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쿠데타’ 정치 농간에 태국 “잃어버린 20년”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법 쿠데타’ 활용법
태국 경제까지 망치는 군부발 일상적인 정치불안

돌아온 탁신, 친군부 보수파와 권력 공유 타협
헌법까지 바꾼 군부의 “탁신은 절대 안돼!”

그랬던 군부가 탁신을 급히 불러들인 이유
탁신파도 친군부 보수파도 아닌 제3세력의 등장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딸 패통탄 친나왓 프아타이당 대표가 15일(현지시간) 방콕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프아타이당을 비롯한 태국 집권 연정 소속 정당들은 패통탄 대표를 차기 총리 후보로 세우기로 결정했다. 2024.08.16. [AP 연합]
 

동남아시아의 주요국 태국(타이)은 기득권에 집착하는 보수 지배엘리트들의 정치적 농간이 어떻게 한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국가 전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전형이다.

태국 ‘잃어버린 20년’

태국 왕실과 결탁한 군부, 일부 관료들, 화교계 자본가들과 일부 지식인들,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헌법재판소.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의 강고한 카르텔이 인구 7천만 명이 넘는 동남아의 지정학적 중심국 태국의 정치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국제적 신용을 실추시키고 있다. 역시 변화하지 않는 강고한 기득권층을 지닌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 빗대, 태국에도 “잃어버린 20년”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19일 방콕 형사법원에 도착하고 있다. 탁신 전 총리의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 프아타이당 대표가 최근 역대 최연소 태국 총리로 선출됐다. 2024.08.19. [로이터 연합]
 

돌아온 탁신, 친군부 보수파와 권력 공유 타협

지난 16일 타이 의회(하원)는 총리 지명 선거에서 37세의 젊은 페통탄 친나왓 ‘프아 타이당’(타이 공헌당, 타이를 위한 당) 당수를 새 총리로 선출했다. 타이의 최연소 총리이자 두 번째 여성 총리다. 그 이틀 전인 14일 같은 당의 세타 타위신 총리가 헌법재판소 해임명령으로 물러났고, 페통탄은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된 것은 하원 총의석 500석 중 151석을 얻은 ‘전진당’이었고, 프아 타이당은 141석을 얻어 제2당이 됐다. 프아 타이당 당수가 잇따라 총리가 된 것은 타이 정치를 사실상 좌지우지해 온 친군부 보수파 연합(76석)과 손을 잡은 결과다.

태국 총리 선출방식은 독특하다. 하원의원 500명과 상원의원 250명의 의원들을 합친 750명의 의원 과반수(376명 이상)를 확보해야 총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상원은 형식상 선출제이긴 해도 사실상 왕실과 군부가 지명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군부가 거부하는 사람을 총리자리에 앉히려면 하원에서만 376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반대로 군부는 하원에서 126석만 확보하면 가능하다. 주변 군소 정당들을 끌어모아도 76석밖에 확보하지 못한 친군부 보수파가 권력을 유지하려면 다른 유력한 당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래서 페통탄의 프아 타이당과 손을 잡았다.

프아 타이당의 실세는 2001년 총선에서 압승해 총리가 된 뒤 2005년에도 대승했으나 군부 쿠데타로 국외 망명을 해야 했던 탁신 친나왓이다. 페통탄 친나왓은 그의 둘째 딸이다. 아버지의 사업을 돕다가 지난해 10월에야 프아 타이당(이하 ‘탁신당’으로 통칭) 당수가 된 페통탄은 의원 경험도 없는 정치 초년생이다. 군부가 그런 페통탄을 총리자리에 앉힌 것은 제1당인 전진당을 밀어내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탁신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타 타위신 태국 총리가 14일 방콕 정부 청사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태국 헌법재판소는 세타 총리의 부패 인사 장관 임명 의혹에 대해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데, 헌재가 위헌으로 판단하면 세타 총리는 해임된다. 2024.08.14. [AFP 연합]
 

친군부 보수파의 ‘헌법재판소’ 활용법

탁신과 그를 쿠데타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군부는 원래 ‘원수’ 내지 ‘견원지간’이라 할 수 있다. 기업가 출신인 탁신은 1991년 군부의 유혈 쿠데타 뒤 태국에서 민주화 기운이 고양되고 1990년대 후반 개헌으로 정치공간이 넓여진 뒤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정치인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다. 농민과 중하층 노동자 등 서민들의 표를 공략해 처음으로 왕실과 군부, 자본가 등 전통적 지배엘리트층이 기득권 상실의 위기감을 갖게 될 정도로 성공한 탁신은 결국 그 성공 때문에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다. 탁신당은 그러나 탁신이 쫓겨난 뒤에도 중하층 서민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했다. 원래 ‘애국당’이란 이름을 내걸었던 탁신당은 군사재판소의 해산 명령으로 해체됐지만, 2007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란 당명으로 승리했고 탁신파 사막 순다라벳이 총리가 됐다.

그러자 군부는 자신들의 수족인 헌법재판소를 앞세워 사막 순다라벳 총리가 요리 프로 방송에 출연한 것을 꼬투리삼아 겸직 금지 규정 위반이라며 그를 해임하고 ‘국민의힘’ 당을 해산시켰다. ‘사법 쿠데타’였다.

그럼에도 탁신당은 2011년 총선 때 ‘프아 타이당’으로 재창당해 265석을 얻어 다시 제1당이 됐다. 그 결과 총리가 된 사람이 잉락 친나왓이다. 탁신의 여동생이다. 군부는 이번에도 탁신당 정권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2014년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잉락마저 국외로 쫓아냈다. 그때도 잉락을 총리직에서 쫓아낸 근거가 집권 초기에 군부파인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을 경질한 것이 권력남용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이었다.

 

태국 페통탄 친나왓 신임 총리가 방콕에서 열린 왕실의 추인식에 이어 집권 프아 타이당 본부에서 기자 회견을 한 뒤 세타 타위신 전 총리와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2024.8.18. [로이터 연합]
 

헌법까지 바꾼 군부의 “탁신은 절대 안돼!”

2014년 쿠데타의 주역 쁘라윳 짠오차 육군사령관이 총리가 돼 정치의 전면에 나선 군부는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민정이양을 서두르지 않고 ‘국가평화질서평의회’라는 이름으로 5년 가까이 군사독재체제를 유지했다. 그것은 탁신파 세력을 약화시키고, 당시 건강이 악화됐던 푸미폰 국왕(재위 1946~2016년) 후계 왕을 군부 통제하에 앉히고, 총선에서 지더라도 군부가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새로 만들어진 2014년 헌법은 단독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장악하기 어려운 투표방식을 채용하고, 상원의원은 사실상 군부가 지명하며, 설사 하원에서 탁신파 정당이 제1당이 되더라도 총리 지명을 상하 양원 합계 의석의 과반수을 얻어야 하도록 개악됐다. 절대로 탁신파가 정권을 잡지 못하게 하겠다는 노골적인 ‘반탁신 헌법’이었다.

그 약 5년간의 군정 기간에 헌법재판소의 판사 9명 중 다수가 친군부 보수파 판사들로 채워졌다. 의회에서 다수파가 될 수 없는 친군부 보수파가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이용해 ‘사법 쿠데타’를 일으키는 태국 정치의 고질적인 구조가 그때 완성됐다.

그럼에도 2019년 민정이양을 위한 총선에서 다시 탁신당이 제1당이 됐으나, 군부와 그 지지자들이 만든 ‘국민국가의 힘’당이 개악된 헌법을 활용해 쁘라윳을 총리로 앉히고 정권을 꿰찼다.

 

태국 헌법재판소가 반(反)불경죄 개혁을 요구한 전진당에 대해 국왕 불경죄로 해산명령을 내린 지난 7일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전진당 대표 피타 림짜른랏.2024.8.7. [로이터 연합]
 

그랬던 군부가 탁신을 급히 불러들인 이유

탁신은 2023년 8월 망명 17년만에 귀국했다.(잉락은 아직도 귀국하지 못했다) 바로 3개월 전인 5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쁘라윳의 친군부 보수파가 졌기 때문이다. 그 총선에서 군부파도 탁신파도 아닌 제3의 ‘급진세력’(중도 좌파)인 ‘전진당’(2019년 총선에서 81석을 얻어 제3당이 된 ‘신미래당’의 후신)이 151석을 얻어 제1당이 되자, 군부는 망명 중이던 탁신을 불러들여 그와 타협을 했다. 더 위협적이고 더 큰 적을 상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적과 손을 잡은 것이다.

피타 림짜른랏(43)이 이끈 제1당 ‘전진당’의 기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군부의 정치관여 금지와 징병제 폐지, 군사예산 삭감, 국왕 불경죄 개혁 등을 요구하는 전진당과는 타협이 불가능했다. 국왕 불경죄란 군주제 개혁 요구나 비판을 터부시하는 습속이나 관행에 위배된다는 모호한 이유로 금고 15년 형까지 가는 중벌을 가할 수 있는 죄인데, 왕실과 결탁한 군부가 민간인 정치생명을 끊거나 그들을 길들이는 장치로 악용해 왔다.

망명지에서 탁신을 불러들인 군부는 탁신당의 세타 타위신을 총리직에 앉히고 실권을 유지했다. 탁신파 사람을 총리에 앉혔지만 탁신 본인은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태국의 전 총리 탁신 친나왓(왼쪽)이 딸 페통탄과 함께 22일 방콕의 돈므앙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2024.8.22. [AP 연합]
 

피해자이자 수혜자인 탁신 집안

비록 군부의 모진 탄압을 받았지만, 탁신은 그 자신을 포함해서 차녀 페통탄까지 그의 집안 사람 4명이 총리직을 맡았을 정도로 왜곡된 태국 정치체제의 피해자이자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런 태국 정치 현실에서 일정한 지분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서는 군부와 타협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체 힘만으로는 군부를 몰아내기 어렵고, 설사 몰아내더라도 이젠 ‘탁신파도 싫고 군부도 싫다’는 제3의 급진세력이 탁신파를 대체할 가능성이 큰 쪽으로 태국사회가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 군부 쿠데타와 거기에 저항한 학생 등 민중의 힘이 부딪치면서 많은 피를 흘린 뒤 태국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 갔다. 전진당의 대두는 그런 태국사회 변화의 소산이다.

탁신파도 친군부 보수파도 아닌 제3세력의 등장

하지만 군부가 그런 전진당의 대두를 그냥 놔 둘 리가 없다. 군부는 이번에도 자신들이 전면에 직접 나서는 쿠데타보다는 헌법재판소를 앞세웠다. 2007년과 2011년 탁신당 해산에 이어, 2020년 신미래당(전진당 전신) 해산, 그리고 2024년 1월 또 다시 신미래당 후신인 전진당에 대해 해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불경죄 개혁 요구가 불경죄를 금하는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피타 림짜른랏 대표 등 전진당 간부 11명에 대해서는 앞으로 10년간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사법 쿠데타’에도 전진당은 ‘국민당’의 이름으로 금방 재탄생했다. 피타 대표는 헌재의 당 해산 판결 뒤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며 자신이 공부했던 미국 하버드대로 떠났다. 

지난 8월 14일에 세타 총리를 해임할 때 헌법재판소가 이유로 든 것은 치졸하게도 그가 실형을 받은 탁신의 변호사를 각료로 임명했다는 것이었다. 정작 탁신은 망명에서 돌아 온 뒤 가석방 상태에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군부가 헌법재판소를 앞세워 세타 총리를 해임한 것은 세타가 국방장관을 현역군인이 아닌 민간인에게 맡기고, 경제성장 정책을 중시하면서 군 예산을 삭감한 것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지만, 정치활동을 재개한 탁신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탁신의 둘째 딸을 총리에 앉힌 것도 세타보다는 다루기 쉽고, 여차하면 세타처럼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군부의 계산이자 경고라는 해석이 있다.

태국 경제까지 망치는 일상적인 정치불안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이런 왜곡된 정치구조로 인한 태국의 일상적인 정치불안이 태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의 2024년 예상 성장률은 2~3%로, 당초 예상(2.2~3.2%)보다도 0.2% 포인트 더 내려갔다. 주력인 제조업 설비가동률은 60%로, 올해 마이너스 3% 성장이 예상되며, 중국에 대한 수출도 줄어 1분기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농업부문 GDP도 줄었다.

이는 인도네시아의 5.1% 성장률과 수출 0.5% 증가, 그리고 베트남의 5.7%, 필리핀의 5.7%(1분기) 성장과 대비된다. 이런 경제 부진은 잦은 쿠데타에서 보듯 변화를 거부하는 군부 등 보수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잦은 정변으로 정치불안정이 일상화한 탓이 크다. 태국의 정치불안이 생산적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외국의 투자와 교역 등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들이 많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법 쿠데타’

“잃어버린 20년” 얘기를 듣는 태국의 1인당 명목 GDP는 7812달러로, 이웃 말레이시아(1만 3315달러)나 중국(1만 3136달러)(2024년)보다 훨씬 적다. 원래 다른 동남아 국가들보다 앞서가던 태국의 이런 정체는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 얘기를 할 때 흔히 남미 아르헨티나와 함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변화하는 세계와 민심의 바람을 외면하고 거부하는 친군부 보수파 정치세력의 기득권 집착이 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민심을 반영하는 총선거와 의회(국회)의 의석 변화에 눈감고 자신들이 임명한 재판관들로 채운 헌법재판소를 앞세운 ‘사법 쿠데타’로 정치경제 권력을 유지하려는 태국의 친군부 보수세력의 이런 행태는 우리에게도 낮설지 않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

방류 1년 동안 집요하게 '괴담' 유포해온 언론들

ALPS처리하면 안전? 삼중수소보다 위험한 핵종들

 

오늘로 만 1년이다. ‘ALPS 처리수’라고 이름지은 핵폐수를 일본정부(도쿄전력)는 일곱 차례에 걸쳐 5만 4734톤을 바다에 투기했다. 향후 30년간 버리겠다고 한다.  한국정부는 지난 1년 아무런 일이 없었다며 엉뚱하게 화살을 일본이 아닌 한국 야당에 돌리며 "국민을 선동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최근 이상한 방향으로 ‘괴담’을 유포하는 괴상한 언론과 정치인이 있다. 팩트 체크를 해보자.

1. [ALPS처리수가 위험한 이유] 정상적인 가동 원전에서 배출되는 폐수와 후쿠시마 ALPS처리수는 완전히 다르다. 후자는 멜트다운(노심용융)된, 핵연료가 녹아내린 사고이므로 알프스(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로 아무리 정화 처리를 해도 그 폐수에 다른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다. 세슘137, 세슘135, 스트론튬90, 요오드131, 요오드129 등 12개의 핵종은 제거되지 않았다.

ALPS가 처리할 수 없는 핵종 중 11개는 정상가동원자로의 폐수에 포함되지 않은 핵종이다. 64개 핵종 중 삼중수소와 C(탄소)14는 아무리 ALPS처리를 해도 구조적으로 걸러지지 않는다. 3호기의 일부연료인 치명적인 플루토늄도 마찬가지다.

2. [삼중수소 외의 핵종의 위험성] 일본 정부는 방사성 오염수의 위험을 축소하기 위해 삼중수소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삼중수소 외 탄소14, 스트론튬90, 세슘, 플루토늄, 요오드 같은 방사성 핵종이 더 위험하다.

탄소14의 반감기는 5730년. 수천 년에 걸쳐 환경 속에 존재하며 탄소는 모든 생물에 편입되므로 장기적으로 인간도 세포DNA가 손상된다. 삼중수소보다 32배나 유해하다. WHO의 해양과학자인 켄 부셀러 박사는 탄소14의 경우 삼중수소에 비해 생물농축지수가 5만 배, 코발트60은 삼중수소보다 퇴적토에 30만 배 더 잘 결합한다고 지적한다.

3. [삼중수소의 위험성] 일본정부가 인정하는 삼중수소만 따져도 문제가 많다. 삼중수소 농도가 73만Bq(베크렐)인 후쿠시마 오염수를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로 처리해 일본 배출기준 6만Bq보다 40분의 1 수준으로 낮은 1500Bq로 줄여 방류한다는 것이다. 음용수 기준으로 보면 미국은 740Bq, 유럽이 100Bq, 미 캘리포니아주는 15Bq이다. 기준조차 제멋대로다.

‘ALPS처리수’를 측정한 결과 전체 시료의 34%가 기준치 이하이고 나머지 66%가 기준치 이상인데, 기준치의 1~5배가 31%, 5~10배가 17%, 10~100배가 13%, 100~19,909배가 5%로 드러났다. 식품 방사선 기준치가 100Bq(베크렐)/kg이더라도 어른과 아이는 피해정도가 완전히 다르다. 영유아의 경우 4~8Bq를 넘어서는 안 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제6차 일본 후쿠시마 해양투기 강행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일본 도쿄전력은 지난 17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6차 해양 방류를 개시했다. 2024.5.20. [연합]
 

4. [신뢰할 수 없는 도쿄전력 데이터] 도쿄전력은 64개 방사성 핵종 중 9개 핵종만 검사해 발표했고 그것도 저장탱크의 4분의 1에서만 측정했다. 미국 페렝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그 9개의 방사성 핵종은 핵폐수투기의 안전성을 입증할 대표성이나 인과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5. [오염된 생선의 실태] 희석해서 버린다고는 해도, 버리는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IAEA도 정상적인 작업에서 발생하는 희석 외에 의도적으로 물질을 희석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희석하는 것은 일본정부의 쇼나 다름없다. 바다는 하나다. 식물성플랑크톤이 방사능에 오염된 후 먹이사슬에 의해 점차 큰 생선으로 방사능이 축적되고 결국에는 사람의 몸 안에 들어온다. 체내 피폭은 대기중 피폭보다 인체에 큰 위협이 된다. 어릴수록 더 치명적이다.

삼중수소만 따져도, 영국 셀라필드핵연료재처리공장이 있는 브리스톨해협에서, 바닷물이 자연상태에서 5~50Bq/L인 데 비해 넙치 4000~5만 Bq/㎏, 홍합 2000~4만 Bq/㎏의 농축이 인정되었다. 이들 어종 농축률 평균치의 각 3000배와 2300배였다. 작년 5월 후쿠시마원전 항구 내에서 잡힌 우럭에서 기준치의 180배에 달하는 1만8000Bq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 이는 자연 상태의 삼중수소수(HTO)와 내부피폭된 유기결합형 삼중수소(OBT)의 피해 차이를 보여준다.

이 데이터를 놓고 유추해보면 먹이사슬에 의해, 상위어종의 방사능은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바닷물을 직접 마시는 게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오염된 생선을 먹는다. 핵폐수로 오염된 바닷물은 농도가 아무리 낮은들 결국에는 위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해양투기하지 않고도 대안이 있다] 삼중수소의 반감기는 12.3년. 100년이 지나면 독성이 1000분의 1로 완전히 사라진다. 기존 1000t 탱크 증설이나 10만t 대형탱크 신설을 통해 20년 더 보관하면 삼중수소의 80%가 사라진다는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 켄 부셀러 박사의 제안도 있다. 땅은 얼마든지 있다. 핵폐수를 시멘트와 섞어 몰타르화해 건설현장에 활용하는 방법도 전문가들이 권고하고 있다.

7. [일본의 여론도 투기를 반대한다] 2020년 11~12월, 아사히신문이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우편 여론조사에서는 55%가 방류에 반대했다. 100개 해양학 연구소가 모인 전미해양연구소협회(NAML) 그리고 노벨평화상(1985년) 수상단체인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의 (IPPNW)는 핵 폐수 투기의 반대를 분명히했다.

8. [일본정부의 자기모순] 일본 정부는 과거 러시아 핵잠수함에서 방류하려는 폐기물을 극렬히 반대하여 런던협약(1996)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젠 일본정부가 저지르고 있다.

9. [일본정부가 강행하는 이유] 비용을 핑계로 해양투기를 강행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강한 의심을 사고 있다. 2024년 이후 가동목표인 롯카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은 사용후핵연료를 연간 800t 처리한다. 매년 약 9700조Bq의 삼중수소를 해양으로, 약 1000조Bq의 삼중수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게 되며 매년 약 50조Bq의 탄소14와 500억Bq의 요오드129를 방출한다. 즉 후쿠시마 핵폐수의 10배의 양을 매년 바다로 방출하는 것이다. 롯카쇼무라에서 다핵종 오염수의 해양투기를 하지 못한다면 일본 원자력정책 자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런 의도를 가진 일본정부가, 장차 발생할 대량의 해양투기에 대한 전례를 미리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본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의 지적이다.

10. [미국연방정부의 월권] 작년 여름 미국의 매사추세츠주와 뉴욕주는 훨씬 적은 수준의 핵폐수조차 극력 저지하였다. 주정부들의 판단이 옳은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연방정부는 IAEA를 앞세워 일본정부의 핵폐수투기를 용인하고 있다. (IAEA담당자가 일본정부로부터 100만유로의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다) 이는 미국이 일본을 핵기지국가로 삼으려는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고 식자들은 진단한다. 미중대립국면에서 종래의 핵우산정책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일본이 언제라도 핵무장이 가능한 상태로 바뀌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지켜온 핵우산정책을 미국이 변경하는 셈이다. 미국민과 미국의회의 합의를 거쳐야 하는 심각하고도 중대한 주제이다. 이에 대한 공론적인 논의가 없이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이 전개되는 것은 미국연방정부의 월권이다. 지구촌 모두로부터 규탄받아 마땅하다.

부화뇌동하는 한국정부는 더욱 문제다. 국가의 명운과 관련되는 이런 문제는 국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으면 위헌이다. 자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면서 일본수산물 수입금지를 관철하고 있는 중국과 비교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원래 버리면 안 되는 독극물이다. 그런 나쁜 행위를 저질러놓고도 잘못한 게 무어냐고 반문하는 것은 조폭이나 다름없다. 그런 행태가 용인된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핵폐수 투기는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 이원영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PRCDN) 운영위원 >

"고교야구연맹에서 제명하는 것을 요구"

"역시 한국어 교가는 기분이 나쁘다",

 

"교토의 수치", "왜 다른 나라 학교가 나왔나"

 
 
승리 후 한국어 교가 부르는 교토국제고 야구부 (니시노미야[일본] 교도=연합) 한국계 국제학교인 교토국제고 야구부 선수들이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승리한 직후에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를 부르고 있다. 2024.8.23 photo@yna.co.kr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23일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일컬어지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뒤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혐한 글이 잇달아 올라오자 교토부 지사가 자제를 촉구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교토국제고가 소재한 교토부의 니시와키 다카토시 지사는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차별적인 투고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삼가라"고 촉구했다.

니시와키 지사는 SNS 운영사에 민족 차별적인 내용 등이 포함된 4건에 대해서는 이미 삭제 요청을 했다면서 담당 부서가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토국제고 우승 후 엑스(X·옛 트위터) 등에는 "교토국제고를 고교야구연맹에서 제명하는 것을 요구한다"라거나 "역시 한국어 교가는 기분이 나쁘다", "교토의 수치", "왜 다른 나라 학교가 나왔나" 등 혐한에 가까운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같은 일본내 심한 혐한 반응에 한국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교토국제고는 재일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1947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전신으로 교가도 한국어로 돼 있다.

이날 경기에서도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고시엔 전통에 따라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중계됐다.

일본 우익은 교토국제고가 한국계 학교이며 교가가 한국어라는 점을 문제 삼으며 공격하고 있다.

앞서 교토국제고가 2021년 여름 고시엔 본선에서 4강에 처음 진출했을 때도 한국어 교가를 문제 삼는 협박 전화가 학교에 걸려 오고 SNS에서도 혐한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 연합 박성진 특파원 >

일본 내 한국계 교토국제고, 고시엔 첫 우승 (니시노미야[일본]=연합)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결승전 교토국제고와 간토다이이치고 경기. 2-1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한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재학생들이 관중석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4.8.23

 

쿠르스크 진공의 역사

 
 
지난 11일 우크라이나 수미 지역의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장갑차에 탑승해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모습. 로이터 [연합]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군대
스탈린그라드 참패 뒤 반격 거점
서부전선 전력 차출해 몰락 가속


우크라, 기존 전선마저 붕괴 우려

우크라이나가 지난 6일 전격적으로 국경을 넘어 진공한 러시아 서남부 도시 쿠르스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에 쐐기를 박은 곳이다. 쿠르스크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을 결정한 곳으로 다시 떠올랐다. 2차 대전 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참패해 수세로 몰린 나치 독일은 1943년 7월 당시 소련의 쿠르스크에서 반격을 시도했으나 다시 참패했다. 사상 최대의 기갑전인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은 탱크 등 대부분 전력을 쏟아부었으나 소모하면서 재기 불능에 빠졌다. 우크라이나의 이번 쿠르스크 침공 작전은 당시를 연상케 하는 기시감을 준다.

아돌프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 패전 뒤 자국민과 동맹국에 나치 독일이 여전히 건재하고 전쟁 수행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길 원했다. 이미 동부전선 전역에서 밀리는 독일군의 수세를 반전시키려고 선택한 곳이 쿠르스크였다.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초기 때 막강한 기갑전력과 대규모 공군력을 앞세운 ‘전격전’으로 승승장구했으나, 스탈린그라드의 시가전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쿠르스크는 평원 지대이다. 그래서 히틀러는 이곳에서 탱크 등 기갑 화력을 집중해 소련의 전선을 돌파해 무너뜨리려 했다.

 우크라이나의 승부수 통할까

당시 쿠르스크 일대 전선은 소련이 서쪽으로 삐죽이 밀고 나온 모양새여서 방어에 취약한 형태였다. 독일 최고 지휘부는 북쪽과 남쪽에서 공격해, 서쪽으로 돌출한 전선에 있던 소련군을 고립시키려 했다. 독일의 장군들은 이 작전에 반대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소련에 병력과 자원에서 밀리는 만큼 ‘전략적 방어전’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력과 자원이 우세한 소련군에 소모전에서 말려든다면 전투에서 이겨도 전략적 승리가 담보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프랑스 등 서부전선에 있던 병력과 자원까지 끌어들여 쿠르스크에 투입했다. 1943년 7월5일 ‘성채작전’이라는 작전명으로 시작된 독일의 공세는 일주일 만인 12일에 ‘쿠투조프 작전’으로 시작된 소련의 ‘쿠르스크 전략공세’에 봉착하며 급속히 위력을 상실했다.

앞서 쿠르스크 전투가 시작된 지 나흘 만인 7월9일 연합군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에 상륙했다. 히틀러는 쿠르스크 전투 일주일 만에 공세를 취소하고는, 병력을 이탈리아로 재파견해야만 했다. 소련의 반격 앞에 독일군에 남아 있던 정예 기갑병력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독일은 쿠르스크 전투를 하려고 서부전선의 전력을 돌렸다가 서부와 동부 전선 모두가 무너졌다. 쿠르스크에서 독일은 약 40만명 안팎의 사상자를 냈고, 약 1천대의 탱크와 700여대의 전투기를 잃었다. 소련은 그보다도 더 많은 손실을 봤지만, 전시 경제체제가 확장되면서 피해를 극복할 수 있었다. 만약 독일이 쿠르스크 전투를 벌이지 않고 전략적 방어를 취했다면 소련의 진군은 상당히 지체됐을 것이다. 소련의 베를린 점령이나, 2차 대전 뒤 동구권의 사회주의화도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해 11월부터 러시아의 ‘점령지 굳히기’로 들어갔다. 러시아는 동·남부 전선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략적 방어전으로 서방의 지원을 업은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막아낸 뒤 올해 초부터는 재반격에 나섰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소모전을 벌였고, 우크라이나는 이에 말려들었다. 우크라이나는 올해 초부터 기존 전선에서 밀리고 성과를 올릴 가능성이 없자 쿠르스크 진공 작전이라는 극약 처방을 했다.

기존 전선에 있던 정예 병력을 빼내 쿠르스크 작전에 투입했다. 이미 가망이 없어진 기존 전선에서 더 손실을 입더라도, 러시아 영토를 점령해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국군이 진공한 지역을 “완충지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 작전이 성공하려면 쿠르스크로 진격한 지역을 ‘점령지’로 굳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러시아의 반격을 막을 추가적인 병력과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제공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공군력에서 압도적 우위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로 진입한 통로인 수미 지역을 맹렬히 폭격하고 있다. 쿠르스크로 진격한 우크라이나군이 고립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도네츠크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동부 등 모든 전선에서 러시아의 공세가 격화되고 진공이 빨라지고 있다.

 러, ‘소모전’으로 승기 굳히기?

미국의 군사·전략 평론지인 ‘리스폰서블 스테이트크래프트’는 지난 15일 전문가 10명에게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작전에 대해 물었다. 10명 모두가 ‘우크라이나에 전술적, 전략적으로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중 1명만이 ‘심리적 차원에서 서방의 관심’을 유리한 점으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번 작전이 가져올 우크라이나의 전력 소모, 기존 전선의 붕괴, 러시아의 태도 강경화 등을 우려했다. 독일의 쿠르스크 전투처럼, 우크라이나도 쿠르스크에서 전력을 소모하고 기존 국내전선도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유명한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은 패전을 가속화할 큰 전략적 실책이다. 소모전에서 성공의 결정 요인은 영토 점령이 아니라 사상자 등 손실 비율인데, 서방은 이를 간과한다. 쿠르스크에서 손실 비율은 러시아에 두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하다. 첫째, 우크라이나군은 거의 방어가 없는 영토를 쳐들어갔기에 러시아도 사상자가 없었다. 둘째, 러시아는 신속히 공격으로 전환해 압도적 공군력을 동원해, 노출되고 타격하기 쉬운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하고 있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동부전선에서 절실히 필요한 최정예 병력을 차출한 것이다. 이는 중요한 전선에서 이미 균형이 기운 손실 비율을 러시아 쪽으로 더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쿠르스크 침공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이었는지를 고려하면, 러시아가 (오히려 이번 침공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전세가 기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쿠르스크 전투가 줄 영향은 막대할 것이 분명하다. < 한겨레 정의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