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브라질의 월드컵 경기가 막을 내린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세계만 그랬는가?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6강을 바라본다고 하면서 응원 열기가 대단했었는데 초반에 탈락되면서 그만 풀이 죽었다.
월드컵 경기는 감독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4년마다 열리는 이 경기에서 한 번 두 번 실패하면 감독은 사표를 내고 사라지거나 다른 나라의 감독을 맡기도 한다. 금년만 해도 초반에 떨어진 이태리의 프란델리 일본의 자케로니 코트비부아르의 라무시가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들이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는 대단한 감독이라고 초청을 했는데 승부의 세계가 그래서 무섭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경기의 실패를 책임지고 감독이 물러나라 하고 인터넷이나 신문 매체가 떠들썩했다. 경기를 승리로 못 이끌었으니 또는 경기 때의 감독의 용인술이나 전술이 부족하거나 잘못되었으니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하면서 퇴진을 요구하면서 결국에는 사표를 받았다.
나는 거기에서 세태를 본다. 한 때는 그 감독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그래서 이제는 월드컵 경기를 맡겨야 한다면서 모두 기대를 걸고 그 자리를 맡겼다. 그러나 경기에 지니 선수를 기용함에 있어 자기가 믿는 그 선수만을 고집했기에 그리고 전술면에서 부족하여 결국에는 졌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그러나 만약 한 경기라도 이겼다면 자신이 믿는 선수를 끝까지 믿어주는 그의 용인술이 오히려 칭찬을 받고 빛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칭찬과 오욕이 종이 한 장의 차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슴 졸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월드컵 경기 이전에 어떤 분의 칼럼을 읽으면서 나도 지긋한 마음으로 관전하기로 했다. 그래도 심중으로는 이기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 분의 글은 한국의 모든 선수들이 받는 연봉의 액수를 다 합해보아도 어떤 국가의 유명한 한 선수의 연봉보다 작은데 그리 좋지 못한 조건에서 뛴 선수들을 가상하게 보자는 것이고 현재 한국 축구의 등급이 세계 축구연맹에서 하위급에 속하는데 하위가 상위급의 국가에 지는 것을 마땅하게 보고 관전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운 좋게 이길 수 있으니깐. 그럴 듯한 말씀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듦에는 어쩌랴?
그러나 나는 감독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에 수긍은 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했으면 어떨까? 언제였는지 기억하지를 못하지만 한 때 우리는 한 경기에 졌다고 감독을 바로 교체한 적도 있지 않는가?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한 지도자 감독 코치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갈아치우기는 쉽지만 새로운 지도자가 그렇게 쉽게 나오지를 않지 않는가? 그래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그 전란 중에도 갈아치우던 왕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것만이 능사가 아닌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그런 글이 있다. “그릇이 큰 사람은 되는 일은 되게 하고 안 되는 일은 억지로 하지 않으니 그 인생이 쉬울 수밖에 없고 소인은 안 되는 일은 되게 하려니 그 인생이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큰 사람은 자기 할 일을 자기 능력만큼 하면서 하늘의 명을 기다릴 따름인데 소인은 어려운 일을 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이제 4 년 뒤에 또 경기가 있다. 그때에는 이겨보자는 심경으로 휘파(FIFA)람을 불면서 또 하루를 살아가보자.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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