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의 산상 수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신 모든 말씀의 집약판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한번쯤 생각해 볼 부분이 있어서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38절 이하를 보면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현재 상황이라해도 뺨을 때린 자가 당황하게 될 말씀을 하셨습니다. 뉴욕 오번 신학대학의 성서학 교수인 ‘월터 윙크’(저서: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사탄의 가면을 벗겨라, 예수님과 비폭력 저항)의 연구에 의존 하자면, 그당시 로마인들은 유대인을 동급의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왼손을 사용하지 않았던 관습에 따라 오른손등을 사용하여 뺨을 때렸습니다. 이것은 멸시를 나타내며 동등의 신분자들끼리 사용하는 손바닦이나 주먹을 사용하지는 않았던 점을 생각해 본다면, 오른손등으로 상대의 들이미는 왼쪽 뺨을 때릴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비폭력으로 로마인들에게 저항하라는 하나의 메세지 였던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피래미’라는 글을 통하여 피래미의 끝없는 저항을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피래미가 한자리에 머물러 살기 위해서는 끝없는 지느러미 운동을 통하여 흐르는 물에 저항 하여야만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물결에 떠밀려 내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끝없는 움직임이 필요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퇴보되어 세상에 빠져서 구별된 삶을 살아 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 명하셨던 것입니다. 5장40절에는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누가 보아도 저항의 극치 입니다. 가난했던 그시절, 악덕 지주들이나 악덕 사채업자들은 옷까지 담보로 빼았아 갔었습니다. 그렇다고 발가벗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속옷을 달라 하니까 것옷까지 벗어 버린다면 그 상황은 감당할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이사야 20장을 살펴 보아도 발가벗긴다는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옷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저녁에는 돌려 주어 그가 추워 떨게 하지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또한 로마인에 대한 비폭력적인 저항 이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5장 41절에는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리를 가라고 명한 사람을,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는 말씀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도 됩니다. 그 당시 점령지에서의 로마인들 착취가 극에 달하자 많은 유대인들의 저항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법령으로 하루 노역을 1마일(우리 성경에는 오리)이상 시키면 죄를 묻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1마일의 노역을 시켰는데 1마일 분량의 일을 해 버리면 그 일을 지시한자는 벌을 받게 됩니다. 얼마나 통쾌한 말씀입니까! 
예수님 께서는 우리에게 절대로 손해가 나거나 불행해지기를 원치 않으시며, 불이익을 당할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대로 순종하면 반드시 하늘의 축복과 마음의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5장42절 이하의 말씀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42절:”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말씀 하셨습니다. 지혜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의 비폭력 저항에 대한 귀한 말씀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