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일차적인 충격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박힌 안전불감증이었다.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국민 안전과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였던 셈이다. 성숙한 사회였다면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확실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유족들의 단식과 농성이 이어지면서 세월호 참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여러 논란을 촉발시켰다.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전개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가장 먼저 제기된 건 국가와 국가권력에 관한 문제의식이었다. 300여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눈앞에서 수장되는데도 구조작업을 제대로 못한 정부에 ‘이건 국가도 아니다’는 매서운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는 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는 당연한 질책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제기됐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정부는 매정하게 외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부근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의 면담 요청을 며칠째 모른 척하고 있다. 그사이 경찰들은 유족들을 차벽으로 겹겹이 에워싸서 일반 국민으로부터 고립시켰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권력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때 그 정당성을 갖는다. 그래야 할 국가권력이 세월호 참사 이후 보인 행태는 국민이 아닌 국가 자체를 보호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그 국가 안에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은 제외된 것인가. 국가권력이 국민 개개인을 보호하지 않고 국가 자체를 보호하려 할 경우 그런 국가는 소수 지배층의 권력 유지만을 위한 독재체제로 전락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에서 봐왔던 익숙한 모습이다.
정부나 의회가 국민을 대변해 정책을 결정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협상에 나섰지만 두 차례 합의가 유족들에 의해 거부되면서 대의민주주의가 표류하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유족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지속되면 힘없는 사회적 약자는 계속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똘똘 뭉쳐 이를 밀어붙일 경우 허울뿐인 대의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이해와 동떨어진 채 대리인(정부와 의회)들끼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동하게 될 것이다.
여야 합의가 무산되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유족 대표가 참여하는 ‘3자 협의체’를 제안했지만 새누리당은 대의민주주의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대의민주주의가 세월호 유족의 요구를 묵살하는 논리로 동원되는 이 역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민주주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법치주의는 또 어떤가. 민주사회에서 법이란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국민을 통제하고 억압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그 법치를 앞세워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 요구가 사법체계를 흔든다며 반대하고 있다.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 억지 주장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치가 거꾸로 자식들의 죽음의 진상을 알고 싶다는 유족의 요구를 가로막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새누리당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기존의 사법체계 안에서 이득을 보는 계층은 누구일까. 유족을 제외한 다수 일반 국민인가. 아니면 세월호 진상 규명을 두려워하는 소수 권력층인가. 법치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부터 되돌아봐야 할 상황이다.
초유의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기존 방식과는 전혀 다른 대응을 요구한다. 그것은 형해화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 한겨레신문 정석구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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