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원이 지난 1일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한 발언은 여러모로 짚어볼 대목이 많다.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스스로 사퇴하지 않으면 국회가 제명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한 박 의원의 첫 언급이니 심사숙고 끝에 나온 발언일 것이다.
 
두 의원이 즉각 사퇴하는 게 맞다고 본다.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비례대표 경선 과정의 하자가 아니라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의심스러운 국가관을 이유로 국회의원 자격을 심사해 제명하기로 치면 남아날 의원이 별로 없을 것이다. 
박근혜 의원의 이날 발언 시점은 새누리당이 친박계 강창희 의원을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한 의원총회장을 나오면서였다. 강 의원은 육사 25기 시절 축구부 주장을 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깊은 친분을 맺었고, 신군부의 비밀결사인 하나회 멤버로 활동했다. 12.12 군사쿠데타를 주도해 내란죄를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 덕택에 국회에 입성한 사람이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시킬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죄(형법 87조)가 내란죄다. 야당이 강 의원의 국가관이 의심스러우니 국회의원 자격을 심사하자고 나서면 어쩔 것인가.
 
‘국가관’은 말 그대로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국회의원 머릿속의 관점을 문제 삼아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권 유력 대통령 후보의 ‘민주주의관’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의심받는’이란 단어도 너무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낙인찍기엔 편리하지만 법치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 북한과 내통해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면 법대로 처벌하면 될 일이다. 
박근혜 의원은 ‘종북세력’이란 용어를 직접 사용한 적이 없다. 지난 4월 총선 때도 핵심 참모들에게 야권을 공격하더라도 종북세력이란 용어는 쓰지 말라고 특별히 지시했다고 한다. 높게 평가할 대목이다. 종북세력이란 단어에 내포돼 있는 일방적인 낙인찍기의 폭력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야권이 ‘친박계’라는 용어 대신 ‘박근혜 추종세력’이란 의미로 ‘종박계’라고 부른다면 새누리당 사람들이 기분 좋을 리 없지 않은가. 
국회의원에게 제명이란 사형선고와 같다. 명백하고도 합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며,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끝난 경우에나 검토해볼 문제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1979년 10월4일 ‘반국가적 언동으로 국회의 위신과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김영삼 의원을 제명했고, 이는 부마항쟁과 유신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통치하던 1979년의 ‘반국가적 언동’과 박근혜 의원이 여권 유력 대선후보인 2012년의 ‘의심스러운 국가관’은 얼마나 다른가.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북한의 주장도 문제지만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은 더 큰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민간인 사찰의 몸통으로 지목받는 와중에 주변의 핵심 인물들이 차례로 구속된 이 대통령은 누구보다 곤궁하고 옹색한 처지다. 도덕적 정당성이 무너진 채 황혼기 권력의 무상함을 곱씹고 있을 임기 말의 대통령에게 통합진보당 사태가 느닷없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모양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을 가장 반길 사람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일지 모른다.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국회가 제명을 시도하거나 검찰이 당원명부를 통째로 압수하는 무리수가 결과적으로 이들의 입지를 도와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사태의 본질인 비례대표 경선 부정 문제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 임석규 - 한겨레 신문 정치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