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먼저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살 맛 나는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버지의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아들의 체취가 뭍은 물품들, 아들의 어린 시절이 새겨진 놀이터, 마을, 동네, 고향.. 아버지의 아픔은 지워질 수 없는 것이어서 차라리 정든 고향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살아온 삶의 자리를 떠나는 일이 힘든 일지만,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지우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누가 알랴!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다른 아들이 눈치 챈다. 묵묵히 짐을 싸며 고향을 떠나겠다는 아버지를 지켜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와 함께 길을 가기로 자청하고 아버지의 길에 동참하며 순종한다. 아니, 아버지의 무언의 부탁을 들어드리는 것이다. 나라도 함께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서 아버지의 슬픔을 달래드리는 것이 효이며, 자식 된 도리이며, 순종의 삶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브람은 그렇게 아버지를 따라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무작정 가나안을 향했다. 하란이란 곳에 도착, 아직은 가나안에 갈 길이 먼데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이 된 것일까,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타향 하란에서 그만 이 세상과 작별한다. 아브람은 당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비록 아픔을 잊기 위해 떠난 고향이지만, 그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그 날 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신다. “그냥, 계속 가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우리는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 순종의 사람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순종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영적 캐릭터가 아님을 알게 된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앞서 육신의 아버지께 순종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믿음생활의 패턴이나 캐릭터가 영적 변화의 한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음을 성경을 통해서 배운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겠는가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이미 더 잘 알고 계신다. 

먼저 인간이 되어, 참 인간이 되어 자신의 도리를 다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패턴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우리를 쓰실 곳을 찾으신다. 직함과 명예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참된 인간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보시면서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자문하는 가장 많은 질문은 “난 참 인간인가?”이다. 목사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하며 아빠가, 아내가 되기 전에 먼저 참 사람이 되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조금 못나고, 조금 늦고, 조금 작아도. 비록 크지 않고, 대단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내 스스로가 먼저 참 인간이 되어야지. 40대 후반을 보내며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드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 최규영 목사 - 토론토 Back to Bible교회 담임목사, 온타리오 한인목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