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23명 실종
수십만명 피해… 물·음식바닥, 약탈 행위 발포 명령
< 필리핀 타클로반 = 정세라 기자 >
필리핀 중부를 덮친 사상 최악의 태풍 하이옌은 한국 교민 30여명을 포함해 수십만명의 거주민을 죽음의 땅에 가두어버렸다. 선교사 가족으로 중부 레이테주 주도 타클로반에 살던 사공아무개(40)씨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22시간 걸려 지옥탈출, 또 사지로
유엔 관계자들과 목격자들은 타클로반에서 1만여명, 인근 사마르 지역에서 2천300여명이 사망·실종된 것으로 추산한 반면,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최대 2천500명이라고 추정하는 등 피해산정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피해지역은 물과 음식물이 바닥나 생지옥을 방불하고 있다. 통신과 교통은 두절된 상태다. 구조의 손길은 아예 기약이 없다. 사공씨는 아내와 세 자녀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타클로반 교회에 남겨두고 혼자 먼저 탈출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외부와 통신이 되는 곳에 먼저 가서 구조를 요청하거나, 이동 수단이라도 물색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목적지는 태풍 피해가 심하지 않은 레이테섬 서부 오르모크 항구.
오르모크는 세부섬으로 가는 배편을 운행하는 레이테주 서부의 항구도시다. 평소엔 타클로반에서 차로 2~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는 자전거와 두 발만으로 그 길을 가야 했다. 필리핀은 총기 소지가 자유롭다. 하이옌이 할퀴고 간 뒤엔 치안마저 무너졌다. 오르모크로 가는 길은 천길 낭떠러지를 곁에 둔 외길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너진 건물 잔해, 뿌리 뽑힌 나무, 곳곳의 주검을 맞닥뜨리며 22시간을 걷고 자전거를 탔다. 그렇게 가까스로 외부와 통신이 닿는 오르모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지를 벗어난 그는 12일 외교부 관계자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차량을 구하자마자 곧바로 가족을 구하러 타클로반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주검냄새 진동‥ 국가 재난사태
태풍 하이옌이 위세를 떨쳤던 지난 8일로부터 닷새가 지났지만 타클로반은 쓰나미가 휩쓸고 간 듯한 상흔이 여전했다. 구조 치안 활동을 위해 중앙도로 정도만 건물 잔해를 일부 치운 상태였지만 도로 옆에 돼지·소·개 등 가축의 주검이 그대로 뒹굴어 있었고, 완파된 차량도 뒤집어진 채 처박혀 있다. 일부 도로는 여전히 물에 잠긴 상황이다. 현지인들은 네댓살 꼬마부터 어른들까지 지독한 주검 냄새 때문에 마스크나 스카프로 코를 틀어막고 다닌다. 수습되지 않은 주검이 살아남은 동물들에게 훼손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전날 ‘국가 재난사태’로 선포한 필리핀 정부는 12일 최대 재난지역인 타클로반에 밤 10시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또 약탈 행위가 극심해지자 일부 지역 정부에선 구호물자 수송차량이 무장세력의 기습공격을 받으면 의료·구호 요원이 자체 판단에 따라 발포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재앙이 또 다른 재앙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현지에는 한국 교민 안전을 확보하고 재난을 당한 필리핀 주민을 지원하려는 한국 외교부와 구호지원단체 선발대가 속속 도착했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는 현지에서 55명이 연락 두절된 것으로 신고됐으며 이 가운데 32명의 소재가 파악됐다. 대사관은 나머지 23명의 소재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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