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목사란 말이 어색하다. 그러나 명의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붙여보았다. 명의라면 중국의 편작을 따를 자 있을까? 이 달에 읽은 책 ‘신도림 역에서 공자를 만나다.’ 에서 편작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에게 두 형이 있었는데 모두 훌륭했으나 편작이 가장 유명했다. 어느 날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세 형제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난가? 편작이 대답하기를 큰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이 그 다음이며 자신은 가장 떨어진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어째서 선생이 가장 유명한가 하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큰형은 병을 치료할 때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병의 원인이 될 요소를 치료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가 사전에 병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이름이 나지 않았고 둘째 형이 병을 치료할 때는 증세가 나타나는 초기에 치료를 하기에 사람들은 그가 가벼운 병을 치료한 줄로 여기기 때문에 이름이 동네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요.
그런데 자신이 병을 치료할 때는 증세가 이미 심각해졌을 때이므로 자신이 경맥에 침을 놓고 피를 빼거나 피부에 약을 붙이는 대수술 과정을 보기에 제 의술이 뛰어나다고 여기기에 명성이 이렇게 전국에 퍼져나가 유명한 사람이 된 것이라고 답했다.
편작의 겸손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의 말에 수긍을 하는 것은 진정한 명의는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세를 따지고 처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병의 뿌리를 알고 미리 예방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적어도 병의 상태가 초기에 이르렀다 생각하면 빨리 조처해주는 것이 훌륭한 명의가 아니겠는가? 편작이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병의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치료하는 것도 귀중하지만 근본을 미리미리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명의라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영혼을 치료하는 명의는 누구인가? 앞에서 어색하게 써놓은 명 목사는 누굴까? 오늘날 속칭 대형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일까? 사자후를 토하면서 강단에서 명설교로 또는 대부흥사로 이름을 날리는 저들이 명 목사일까?
가만 살펴 보면 대부분의 목사들이 부끄럽지만 편작처럼 나타난 증세를 가지고 치료의 방법을 제시하고 이렇게 살자 저렇게 살면 안 된다 하고 부르짖는 목사들이 아닐까? 그들도 결코 잘못되거나 훌륭하지 못한 목사는 아니다. 저들도 편작처럼 필요한 목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어떤 문제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훈련시키며 또한 설교의 시간이 치료의 목적보다 병의 근원을 아예 뿌리 채 뽑겠다는 의욕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성도들을 훈련시킨다면 얼마나 훌륭한 영적 명의가 되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아직 미련하여 그 근본적인 치료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냥 나타난 현상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냥 침을 발라주거나 고약으로 때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때로는 수술도 필요하고 때로는 독한 약도 먹여야 하겠지만 목회자들은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병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보호하는 일이나 혹은 작은 일이 생겼을 때라도 미리미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몸을 보완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그런 일에 더 큰 관심을 쏟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오늘의 목회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치료를 잘 해주는 명의가 되었는가? 나에 대한 소문이 어떤가? 나는 많은 사람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있는가? 하는 일에 관심을 쏟으니 세상적으로 명의의 반열에 올랐다 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글쎄?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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