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를 외치는 건 한국 사람의 특징이 된지는 오래되었다. 그런 이유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의 식당에서도 빨리빨리를 외치며 한국인들을 놀라게 한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의 무의식 세계 속에는 빠른 인자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 조차도 내 몸과 입,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가 무의식 중에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빨리빨리를 보며 나 스스로에게 놀라게 된다. 이런 우리의 특성을 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쩌면 그런 빠름의 습성 때문에 오히려 많은 발전을 이룬 공도 있음을 솔직히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제일 많이 느꼈던 것이 에구 어느 세월에... 였다. 천천히 하는 것은 부족하거나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부정적인 모습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세상 삶은 느린 것이 좋은 때도 빠른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오히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는 것이 어리석음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 좋다면 그쪽으로만 치우치려는 경향이 있는 세상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정말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언제 이런 말씀이 있었나 이다. 대체적으로 잘 아는 내용이라 생각했지만 처음 보는 듯한 생소한 구절과 단어들 때문에 감동과 흥분을 경험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한 구절을 찾기 위해, 한 권의 성경을 빠르게 읽어가며 정리할 때면 전체적인 그림이 머리에 그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소소한 재미와 즐거움은 느려질 때만 누리게 하는 특권이 아닐까 생각한다. 
옥빌에만 17년을 살면서 Sixteen mile creek 위를 수도 없이 지나다녔지만 그 속은 그저 대충, 막연히 머리 속에 그려만 보았지 그 계곡 안이 어떤지는 사실 잘 몰랐다. 그런데 언젠가 그 안에 들어가 보고서야 비로소 깊은, 아주 깊은 계곡이란 것과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의 꼬리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하늘과 어우러진 흙과 나무의 모습을 보며 사랑스런 한 가족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오랫동안 머물러야 했었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 느리게, 한 음 한 음을 꾹꾹 깊게 눌러서라는 말이다. 얼마나 많이 성경을 읽었느냐 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얼마나 음미하면서 읽느냐 도 중요하다. 그래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다 성경의 표현이지만, 음악적 용어를 빌자면 느리게, 한절 한절을 깊게 눌러서 꾹꾹….
 
평소에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 다니던 집 주변을 잠시 동안만이라도 걸어 볼 땐 어김없이 느껴지는 것이 이런 것이 있었나 하는 것이다. 내 새끼 손톱보다 작은 노란 들꽃이 잔디 속에 숨어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막 태어난 갓난 아이 모습 그대로이다. 명아주풀은 어떤가 어릴 때 여름 날이면 우리 집 주변이 마치 자기 집인 양 한없이 퍼져있던 명아주풀의 여린 잎을 따서 된장에 무쳐 물 만 밥에 먹던 생각에 가던 길을 잊고 잠시 과거에 살기도 한다. 또 머루는 어떤가 그 놈을 먹느라 시퍼렇게 된 친구들의 입을 보며 놀리던 그 머루가 여기저기에서 자기를 사랑해 달라는 듯 까무잡잡한 모습은 바로 우리 집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늘 내 옆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삶의 모습들이 어느 날 걷다가 발견된 생의 기쁨들이다. 
느려진 삶의 한 순간, 말씀 속에 들어가서 거닐어 보자, 거기엔 분명히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깊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외치는 힐링과 인간성 회복, 어쩌면 그 길로 가는 길목의 이정표들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느리게 한 음 한 음을 꾹꾹 깊게 눌러서 가는 길도 나름 재미있다. 

< 석대호 목사 - 옥빌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