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기자인지를 가리는 것은 비교적 단순하다.
우선 존경하는 선배 언론인이 누구인지를 물어본다. 어떤 직업이든 처음 시작할 때에는 긍지와 보람으로 설렜을 것이다. 특히 전문직일 경우 더욱 그렇다. 투옥과 해직에도 주눅들지 않고 온갖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당당히 기자 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한 선배 언론인처럼 살고 싶은 기자들이 대다수였을 것으로 믿는다.
처음부터 기자 자리를 발판 삼아 출세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처럼 기자 생활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있다면 그런 기자는 처음부터 이른바 ‘폴리널리스트’가 될 싹이다. 그들은 권력에 대한 감시나 비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권력의 눈에 들어 발탁될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기삿거리를 선별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기자직에 대한 긍지의 근거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물어본다. 기자들은 자부심과 긍지가 높은 직업집단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영향력 있는 언론사의 기자가 되었다는 나름의 선민의식이 그런 자부심의 근거라면 위험하다. 그런 기자들은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더더욱 언론의 영향력에 기대어 달콤한 권력을 누리는 맛 때문이라면 이는 진정한 기자가 아니다.
진실의 수호자로서의 긍지가 기자로서 자랑스러움의 근거이어야 참된 기자이다.
언론직을 이용하여 정계나 공직 자리에 올라 언론 자유를 억압한 이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언론인을 지망했을까 궁금하다.
특히 최시중씨를 비롯하여 이 정권 들어와 권력의 핵심에 들어갔던 언론인 출신들은 줄줄이 감옥행이었다. 이들에겐 기자란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소명이 아니라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한낱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아직 사법적 처리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언론인로서는 이제 사망 선고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언론사에 적잖이 있다.
현재 언론에 몸담고 있으면서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데 앞장선 자들이다. 언론의 독립이 위협받을 때 이를 막아내는 울타리 구실을 하기는커녕 트로이 목마가 되었다.
권력을 대신하여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대가로 알량한 자리를 차지했다. 때로는 언론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인 사실마저 왜곡하기도 한다.
얼마 전 <문화방송>(MBC)은 “보도본부장이 노조원들의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에 일부 충격을 입어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노조가 폭력으로 방송 진행을 방해한 것으로 몰아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관련 동영상이 공개되고 일체의 신체적 접촉이 없었다고 하자 신체적 접촉이 아닌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두통 등의 진단을 받았다고 몇번이나 말을 바꾸었다고 한다. 사실조차 왜곡한다면, 이미 기자 자격이 없다.
물론 모든 언론인들이 투철한 기자 정신으로 무장된 지사가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의 정직성은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자체를 왜곡하고 거짓말을 한다면 기자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기자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그 정체성에 적합한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기자로 위장한 출세주의자들은 이제 커밍아웃해야 한다.
더는 기자직을 더럽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적어도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은 언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정연우 -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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