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첫 회담 장면

 

러시아가 개전 7일째인 2일(현지시각) 사태 수습을 위한 2차 회담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먼저 주요 도시들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고 요구해 회담이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 오후, 늦은 오후에 우리 대표단이 우크라이나 협상단과 만나길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 회담 장소나 의제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러시아가 이같이 애매한 태도를 보인 것은 우크라이나가 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러시아가 수도 키이우(키예프) 등 주요 도시에 대한 공세를 멈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일 “회담을 위해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도시들에 대한 폭격을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두 나라 고위 협상단은 이틀 전인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접경 지역 도시 고멜에서 만나 약 5시간 동안 회담했다. 회담 뒤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러시아 대통령실 보좌관은 “공통의 입장이 기대되는 어떤 사항들을 발견했다. 다음 회담은 며칠 내로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에서 열자고 합의했다”고 여운을 남긴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즉각적인 휴전과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와 중립화를 요구해왔고, 개전 후엔 사실상 항복을 뜻하는 ‘무기를 내려놓을 것’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의 제거를 뜻하는 ‘비나치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결사항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철군을 위해선 △러시아의 안보 우려가 무조건적으로 존중되고 △(2014년 3월 합병한)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받으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비나치화·비무장화되고 중립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우크라이나 시민들, 탱크 앞세운 러시아군에 소셜미디어로 맞서다

SNS, 2010년  ‘아랍의 봄’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위력 발휘

세계에 참상 전하고 전범행위 의혹 고발…자국민 전의 고취

 

미국 프로축구(MLS)의 관중이 지난달 27일 시애틀 사운더스-내슈빌 에스시(SC) 경기에서 “전쟁 중단” 현수막이 들고 있다. 시애틀/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인들이 소셜미디어로 러시아의 탱크에 맞서 싸우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 실시간으로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영상을 올리고 외부의 도움을 호소하는 선전전을 펼치고, 또 서로 항전 의지를 북돋우고 격려하는 등 온라인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매체를 통한 선전전에 능란한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번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자발적인 길거리 온라인전으로 러시아를 압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등 외신이 1일(현지시각) 전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진격해오는 러시아의 탱크를 거리에서 막아서고 마을을 지키고 화염병을 만들어 러시아군 차량을 불태우는 등의 동영상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올린 동영상 중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탱크가 연료가 떨어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상황을 비웃는 모습이 담겼고, 또 트랙터 드라이버가 러시아군의 군용차량을 견인해 끌고 가는 장면도 있다.

 

전쟁의 잔혹성과 범죄성을 고발하기도 했다. 28일 하루키우에 집속탄으로 의심되는 폭탄이 떨어졌을 때 시민들은 곧바로 그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러시아군의 불법적 집속탄 사용을 알렸다.

 

서로 항전의지를 격려하는 메시지도 넘쳐난다. 우크라이나 록스타 안드리 클리브니우크와 미스 우크라이나 출신 아나스타시아 레나는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또 그래픽 디자이너 솔로미아 샬라이스카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다윗과 골리앗의 이미지로 형상화해 온라인에 올려 ‘좋아요’를 10만번 넘게 받았다.

 

2010년 ‘아랍의 봄’에서 젊은 시위대가 분노의 목소리를 조직하는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 도구로 주목받은 소셜미디어가, 이번에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효과적인 저항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오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 스위스마저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동참한 데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이런 적극 홍보가 한몫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소셜미디어전에는 가장 앞장서는 이는 누구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셜미디어에 동영상을 올려 항전 의지를 내보이며 외부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한때 도피설이 나돌자 곧바로 키이우를 배경으로 “나는 여기 남아있다”고 밝히는 동영상을 올렸고, 러시아 제재를 놓고 고심하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을 향해선 “강력한 제재”를 강력히 호소했다. 그의 트위터 계정 팔로워는 날마다 몇십만명씩 늘어나고 있으며, 1일 현재 430만명이 넘는다. 박병수 기자

 

원유·가스 대금결제 못 끊어…스위프트 금융제재 ‘반쪽짜리’ 되나

  EU, 스베르반크·가스프롬반크 주요 러 은행 제재 제외

  유럽, 러 에너지 의존도 커 결제거래 필요 ‘딜레마’

 

지난 1일 미국 워싱턴DC 라파예트 광장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에 시위대가 참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등 서방이 대러 금융제재를 위해 러시아 금융기관의 국제금융결제망(SWIFT·스위프트) 퇴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에너지 거래와 관련된 러시아 주요 은행은 제재 대상에서 빠졌다. 러시아 1위 은행인 ‘스베르반크’와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이 소유한 은행이 제외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가장 강력한 금융제재를 꺼내 들면서도 ‘에너지 딜레마’에 발목이 잡히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은 2일(현지시각) 공식 저널을 통해 러시아 은행 7곳을 스위프트에서 차단한다고 발표했다. 제재 대상은 브이티비(VTB)반크, 로시야반크, 브이이비(VEB), 소브컴반크, 프롬스비아즈반크, 노비컴반트, 오크리티에반크 등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스베르반크와 가스프롬반크는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러시아 은행들을 스위프트망에서 차단하기로 합의했는데, 전면 시행이 아닌 제재 대상을 따로 선별(selected Russian banks)하기로 했다. 이에 유럽연합이 이날 최종 7곳의 제재 대상을 발표한 것이다. 오는 12일부터 이들 은행을 통한 러시아 기업 및 개인의 수출입 대금 결제, 해외 대출·투자는 모두 막힌다.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스베르반크는 러시아 전체 은행 자산의 약 30%를 보유하고 있으며, 러시아 저축 예금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 최대 금융기관이다.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 계열사인 가스프롬반크도 러시아 에너지 대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금융 핵무기’로 불리는 스위프트 제재가 전면에서 일부로, 일부에서도 핵심 은행은 제외하는 등으로 자꾸 힘이 빠지는 것은 에너지 딜레마 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이며, 세계 3위 산유국이다. 특히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조달하고 있다. 스위프트 제재로 러시아와 원자재 결제망이 끊기면 유럽 경제 또한 큰 충격이 불가피한 구조다. 미국 역시 고물가가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상승 등 스위프트 제재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스위프트 제재 발표에 앞서 상당수 외신들은 에너지 관련 금융거래 활용도가 큰 러시아은행은 제재 대상에서 예외로 둘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서방 국가는 러시아 에너지 구매력을 약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에너지와 관련된 은행은 (스위프트) 결제망에 남아 있도록 허용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로이터>는 유럽연합 발표에 대해 “스베르반크와 가스프롬반크는 러시아 석유 및 가스에 대한 주요 지불 채널이기 때문에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유럽연합 관계자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스위프트 지불 유형을 에너지 거래와 다른 거래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두 은행의 제외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의 에너지 딜레마는 스위프트 이전 제재에서도 발견된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발표한 러시아 은행의 달러 거래 및 자금 동결 조처에도 에너지와 농산물 예외 조항(일반 라이센스, General Licenses)이 담겨 있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는 인플레이션 확대란 부작용으로 이어지며 서방 국가 지도자들에게도 정치적 치명상을 안길 수 있다”며 “러시아 경제 제재에 있어 에너지 규제 포함 여부는 계속 쟁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슬기 기자

 

정의용, 우크라와 ‘인도적 지원’ 논의…양국정상 통화 추진

 한국 정부에 감사” 표명

 양국정상 통화도 가급적 조기 성사키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일 드미트로 꿀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우리의 대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 및 대 러시아 제재 동참, 재외국민 보호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정 장관은 “무고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고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을 위해 100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음을 설명하고, 우크라이나 쪽의 요청에 따라 우선적으로 긴급의료품을 이른 시일 안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꿀레바 장관은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을 공유하고 “어려운 시기에 한국 정부와 국민이 보여준 연대의식과 지지를 잊지 않겠다며 사의를 표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정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은 명백한 유엔헌장과 국제법 위반으로 이를 규탄한다고 하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우크라이나의 노력을 지지했으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단합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정 장관은 “대러 제재 등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수출통제, 금융 분야 등 정부의 대러 제재 결정에 대해 설명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아울러 두 장관은 상대국에 체류하는 양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긴밀히 협조하기로 했으며, 정 장관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한국에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도록 인도적 상황을 고려한 특별 체류 조치를 취했음을 설명했고, 꿀레바 장관은 한국 정부의 세심한 배려에 사의를 표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두 장관은 “양국 정상의 통화 추진을 협의했으며, 현지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조기에 성사시켜나가기로 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이제훈 기자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수도 키이우서 철수 “군사적 위협 고조”

“우크라이나 내 안전지역으로 이동해 기능 재개할 것”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텔레비전 송신탑이 1일(현지시각)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화염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우크라이나 내무부가 공개했다. 키이우/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키예프) 시내 군사적 위협 상황 고조로 공관 기능 수행과 공관원 안전 보장이 어려워져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이 키이우에서 철수했다고 2일 밤 외교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키이우에서 근무 중인 김형태 대사를 포함한 잔류 공관원 전원은 이동을 희망하는 우리 국민 6명과 함께 우크라이나 내 키이우 이외 다른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 중"이라며 “대사관은 상황이 안정되는대로 우크라이나 내 안전지역에서 기능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키이우 주재 우리 대사관 기능은 당분간 잠정 중단되며, 르비브 임시사무소와 체르니브찌 임시사무소가 교민 지원 업무를 계속 수행한다”고 덧붙였다.

 

애초 600명 가까이 되던 현지 체류 한국인은 대부분 철수해 지금은 40명 밑으로 숫자가 줄었다. 이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