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영방송 훼손하는 KBS 이사장 인사

방송통신위원회가 1일 긴급회의를 열어 뉴라이트 계열의 원로 사학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한국방송(KBS) 이사로 추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방송 이사는 여권 추천 7명, 야권 추천 4명 총 11명으로 구성되며, 이사장은 이사들의 호선으로 뽑는다. 하지만 이씨가 이사로 추천되기 며칠 전 이길영 이사장이 돌연 사퇴를 했고, 이씨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라는 점에서 새 이사장이 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 한국방송에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이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과 독립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편향의 노골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이씨의 이사장 내정은 최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과 유착한 보도와 인사 등이 문제가 되어 물러난 길환영 사장 이후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방송의 구성원과 이를 지지하는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김영삼 정권 때 최초의 여성 대사(핀란드), 김대중 정권 때 러시아 대사를 지낸 이씨는 보수 성향의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부쩍 우편향의 행보를 보여왔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대통령의 자문활동 등을 하면서 이념적인 쟁점에 적극 발언과 행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친일 미화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 때는 우파 사학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교학사 교과서를 적극 옹호했다. 또 같은 해 3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과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의 선봉에 섰다.
 

특히, 최근엔 한국방송이 단독보도해 논란을 일으킨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민족 비하 및 외세 추종의 주장이 담긴 교회 강연에 대해 “실제로 보고 감동을 받았다. 이런 나라에 살기 싫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이사장이 될 사람이 한국방송 보도에 가장 진저리를 친 셈이다. 같은 뉴라이트 계열의 박효종씨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가 이 보도를 중징계하려고 하는 것과 흐름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 보도는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각종 언론단체가 주는 보도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그의 인식이 저널리즘의 상식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편파를 업으로 하는 종편이라면 모를까 공영방송에 이런 사람을 이사장으로 내정한 것은 한국방송뿐 아니라 한국 언론의 불행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우편향 인사를 회장과 경영위원에 임명한 뒤 망가지고 있는 일본 NHK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