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선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고 한다. 불가에서도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진리 말고는 모든 게 변한다고 한다. 동양의 주역도 ‘변화’의 학문이다. 종교적 수도나 교육도 본성의 회복이든, 더 높은 인격의 함양이든 변화를 위함이다.
그러나 긍정적 변화가 쉽지 않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수십년 전 모습 그대로다. 벗들이 볼 때는 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달 다녀 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변화가 더 눈에 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침묵으로 비판을 받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더구나 나이들 수록 세속과 쉽게 타협하고 보수적이 된다는 통념을 그가 거슬러왔다는 게 중요하다. 그는 199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관구장이 되자마자 ‘독재자들에게 너무 너그러웠던 점’을 참회한 데 이어 추기경이 되어선 군부 독재정권에 의해 암살된 사제들의 성인 추대에 나섰다. 또한 한국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길엔 엘살바도르에서 군부에 의해 암살당한 로메로 대주교를 성인으로 추대하겠다고 밝혔다.
변한 것은 사회참여 사제들과 저항에 대한 관점만이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꽉 막힌 보수주의자로 통했다. 사제가 된 지 4년이 채 안 된 36살에 아르헨티나 예수회의 관구장이 된 그는 ‘남 말 안 듣고 거친 권위주의자’였다. 그는 교황이 된 뒤 한 인터뷰에서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극단적 보수’란 비난을 받고 커다란 내적 위기를 맞았다”며 “미친 짓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걸 배웠다”며 “이제 너무 많이 경청해 그만 좀 들으라고 할 정도”라고 했다.
인간은 변한다. 교황만이 아니다. 해방신학을 ‘증오에 찬 그리스도론’이라고 비판했던 보수주의자 로메로는 무참히 짓밟히는 농민들을 보고 변했다. 함남 덕원신학교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견디기 어려운 탄압을 겪고 내려와 원수를 갚겠다며 신학생의 신분으로 6.25 때 총을 든 지학순 주교는 유신정권에 의해 유린되는 사람들을 보고 저항에 나섰다.
그와 달리 나이 들어 더 약자들에게 폭력적이 되어버린 어버이연합 회원과 같은 노인들에 대해 채현국(효암학원 이사장) 선생은 “저 꼴 되고 싶지 않으면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고 우리에게 경고했다. 정치권력에 그토록 무력하게 끌려다니며 조종당하는 데 대한 경고는 ‘깨어 있으라’는 교황의 당부와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거부였음에도 돈과 권력에 흔들리지 않고 팔십 평생 살아온 채 선생 같은 모습을 모든 노인들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동강변에서 공산당의 따발총에 맞아 숨진 부친의 주검을 부여안고 비명을 지르던 서광선 목사나 6.25 때 부친과 백부를 동시에 잃은 백낙청 선생처럼 역사적 아픔을 직시하고 개인적 상처의 감옥에서 나와 화해에 앞서라고 어떻게 모든 노인들에게 요구한다는 말인가.
어떤 할아버지가 공산당원들에게 가족 모두를 처참하게 잃고 평생 원한에 사무쳐 살아왔을지 모르는데도 교황처럼 안아주거나 공감해주지 못한 채 ‘말 없는 멸시와 증오’만으로 대응한 내가 말이다.
변화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 때 가능해진다. 그래서 교황은 (교리 선포 등에서) 실수하지 않는다는 교황 무오류설이란 갑옷을 벗어버리고 ‘이 세상에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있느냐’며 고해사제 앞으로 걸어가 죄를 고백했다. 죄 없다는 교황보다 그의 행동이 내게 더한 복음과 기쁨이 된 것은 실수투성이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을 쉽게 취하고 마는 내게도 변화의 희망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변해야 한다. 우리도 변해야 한다. 광화문에서 40일 넘게 단식한 세월호 희생자 유민이 아빠에게 위로는커녕 “죽어버려라”고 악을 쓰는 노인에게 느끼는 참을 수 없는 분노조차 연민으로 바꿔야 하는 변화를 지금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에게 먼저 진심으로 절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들은 한 형제가 아니냐”는 교황의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 조현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 조현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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