1956년 공산독재에 항거한 헝가리 혁명이 실패하자 부다페스트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해, 1971년 오스트리아로 망명하기까지 15년이나 더부살이를 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에는 수백명의 동독인들이 폴란드와 체코의 서독 대사관으로 몰려들었다. 북한을 탈출한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중국 주재 외국 대사관의 담을 넘는다.
지금은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이 뜨거운 현안이다. 그는 2005년 중국 산아제한 정책의 야만적인 실태를 폭로했다가 4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 뒤 가택연금 중이던 그가 지난달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해 망명을 요청했다.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은 곤혹스러웠다. 그의 운명은 ‘중국 잔류’와 ‘미국 망명’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두 나라는 천광청의 ‘미국 유학’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중국은 ‘나쁜 선례’를 차단했고, 미국은 ‘인권 외면’이라는 비난을 피했다.
빈외교협약은 이후 유엔 인권규약이나 유럽연합 인권규약 등을 통해 인권보호 차원으로까지 확장됐다. 사법기관의 합법적 체포·구금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자유권과 안전권을 박탈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빈협약 가입국의 재외 공관들은 정치적 피난자를 해당 국가에 넘겨줄 경우 그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의무가 있다. 대사관 피난은 법적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문제에 가깝다.
 
이즈음에서, 근본적인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반체제’란 무엇인가. 국가가 모든 자연인에게 ‘국민’(시민)의 지위를 부여하고 체제 귀속을 강제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은 위험한 공상인가…. 법철학과 정치학, 사회철학과 문화인류학이 나름의 설명을 해왔다. 그러나 그건 설명과 해석일 뿐, 자발적 동의의 근거는 아니다. 아나키즘의 이론적 전망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꼭 300년 전에 태어난 장자크 루소(1712~1778)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에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고 한탄했다. 인간이 공동체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회적 속박은 숙명인지 모른다. 루소는 “각 개인이 자신을 구성원 전체에 양도함으로써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양도하지 않는” 이상주의적 사회계약을 꿈꿨다.
최근 몇년 새 우리 사회는 국가권력의 억압이 삶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하면서 ‘누구든 걸리면 손해’라는 나쁜 학습효과가 팽배해졌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상을 압도하는 현실에서, 자꾸만 루소의 꿈을 기웃거린다.

< 한겨레신문 조일준 국제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