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통령 선거가 200일도 채 안 남았다. 새누리당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근혜라는 후보가 있는 데 반해 야당엔 그에 필적할 후보가 확실하게 대두되지 못하다 보니 장 밖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여전히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범야권 후보군 중 지지율 1위인 그가 아직도 정치권 진입에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둘러싼 추측과 해석에 어지럼증이 날 지경이다. 지난주에는 ‘안철수 대통령은 없다’는 본지 성한용 선임기자의 칼럼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정작 안 원장과 가까운 이들의 칼럼에 대한 반응은 좋은 충고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칼럼에서 제기한 문제의 상당부분이 그의 고민 지점과 맞닿아 있는 까닭일 터다. 그럼에도 그의 한 측근은 “지금 안 원장의 고민은 여느 정치인의 고민과 다르다. 그는 대통령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다. 지난해 9월1일 갑작스레 대통령 후보로 여론조사에 등장함으로써 일개 사회인이던 그가 타의로 정치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본격 정치인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하지 않나”라며 그의 고민의 깊이를 이해해달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현실정치는 녹록지 않다. 치열한 검증공세를 견뎌내는 일이나 스스로 정의·복지·평화로 간추린 시대의 비전을 실현할 구체적 각론을 제시해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적 문법도 잘 모르면서 제도권 정치에서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런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무시한 채 인기만 믿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덥석 나선다면 오히려 그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이 역사의 퇴행을 막고 87년 체제를 한 단계 높이는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보는 국민들로선, 안 원장의 계속되는 고민이 그 기회를 무산시키는 역작용을 낼까 우려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 결단의 내용이 성 기자의 말처럼 대통령 후보 자리를 비켜주는 일이 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치열한 고민과 철저한 준비를 거쳐 너무 늦기 전에 역사의 부름에 응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민이 안 원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신들의 뜻과 유리된 낡은 정치의 혁파다.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의 깊이를 보여줬다. 화들짝 놀란 기성 정치권은 당명을 바꾸느니 외부 수혈을 하느니 호들갑을 떨었지만, 진정한 변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난 총선에서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한 채 정권심판론만 되뇌다 패배를 맛본 야권은 물론이고, 수성에 성공한 새누리당도 선거가 끝나자마자 낡은 색깔론을 다시 끄집어내는 등 수구 본색으로 돌아가고 있다.
 
정치현실이 이렇게 흘러갈수록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구는 더 커지고, 현 단계에서 그 갈구가 안 원장을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정치 참여를 원치 않는다는 한 측근이 안 원장이 발을 빼려 해도 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것 같다고 걱정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렇다면 방법은 국민을 믿어보는 일이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의 말처럼 대중은 공정한 투표를 통해 승리를 쟁취할 폭발적인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배신해 그 힘을 무력화시키는 건 언제나 정치인들이다. 민주혁명 이후 첫 대선을 치른 이집트를 보자. 이집트 유권자의 65%는 민주세력에 표를 던졌다. 그러나 민주세력의 분열로 표는 분산됐고 이집트인들은 결선투표에서 이슬람근본주의자와 군부정권 잔존인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막힌 처지가 됐다. 87년 한국에서 우리가 이미 겪었듯이. 
이런 사태가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안 원장이 늘 말했듯이 과정이 중요하다. 목표를 대통령 자체보다 대선으로 가는 과정을 낡은 정치 혁신 과정으로 만드는 데 둔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이 그에게 기탁한 정치혁신을 어느 정도 이루는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의 결과가 안철수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 한겨레신문 권태선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