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정리를 하다말고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나이가 들수록 딸은 친정어머니를 닮아간다더니 오십대의 어머니가 거울 속에서 빙긋이 웃고 있다. 한가닥 굵은 주름을 미간에 세운 채 다소 거칠어 보이는 여인, 차분히 앉아 화장을 해 본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그래도 여자이고 싶었던 듯 수시수시 장만한 매니큐어가 설합이며 화장대 위에 꽤 많이 놓여 있다. 하나씩 흔들어 가며 존폐 여부를 가늠한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못 쓰게 된 놈, 주인의 손길 따라 흐르듯이 미끄러지는 놈, 버려야할지 말아야 할지 얼른 감이 오지 않는 걸쭉한 놈 등 각양각색이다. 
‘그래 이 놈들에게 마지막 소임을 부여하자.’ 머리 아래 감춰 놓은 비상의 붓을 든다. 색깔의 조화쯤은 중요하지 않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 열 개의 발톱이 삐툴 빼툴 모두 제 각각으로 화려하게 반짝인다. 
 
 “어머니, 제가 페티큐어 발라 드릴께요.”
 “아, 이거? 그냥 심심풀이로 발라본거야. 색스럽지 않아?” 씩 웃는 며느리, 금방 지우리라 여겼나보다. 
 “그래두, 여름엔 맨발보다 칠 하는 게 더 예뻐요.”

느닷없이 알록달록하게 발톱에 물들이고 나온 나를 보고 눈빛을 반짝이던 며느리, 어느 사이 화장품 통을 들고 뒤곁으로 나온다.
 “어머니, 발을 여기다 올려보세요.”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고추장 항아리를 발아래 당겨 놓으며 머뭇거리는 나를 재촉한다. 냄새나는 발을 며느리에게 맡긴다는 게 좀 석연찮지만 몇 번 빼다가 못 이기는 척 시키는 대로 한다. 
아이는 아세톤으로 나의 불량한 전작을 지우느라 애를 쓰더니 빨강, 녹색, 황금색 등등 이것저것 색상을 맞추어 본다. 이내 흑장미 빨강으로 낙찰하곤 호호 불어가며 못생긴 발톱 호사 시키느라 골똘하다. 그런 아이를 보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만약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이 아이처럼 행동 할 수 있었을까, 나의 시어머니도 나처럼 발을 내밀고 계셨을까? 답은 서로 불가능이었을 것 같다. 며느리는 어른이 어려워 감히 이런 제안도 못 했을 게 뻔하고 어른은 체통 운운하며 애써 피했으리라.
 
신세대 며느리를 들이고부터 나는 시시때때 적잖이 당황한다. 
시가와 친가를 구분 않는 언행이며 자신의 의사를 똑 바로 표현하는 당당함, 그런가하면 며느리 역할이란 단어가 존재하는지 애매할 때가 많다. 시집살이를 제대로 한 시어미가 보기에 사사건건 흠이지만 그래도 품어야 서로 편하다. 
그러다가 슬며시 시어미 근성이 발동하면 아이는 네, 네 건성 대답으로 무마한다. 그것만으로도 꼬였던 마음은 슬슬 풀린다. 
여아로 태어남이 죄송했던 우리 세대와 남, 여 구별없이 당당하게 태어나 왕처럼 군림하며 자란 세대와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어느 사이 아이의 손아래 흑장미 두 송이가 수줍은 듯 벌어졌다. 나는 함빡 웃음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앞으로 계속 책임지라는 협박(?)과 함께 시어미의 권위도 며느리에의 요구도 하나씩 내려놓는다.

< 임순숙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