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대통령 “하르키우에서 범죄 자행”
키예프에서도 주거용 건물 폭격 당해
러시아, 집속탄 사용 등 잔인한 공세
남부 점령지에서는 주민들 국가 부르며 저항
2월 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하르키우의 긴급 구조대가 미사일 공격을 당한 주거용 건물 앞에서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르키우/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러시아군이 더욱 잔인한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1일(현지시각)로 전쟁이 6일째로 접어들면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AP> 통신은 28일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리코프(하르키우)에서 미사일이 주거 지역에 떨어지면서 적어도 11명이 사망했다고 하르키우 당국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호르 테레호우 하르키우 시장은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을 통해 “주거 건물들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많은 민간인이 다치고 숨졌다”고 전했다. 그는 4명의 시민은 물을 구하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사망했다며 “오늘은 아주 힘든 날이었다. 단지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람들에 대한 학살이다”라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연설에서 러시아가 하르키우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속속 들어오는 목격담으로 볼 때 한번의 오폭이 아니라 의도적인 주민 살상”이라고 말했다.
수도 키예프에서도 러시아군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벌였다고 우크라이나 내무부가 밝혔다. 내무부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을 통해 이날 밤 10시께 5층 짜리 주거용 건물이 폭격을 당했다고 전했다. 긴급 구조대는 매몰된 주민 2명에 대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키예프가 28일 밤으로 접어들면서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며 러시아 침공 이후 처음으로 건물들이 흔들리는 충격을 느꼈다고 전했다. 1일 아침에도 키예프와 서부 지역 테르노필, 중부 체르카시 등지에서 공습 경보가 울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벨라루스에서 협상을 벌이던 중에도 계속된 러시아의 공격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다.
우크라이나 군은 1일 오전 “키예프 주변 지역은 여전히 긴장이 고조된 상태”라며 “적군은 군 시설과 민간 건물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군은 또 러시아가 고도로 훈련된 벨라루스군 부대와 함께 공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28일 하르키우에서는 집속탄(하나의 폭탄 안에 많은 폭탄이 든 것)으로 의심되는 폭발이 발생했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북동부 국경 도시 체르히우에서는 러시아군이 포위 뒤 공략 전술(공성전)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가 제네바협약이 금지하는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 점령당한 동부 항구도시 베르댠스크에서는 주민들이 러시아군 탱크 앞에 모여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는 등 점령군에 저항했다. 이 도시 주민 니나(가명)는 <비비시>에 “러시아 군인들이 순식간에 시내로 밀려 들어왔다”며 “그들이 내일(1일)은 인근 도시 마리우폴로 진격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군이 장악한 동부 도네츠크에서도 건물들이 폭격으로 불타고 일부 지역은 전기가 끊겼다고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보도했다.
유엔은 28일까지 적어도 102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406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마틴 그리피스 인권 담당 유엔 사무차장은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은 피해 보고가 많아, 실제 사상자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웃 국가도 탈출한 우크라이나인이 52만명에 달하며 피란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키예프 주변 결집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 위성통신 업체 ‘맥사 테크놀로지’는 28일 새로운 위성 사진을 공개하고 키예프로 향하는 러시아군 행렬 길이가 60㎞를 넘는다고 분석했다. 이 회사는 러시아군 행렬이 키예프 북부 27㎞ 지점인 호스토멜 공항까지 접근했다며 수백대의 무장 차량, 탱크, 견인포 등이 목격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일부터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들어오는 외국인 전사들에게 사증(비자)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한편,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세뇌당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군을 환영하고 있다는 등의 침공 미화 선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신기섭 기자
“러, 우크라에서 진공폭탄·집속탄 사용”…ICC “전쟁범죄 조사”
주미 우크라대사 “제네바협약 위반 진공폭탄 사용”
국제앰네스티 “러시아군 집속탄 사용 민간인 살상”
국제형사재판소 “전쟁범죄·반인도범죄 조사하겠다”
우크라이나 산모가 지난 28일 아기를 안고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는 도시 마리우폴의 조산원 지하에 대피해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제네바협약이 금지하는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대사가 주장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전쟁범죄를 조사하겠다고 밝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한 압박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대사는 28일 러시아의 “잔혹한 전쟁”에 대응하는 협조를 구하려고 미국 의회를 방문한 뒤 “러시아군이 오늘 제네바협약이 사용을 금지한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파괴를 안기고 있다”며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진공폭탄은 폭발 때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여 강력한 초고온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이다. 일반 폭탄보다 폭발 파장의 지속 시간도 길어 파괴력이 크다.
러시아군이 많은 국가들이 사용을 금지한 집속탄을 사용했다는 발표도 나왔다. 국제앰네스티는 러시아군의 집속탄이 지난 25일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유치원과 민간인 대피 시설을 타격해 어린이 1명을 비롯해 3명이 숨졌다고 28일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를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집속탄은 하나의 폭탄 안에 여러 개의 폭탄을 넣어 살상력을 높인 것으로, 민간인 피해 우려 때문에 2008년 100여개국이 사용 금지를 약속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 내 전쟁 범죄와 반인류 범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낸 성명에서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했다.
한편 마르카로바 대사와의 면담에 참여한 미국 민주당의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이를 강제하려고 할 경우 미국과 러시아의 직접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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