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13번 터질 뻔했다

● WORLD 2014. 5. 10. 15:23 Posted by SisaHan

실수·고장·오판·암호 분실도… 보유 늘어 더 위험

1961년 1월2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상공을 비행하던 B-52 폭격기가 고장을 일으켜 탑재하고 있던 마크39라는 핵폭탄 2발을 골드스보로 마을에 떨어뜨렸다. 이 폭탄 중 한발에서 기폭장치가 작동됐다. 미국 동부 전체를 초토화시킬 대재앙 직전, 다행히 6개의 안전장치 중 마지막 저압스위치가 폭발을 막았다.
1980년 9월18일 미국 아칸소주 다마스커스에 있는 트라이던트2 핵미사일 사일로(지하 저장고)에서 기술자의 실수로 소켓렌치(볼트를 죄는 공구)가 떨어졌다. 핵미사일 연료에 불이 붙어 폭발이 일어났고 핵탄두가 밖으로 날아갔다. 핵탄두는 인근 도로에 떨어졌는데 천만다행으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1962년 이후 이처럼 실수로 핵무기가 발사 또는 폭발 일보직전까지 간 적이 13차례나 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채텀하우스가 최근 발간한 <안심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핵무기 사용 임박 사건들과 정책 대안들>이라는 보고서는 기술적 오작동과 통신두절 등으로 이런 위기들이 계속되어 왔다고 지적했다고 <가디언>이 최근 보도했다.
이 보고서가 밝힌 대표적 사례들을 보면 우연한 실수나 오판으로 언제든 핵무기가 발사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인류가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절정이던 1962년 10월 핵무장을 한 소련 잠수함 4대가 배치된 북대서양 바하마 제도의 앞바다에서 미군 전함들이 폭뢰 훈련을 했다. 미군은 소련 쪽에 이 훈련을 통보했으나 통신 두절로 전달되지 않았다. 소련 잠수함의 한 함장은 공격받았다고 판단해 핵탄두 발사를 명령했다. 이 명령은 부함장의 설득으로 겨우 취소됐다.
 
1983년 9월25일 소련의 조기경보위성 기지에서 5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소련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음이 울렸다. 소련이 핵 미사일 반격에 나설 수 있는 순간이었으나, 소련의 담당 장교인 스타니슬라프 예브그라포비치 중령이 이 경보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해 보고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는 미국 영토에서 반사되는 햇빛이 위성을 오작동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핵무기 버튼을 누를 권한을 가진 국가 지도자들의 정신 상태도 중요한 요인이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심한 음주벽으로 우려를 자아냈다. 1981년 5월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자신의 상의 주머니에 핵무기 발사암호를 넣고 집에 놔두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1970년대에 핵무기 발사 암호가 든 상의를 그대로 세탁소에 맡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저격당했던 1981년 3월30일에도 핵무기 암호가 든 그의 피묻은 하의를 연방수사국(FBI) 수사관들이 가져갔다.
 
채텀하우스는 최근 들어 핵무기 발사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무기 보유국이 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가 여전히 1800기의 핵탄두를 명령 뒤 5~15분 안에 발사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경계 상태로 놓고 있다는 게 이런 판단의 이유다.
< 정의길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