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개전 직후 서울시민에게는 결사항전의 메시지를 남겨둔 채 몰래 피난을 떠난 이승만의 일화는 워낙 유명하다.
박명림 교수의 역작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 피난 과정의 전말이 사뭇 희극적으로 자세하다. 6월27일 서울을 떠나 대구에 합류한 7월9일까지 13일간의 피난 기간에 ‘국가원수’ 이승만은 극소수의 참모, 수행원들만 데리고 사실상 혼자 튀었다.
이승만은 정부에조차 행선지를 숨긴 채 아직 포탄 한 발 떨어지지 않은 평화로운 삼남 지방을 혼자서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그는 서울이 점령되기도 전에 미국대사관을 통해 일본에 망명정부 수립까지 요청해놓았다. 즉, 일각에서 ‘국부’로 추앙되고 있는 이승만이 이 시기에 한 유일한 일은 인민군 한 명 없는 삼남 지방에서의 가열차고 경이로운 홀로 줄행랑, 이것밖에 없다.
후일 서울로 돌아온 이승만이 자신이 지시한 한강다리 폭파로 인민군 치하에 남아야 했던 서울시민들에게 어떻게 피의 보복을 벌였는지는 잘들 아시리라.
수치심에 떨며 사죄를 해도 모자랄 상황에 오히려 복수의 굿판을 벌였다. 상처받은 공동체의 치유를 위해서는 피를 토하는 사죄가 필요한데, 오히려 적반하장의 선전포고를 통해 상대의 피를 요구했다.
이승만이 보여준 이 궁극의 치졸함과 후안무치를 생각하다 보면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란, 정의란,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괴로운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승만처럼 위기의 순간에 공동체를 버리고 정의를 우롱한 자들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국가권력과 부귀영화를 독점해왔던 탓이다.
세월호 침몰 후의 상황이 더욱 참담하다. 정말로 이게 나라인가 싶다. 평소에는 서로 더 많은 권한을 주장하던 장관, 수석들이 저마다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도망치기 바쁘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시스템은 힘없고 ‘빽’없는 이들에게 닥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무능하다. 희생자 구조에 실패한 정부에 국민들이 분노하자, 대통령은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자신이 수장인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래도 늦었지만 분향소를 찾았고 국무회의 석상이긴 해도 사과도 했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막상 그가 이끌고 있는 정부는 국민들의 추모 열기를 축소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족 사이에 사복경찰을 풀고 분향소 예산과 설치 장소는 최소화하더니 추모의 촛불집회마저 금지했다가 법원에 제동이 걸렸다. 누가 대통령의 진심을 믿겠나? 이 와중에 집권당과 보수세력 일각에서는 좌파의 정부전복작전, 선동꾼 침투, 유족이 미개한 국민, 빨갱이들의 기획 음모, 제2의 5.18 대비 등등 온갖 적반하장, 증오의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사고 공화국’이었고, 그 책임을 특정 정치세력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 비극의 와중에 힘없는 국민들은 비극을 공유하는 정서의 공동체가 되었다. 적어도 과거의 정부와 집권세력은 이 비극의 가상공동체를 위무하는 시늉을 내는 데 최선을 다해왔다. 극복의 대책은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이게 한국 사회가 그동안 지켜온 부끄럽고 민망한 최소한의 금도였다. 하지만 현 정부와 보수세력은 아예 적반하장 쪽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내동댕이쳐진 공동체 앞에서 그들이 최소한의 수치심도 버리고 끊임없이 종북좌파 등 증오의 언어를 호출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들의 영토와 기득권이라도 보호해야겠다는 탐욕의 발로가 아닐까?
제발 그러지들 마시라. 애시당초 공동체의 정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해도, 금도는 지켜야 한다. 처연한 봄날이다.
<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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