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농민합작 6년째 ‘천안함’ 이후 기약없는 대기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물어 지난해 5월24일 발표한 대북 제재 조처가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단체들이 여러 해씩 공들여온 인도적 차원의 남북 교류사업이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다.
2006년부터 벌여온 남북 농민들 사이의 유일한 교류사업인 통일딸기 사업은 당장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이 사업은 경남 사천·밀양의 딸기농가에서 조직배양을 통해 생산한 무균 상태의 딸기 새싹(모주)을 봄에 북에 보내면, 평양 천동국영농장 농민들이 이것을 모종으로 키워 가을에 다시 남으로 보내고, 남쪽 농민들이 비닐하우스에 모종을 심어 딸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5.24 조처 발표 이후인 올해 봄에도 ‘통일딸기’가 40t가량 생산됐다. 지난해 가을 북쪽 농민들이 얼어붙은 남북관계와 상관없이 애초 약속대로 모종을 키워 보내준 덕택이다.

이 사업을 주관하는 경남통일농업협력회는 올해도 딸기 새싹 1만5000주를 북에 보내 모종 20만주를 돌려받을 계획이다. 그러나 통일부가 반출허가를 해주지 않고 있다. 늦어도 이달 중순까지 새싹을 북에 보내지 못하면 올해는 때를 놓쳐 통일딸기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 협력회 관계자는 “천안함 침몰 사건 책임 규명이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인 것은 잘 알지만, 이 때문에 남북 농민들이 함께 벌이는 통일딸기 사업까지 중단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북한 당국보다 우리 정부가 더 경직되고 닫힌 듯하다”고 말했다.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본부를 통해 북한 어린이들에게 내복을 보내려고 성금 500만원을 모았지만,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 단체를 비롯한 전국의 10개 단체는 올 2월까지 5000만원을 모아 어린이 내복 1만벌을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언제 보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어 돈만 모아둔 채 내복 구입을 미루고 있다.

남북협력 제주도민운동본부가 1999년부터 해마다 벌여온 북한에 제주도 감귤 보내기 사업도 중단됐다. 전북도는 2008년부터 10년 동안 남북교류협력기금 89억원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달 말 현재 32억원을 조성했으나 단 한푼도 쓰지 못하고 있다. 전남도는 2003년부터 전남도민 남북교류협의회를 통해 인도적 차원의 북녘 동포 돕기 사업을 지원해왔으나, 200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예산을 쓰지 못했다.
충북 제천시는 북한 고성군에 사과·복숭아 과수원 5㏊를 조성하고 ‘농사 선생’과 농기계를 보내 보살펴왔으나, 금강산 총기 사고 이후 교류가 끊겼다. 부산 기장군은 지난해 11월30일 특산품인 마른미역 1200kg(5000만원어치)을 북쪽에 보내려 했으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는 2009년 북한에 보내려고 콤바인 2대를 마련했으나 보내지 못해 결국 농기계은행의 교육용과 임대용으로 쓰기로 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5.24 조처가 아직 유지되는 상황이라,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 교역이 중단된 상태”라며 “5.24 조처가 풀리기 전까지는 통일딸기 사업을 포함한 민간 차원의 교류사업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통일부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말라리아 방역물품의 반출은 승인해, 경기도는 다음달 7억9000만원어치를 북쪽에 전달할 예정이다. 남북교류에 역점을 두고 있는 인천시는 지난해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중단된 함북 온성군의 24개 유치원 어린이 1500명에게 빵과 두유 등을 다음달 보낼 예정이며, 올해 영유아·임산부 등 취약계층 지원 등에 6억원을 쓸 계획을 세우고 통일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