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오감(五感)으로만 상황을 판단하는 게 아니다. 육감도 있다. 감각이 아닌 ‘초감각적 지각’인 육감에는 느낌, 심증, 예감 등 여러 형태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진정성, 진실성을 오감을 넘어 육감으로 그 허실과 진위를 꿰뚫는다. 사랑을 ‘가슴으로’ 읽는 것이 그렇다. 눈물을 보면서도 흘러나오는지, 짜내는 것인지를 분별해 ‘슬픔과 사랑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을 알아챈다.
과거의 전쟁범죄 해결을 놓고 독일과 일본은 극명하게 대비되곤 한다. 독일은 이웃 프랑스, 이스라엘은 물론 나치 피해국들과 격의없는 우호친선을 누리고 있다. 반면 일본은 태평양전쟁으로 피해를 당한 한국과 중국 등으로부터 종전 70년이 되어가도록 제대로 대접을 못받으며 모욕적인 언사를 받고 있다.
왜 그렇게 다른가. 바로 ‘진정성’유무가 가름한 것이다.
독일은 1953년 나치피해 배상법을 만들어 희생자들에게 철저한 배상에 나섰다. 1969년에는 나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기로 의회에서 결정, 끝없는 추척과 처벌을 천명했다. 이후 빌리 브란트 총리는 1970년 12월7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현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르기까지 역대 지도자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나치의 잘못을 낱낱이 반성했다. 이들의 사죄는 법적으로, 행동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양심이 반영된 진정성으로 신뢰를 쌓은 것이다.
일본도 여러 번 사죄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즉 속마음과 겉의 행동이 다른 속성 그대로, 입에 발린 시늉의 반복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일본 왕과 역대 총리들의 단골 사죄 단어는 ‘유감’이었다. 수위가 높아진 것이 ‘통절한 반성’과 ‘통석(痛惜)의 념’ 등 말의 유희였다. 요즘 아베 총리는 아예“뭘 반성할 게 있느냐“는 태도다. 지금까지 징용 한인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있고, 당시 저축했던 임금도 되돌려 받지 못한 상태다. 군대위안부를 부인하기에 기를 쓰는 모습은, 이번에 방한한 교황이 할머니들을 위로의 품에 안아주면서 그들의 양심이 수준 이하요, 진정성도 없는 민족임을 전세계에 알렸다.
한국을 단 4박5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정성의 위력을 입증해 보였다. 그가 취임 이후 검소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인기를 얻고 있음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그래도 반신반의한 것은, 그간 늘 보아온 인기 유명인사들이 대개 그렇듯이, 보이기에 능한 그리고 눈을 적당히 속이는 ‘쇼맨쉽’과 미디어로 만들어지는 허상의 연출이 없지 않을 거란 통념에서다. 그러나 방한기간 전해진 그의 실상과 뒷모습들은, 그의 진정성을 각인시켰고, 그래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사람들은 열광하며 신뢰와 친근감을 보이기에 이른 것이다.
때 마침 세월호 참사를 덮고 뭉개려는 위정자들이 무능과 불신의 지탄을 받고있을 때이다. 소외되고 핍박받고 외면당하는 사람들과 유족들을 향해 내려가 품에 안은 그의 진정어린 언행에서 피해자는 물론 많은 한국민들이 애타게 찾고있던 따뜻한 가슴의 지도자상과 진정성의 리더쉽을 보게 된 것이다.
예로부터 위급할 때 가까운 친지, 이웃사촌, 그래도 안되면 고을 원님을 찾고, 극한상황에 몰리면 임금에게 직접 고하는 신문고를 두드렸다. 아무리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라 해도 나라 안에서 해결지을 수 있도록 최고의 위정자가 백성이 마지막 읍소할 귀는 열어두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나라 밖 종교지도자에게 하소연 하겠느냐며 사람들은 이렇게 자조했다.
“아무리 힘들고, 억울하고, 답답해도 어느 누구 하나 믿고 기댈 만한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교황에게 열광하는 겁니다.”
“교황은 노란리본을 달고 세월호 유가족을 여기저기서 끌어안는 데, 우리 대통령은 유가족은 피해 다니면서 교황과는 한번이라도 더 만날 생각만 한다. 국민들이 참으로 복도 없다.”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귀를 막은 대통령, 정략에만 정신이 팔려 특별법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여나 야당, 세월이 흐르며 잊어가는 국민들… 그렇게 어디 애원할 데 없고 캄캄한 벽에 가로막힌 애끓는 사람들이 한줄기 소망, 감싸주는 진정성에 매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방한 내내 노란리본을 달았던 교황은 귀국 비행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세월호 유족의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는 귀국 비행기에서도 세월호 리본을 왼쪽 가슴에 그대로 달고 있었다.
< 김종천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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