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진 법무장관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사건 재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어제 외국 출장을 떠났다. 아마도 발표 뒤 자신에게 쏟아질 질책과 추궁을 피하려 잔꾀를 부린 모양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뿐 아니라 내곡동 사저 땅 헐값 매입 의혹 사건 등 최근의 권력형 비리 사건들은 예외 없이 용두사미, 꼬리 자르기 수사로 끝나가고 있다. 권 장관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한 아마도 검찰은 정권의 ‘충견’ 노릇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발표하더라도 국민을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다.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권 장관은 몸통으로 지목되는 이명박 대통령 못지않게 중요한 구실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경락 전 지원관실 총괄기획과장과 장진수 전 주무관 등은 이구동성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과정에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고 직간접으로 증언하고 있다. 구치소 면회 기록과 중앙징계위에 낸 서면진술서, ‘VIP 보고 문건’, 녹취록 등 관련 증거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 권 장관을 멀쩡하게 내버려두고 무슨 재수사 결과를 발표한단 말인가. 소가 웃을 일이다. 진 전 과장이 진실을 폭로하지 않는 대가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을 둘러싼 추악한 뒷거래와 암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권 장관이 버틸수록 검찰은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노건평씨 사건에서는 있지도 않은 수백억원 비밀계좌설까지 퍼뜨리던 검찰이 비비케이 가짜편지 사건에서는 배후가 좁혀지자 돌연 손을 놓고 불기소 운운하고 있다. 그런 검찰이니 현직 대통령과 아들이 연루된 내곡동 사저 사건을 제대로 처리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검사라기보다 ‘국선변호인’이란 비아냥도 감수하며 정권의 시녀를 자임하는 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행태가 계속된다면 권재진 장관-한상대 총장은 검찰 조직을 망가뜨린 사상 최악 조합으로 기록될 것이다. 새누리당은 총선 전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민간인 사찰은 반드시 근절돼야 할 중대 문제”라고 바람을 잡고 비대위원 성명까지 내어 권 장관 사퇴를 요구하더니 선거가 끝나자 입을 싹 씻고 모른체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여당도 더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고 다가오는 국회에서 검찰은 개혁 심판대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 장관이 당장 사퇴하는 것만이 조금이라도 조직에 누를 덜 끼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