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를 이긴 화해 거인‥ 넬슨 만델라 장례
세계 91개국 정상 등 참석 사상 최대 추모
“함바 칼레(Hamba Kahle), 마디바!”(잘 가요, 위대한 사람)
불의한 세상에 맞서 이긴 투사였다. 그러쥔 주먹을 펼쳐 적들에게 거리낌없이 손을 내민 성자였다. 덕분에 인류는 ‘아파르트헤이트’(백인 지배계층의 흑인 차별 정책)라는 거악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불의했던 과거사를 피바람 없이 바로잡는 위대한 지혜도 배웠다. 넬슨 만델라가 5일 밤(현지시각) 95살을 일기로 서거, 10일 영결식이 거행됐다. 지난 6월 지병인 폐감염증이 재발해 입원한 지 석달 만에 가까스로 퇴원했으나 자택에서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던 중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서전 제목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이 마침내 종착점에 이른 것이다.
생전에 그는 ‘살아있는 성인’ ‘위인들의 위인’으로 추앙받았다. 자신이 속한 부족·인종·국가의 이해를 뛰어넘는 정의와 자유의 빛을 인류에게 비추었기 때문이다.
그는 남아공에서 식민지 시대의 기득권을 틀어쥔 소수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1994년 이 나라 역사상 첫 흑인 정권의 탄생과 차별 철폐를 이끌어냈다. 단순히 흑인의 승리를 지향했던 게 아니다. 27년이란 기나긴 수감생활의 시작이 된 1964년 내란 혐의 재판 최후진술에서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을 품고 있다. 필요하다면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또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사슬을 끊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확대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남아공을 정의와 화해의 길로 이끈 뒤에도 그의 꿈은 쉬지 않았다. 2005년 87살 고령의 나이에도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열린 빈곤퇴치운동 집회장에 나타나 인종차별 못지않게 아프리카와 인류를 옥죄는 빈곤의 사슬을 끊을 것을 촉구했다.
거인의 서거 소식에 애도 인파는 그가 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쳐 헌신한 정신과 업적을 기리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흑인 청년과 백인 청년이 서로 부둥켜안은 채 노래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그가 바랐던 ‘무지개 나라’는 그런 것이었다.
고인의 영결식은 10일 9만여명을 수용하는 요하네스버그 FNB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영결식은 세계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행사가 됐다. 남아공 정부는 “91명의 국가·정부 수반, 10명의 전직 수반, 86명의 사절단 대표, 75명의 명사가 참석했다”고 밝혔다. 지구촌 분열과 반목의 상징인 세계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장례축제가 됐다. 11~13일은 프리토리아의 정부청사 유니언빌딩에서 만델라의 주검이 일반에 공개된다. 장례식은 15일 만델라의 고향인 쿠누에서 국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식 다음날은 남아공 휴일인 ‘화해의 날’이다. 아파르트헤이트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고, 모든 인종의 평화를 기원하는 날이어서, 만델라의 유산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될 전망이다.
< 정세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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