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촛불시위에 참석한 시민들.


“민주주의 부정·정의와 진실의 문제”
캐나다·미국 등 해외 한인들도 ‘목청’

국가정보원의 불법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을 규탄하는 국내외 ‘촛불시민’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공작을 파헤쳐야 할 국회의 국정조사마저 파행으로 치닫자 촛불집회의 규모가 더욱 커져가는 양상이다.
비운동권으로 꼽히는 서울대 총학생회 등이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을 위한 성명을 발표한 다음날인 6월21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첫 촛불집회에는 700여 시민·학생 등이 참석했다. 대학생들이 시작한 촛불집회에 시민 사회단체들이 힘을 보탰다. 참여연대와 한국진보연대 등 209개(현재 284개) 시민단체는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의혹 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시국회의)를 6월27일 꾸리고 촛불집회 주최에 나섰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 개인 참여자도 2만명을 넘어섰다. 연 서명 인원을 따로 집계하지 않은 단체 시국선언을 포함하면 3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분석한다. 지난 3일까지 전국의 시국선언에 서명한 사람은 2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대학생과 교수, 종교계, 특히 천주교 신부들의 참여가 뜨겁다. 지난달 29일 한신대 총동문회(395명)와 한성대 학생 및 교직원(71명)이 시국선언에 대거 합류했다. 강원대 교수(103명)와 제주 지역 대학 교수(45명)들은 지난주 시국선언에 동참했다.지난달 25일 천주교 부산교구 신부들이 26년 만에 “정의는 죽지 않았다”며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에 나선 데 이어, 광주대교구 사제 및 수도자 508명과 경남 마산의 사제 77명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해외에서도 캐나다의 월요봉사회와 민주포럼, 희망21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6월24일 첫 규탄성명을 낸 데 이어 7월1일 2차 선언, 제헌절인 7월17일 3차 시국선언을 냈고, 토론토 총영사관과 노스욕 등에서 국정원 규탄 피켓시위와 촛불집회를 연 바 있다. 
미국에서는 LA와 뉴욕, 워싱턴은 물론, 달라스, 아틀란타, 샌디에고, 시카고, 필라델피아, 시애틀 등에서 미주 희망연대, 사람사는 세상, 유권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통해 불법적인 국정원 사태와 정치권 및 보도를 외면하는 다수 언론의 후진적인 행태를 규탄했다. 4일은 보스턴시내 하버드대 정문에서 동부지역 시민단체 다수 회원들이 연합집회를 열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며 조국의 민주주의를 향한 목소리를 높였다. 
이밖에 호주, 프랑스, 독일, 일본 등 해외 주요국 한인단체들이 국정원 정치공작 규탄과 정치간여 금지 등 개혁, 국회 국정조사 철저 및 책임자 처벌, 박 대통령의 사과, 국정원과 새누리당 및 청와대 등 여권의 국정원 사태 물타기와 ‘NLL공작’ 등을 비난하고 야당에도 적극적인 투쟁을 촉구하는 등 규탄대열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내건 피켓과 구호도 ‘국정원OUT’‘박근혜 OUT’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박근혜는 선거쿠데타’등으로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한편 주말인 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5차 국민촛불대회’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국정원사태 이후 가장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장외 투쟁 사흘째를 맞은 민주당은 김한길 대표 등 대부분의 의원들이 ‘민주주의 회복 및 국정원 개혁촉구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촛불집회에 합류했다.
이번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3~4만여 명(경찰 추산 4000명)이 참석했다. 6월21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회원’ 등 700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 규모가 한달 반 만에 50배 이상 불어난 셈이다. 
이날 집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주축을 이뤘다. 60대 이상도 적지 않게 참여했다. 
35일째 국정원 관련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김모씨(76)는 “국정원의 댓글조작 문제는 누구의 편이냐는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진실의 문제”라며 “문재인 후보가 댓글 조작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해도 거리로 나왔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당시 후보를 지지했고, 광우병 촛불집회 때도 거리로 나와본 적이 없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참석했을 뿐 누구의 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였던 조성욱씨(54)는 “현재 국정원 사태를 보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지난 세월을 모두 부정 당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조씨는 “민주주의의 근본을 부정한 국정원 사태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아 집회에 나오지 않았을 뿐 많은 국민들은 광우병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민씨(50)는 “진실을 알고 싶고,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시켜달라고 말하고 싶어 나왔는데 일부 보수언론에서 촛불집회를 ‘대선불복’으로 매도하는 것은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촛불집회에는 청계광장 소라탑부터 모전교까지 양쪽 인도가 시민들로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찬 가운데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고 오후 9시30분쯤 별다른 충돌없이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