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그리면 자연스럽게 달이 드러난다 ‘라는 말이다. 
홍(烘)이란 단어는 ‘부풀린다’ 라는 뜻이며 그래서 ‘홍운(烘雲)’ 이란 ‘구름을 퍼트린다’는 의미가 된다. ‘탁월(拓月)’ 은 ‘달을 드러나게 한다’는 표현이어서 결국은 그 뜻이 완성된다. 이는 중국 전통의 회화법으로 ‘달 주변에 퍼지는 달무리를 구름에 표현해서 달을 그리지 않고도 달을 그리는’ 기법이다.

드러냄이 없는 ‘숨김의 미학’은 서양의 미술 기법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아포파시스(apophasis)’ 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어떤 일을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그것을 말하는 일’ 이다. 중세 비잔틴 시대의 아이콘(icon) 회화에서는 필수적인 기법이었으며 이는 보는 이나 그린 이를 중심하지 않고 그림속의 인물의 관점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동양의 ‘홍탁(烘拓)’ 과 같다.

신앙 생활에 어쩌면 홍탁(烘拓)같은 부분이 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예수를 믿소’ 라고 그렇게 외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삶을 보면서 예수가 보이는.. 마치 달을 그리지 않아도 달이 보이고, 도를 말하지 않아도 도가 들리는(道可道 非可道·도가도 비가도; 도를 말하는 순간 그것은 도가 아니다) 삶. 물론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에 말하는 이가 있어야 하겠지만 꼭 입으로 말하는 것만이 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신이란 존재 자체가 표현 불가능하기에 말이 많아지는 목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에게 ‘홍운탁월(烘雲拓月)’ 은 ‘믿음의 삶이란, 사는 모습으로 보여주며 말로는 침묵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언어처럼 다가온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말이 참 많다.

< 최규영 목사 - 토론토 B2B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