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독립운동 관련 단체 회원들이 8월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친일 전력으로 논란을 빚은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을 기리는 정부의 ‘백선엽 한미동맹상’ 제정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백씨를 상징하는 조형물에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둘렀다.
축구 이야기다. 지난 7월28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선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축구선수권대회 한-일전이 열렸다. 양국 응원단의 퍼포먼스가 논란이 됐다. 일본 응원단에선 국기인 일장기(히노마루) 주위에 햇살이 퍼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욱일승천기를, 우리 응원단에선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함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글귀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단순한 축구 경기 이상의 의미를 담은 응원전은 결국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극도로 유감”이라며 “국제축구연맹은 응원시 정치적 주장을 금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민도’ 운운한 발언으로 논란에 불을 끼얹었다. <산케이신문>은 아예 “아베 내각이 욱일기의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정부 방침으로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여야 의원 98명으로 이뤄진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은 지난 8월1일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의 민도를 언급하기 전에 일본이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 무엇을 사죄해야 하는지 자신들의 민도에 충실한지부터 냉정히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우리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오히려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8월8일에는 강창희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민당 소속 고노이케 요시타다 참의원의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과거는 잊으려 해서 잊히는 게 아니다”라는 강 의장의 말에 그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고 받아쳤다. 적반하장이다. 아베 신조 총리와 자민당의 독식으로 급속하게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 정부의 행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수정이 추진된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나치식 개헌’을 언급했다가 국제사회의 비난에 발언 자체를 철회한 일도 있었다. 최근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1945년 8월6일을 기려 항공모함급 헬기 호휘함 ‘이즈모’ 진수식을 열기도 했다. 이즈모는 과거 중국을 공격했던 일본 기함의 명칭이다. 주변국들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을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일전에 등장한 우리 응원단의 플래카드가 다른 맥락에서 불편했다. 과연 우리는 어떤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유신의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물러섬이 없다. ‘박정희 시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인사가 대거 입각했다. 법조계와 육사 출신 인사를 중용하는 것도 닮은꼴이다. 하기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국 장교로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다”고 일왕에게 맹세했던 장본인이다.
최근 국방부는 친일 논란의 주인공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을 기리는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제정했다. 그는 일제 시절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시점까지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했던 인사다. 이명박 정부 때 득세하기 시작한 뉴라이트 진영은 일련의 ‘역사 왜곡’ 논쟁을 주도했고, 우리 교과서는 독재정권 시절을 미화한다. 최근엔 “5·18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거짓 주장이 버젓이 방송되기도 했다. 그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 김기춘씨를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대목이 차라리 애교에 가깝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일본 의원을 점잖게 꾸짖은 강창희 국회의장도 전두환의 민정당 창당 과정에서 각 지역에 정치자금을 배달하며 발로 뛰었던 ‘하나회의 막내’가 아닌가.
축구장에 등장한 우리 응원단의 문구는 옳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건 우경화의 외길로 치닫고 있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 송호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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