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에 하기로 한 고위급 접촉이 무산되고 남북 관계가 그 전보다 더 나빠졌다. 양쪽의 경직된 태도가 모두 문제지만 관계 개선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무엇보다 상황 악화를 방치하는 듯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고위급 접촉 무산의 직접적 원인이 된 대북 전단 살포 문제와 관련해 더욱 강경해졌다.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입장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이제는 전단 살포 자제를 당부하는 말이 사라졌다. 이것이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하겠다는 뜻이라면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할 당사자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실제로 10월31일 탈북자단체가 경기 포천시에서 대북 전단 100만여장을 살포하는 동안 경찰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북한 체제의 붕괴를 주장하는 극소수 단체가 남북 관계를 쥐고 흔드는 것을 그대로 용인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경기 김포시 최전방의 애기봉 등탑 철거 문제에서도 확인된다. 관할 해병대의 지휘관이 지난달 중순 이 등탑을 철거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다. 이 지휘관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등탑을 철거하기로 하고 국방부 쪽과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철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며칠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이를 질책했고, 이후 정부는 철거 경위를 조사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북한이 이 등탑의 십자가 조명 등에 반발해왔으므로 등탑 철거는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 안 분위기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이 전단 살포 중단을 고위급 접촉의 조건으로못박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잘못이다. 이 사안을 논의하고 싶으면 고위급 접촉에서 의제로 제기하면 된다. 북한이 이 사안을 최근 유엔에서 논의 중인 대북 인권 결의안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북한은 ‘우리의 존엄(김정은)과 체제를 악랄하게 헐뜯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국제사회의 흐름에 눈감는 독단일 뿐이다. 이제 올해 안으로 남북 관계가 풀리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곧 육·해·공군이 함께 벌이는 대규모 호국훈련이 예정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 악화를 막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정부는 앞장서서 전기를 마련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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