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에서 6월초까지는 미국의 졸업시즌이다. 이 즈음엔 교육도시인 보스턴의 호텔은 방이 완전히 동이 난다. 자식들의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날아온 학부모들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졸업식에서 내가 유독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졸업식축사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미국대학의 가장 훌륭한 전통중 하나다.
전현직 대통령부터 뉴스앵커, 소설가, 대법관, 기업인, 영화배우, 코미디언까지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이 미국전역의 대학에서 새롭게 세상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축복하고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 더구나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 이들의 축사가 학교울타리를 넘어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돼 감동을 주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맘때에는 이런 훌륭한 졸업식 축사를 인터넷에서 찾아 보며 인생의 지혜를 배우곤 한다.
명사들의 축사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이들이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판에 박힌 공자님 말씀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이들은 인생경험에서 우러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성공담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실패담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역경과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냈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가를 졸업생들과 공유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졸업식축사  중 하나인 2005년 스탠포드대의 스티브 잡스 졸업식축사다. 유명한 극작가인 애론 소킨에게 졸업식축사작성을 부탁했던 그는 소킨이 마지막까지 도와주지 않자 할 수 없이 졸업식 직전 어느날 밤 직접 축사를 작성한다. 암투병을 포함한 그의 인생에서의 3가지 역경이야기를 담은 그 졸업식축사는 가슴을 때리는 진실된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그는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내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해리 포터시리즈의 작가인 JK롤링의 2008년 하버드대 축사  도 그렇다. 그녀는 애딸린 실직 이혼녀로서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실패를 겪고 나서 더 강인하고 현명해졌다. 실패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그 어떤 자격증보다도 가치있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에게도 졸업식축사는 소중한 시간이다. 올해 보스턴대에서 있었던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했던 월드뱅크의 이기훈씨는 “축사를 맡은 구글의 에릭 슈미트회장이 얼마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지 학생과 학부모들 모두 폭소를 터뜨리며 들었다”고 말했다. 슈미트회장은 이날 축사  에서 “하루 한시간은 스마트폰을 끄고 진짜 사람과 대화하라”고 충고했다. 이씨는 특히 전체 졸업식외에도 단과대별로 졸업식이 따로 있는데 아들이 속한 단과대에서는 7살때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됐으나 평생의 노력으로 장애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동문이 와서 축사  를 해 숙연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17년전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는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은 것 이외에는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졸업식풍경이 어떤지 트위터를 통해서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요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학교 높으신 분들의 틀에 박힌 이야기만 이어져 졸업식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경우도 있었다. 더 가슴아프게 느꼈던 것은 취업에 실패한 졸업생의 경우 아예 졸업식에 가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학졸업식에서도 미국의 경우처럼 이런 멋진 전통이 생겨나고 졸업생과 학부모들이 축사연사의 이야기를 즐겼으면 좋겠다. 적어도 졸업식때만큼은 한국의 대학졸업생들도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긍정과 도전의 에너지로 가득찬 희망의 시간을 갖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임정욱 - 전 라이코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