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이다. 이해찬 당시 총리가 ‘진보정상회의’에 참석했는데, 한국의 발전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러자 아프리카의 몇몇 대통령들이 “무슨 소리냐.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인데…”라는 싸늘한 반응들을 보였다. 이 총리는 “1950~60년대까지는 미국의 원조를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이 총리의 말을 거들었다고 한다.
어느 사석에서 그의 말을 들었을 땐 어이가 없었다. “식민지라니, 어디에다 대고….”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 들어도 싸네”라는 자괴감이 든다. 우리나라 국방장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사실상 영구히 미국에 갖다바쳤기 때문이다.
가장 쓰라린 건 용산기지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용산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붓고 피를 흘렸던가. 평택에 새 기지를 만들어주느라 한 20조원은 들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추산이다. 땅을 확보하느라 대추리의 농민들 가슴에는 대못을 박았다. 그런데 노른자위는 여전히 미군 땅이란다. 20조원을 쓰고도 허리 잘려 못 쓰게 된 땅을 받았으니 ‘박근혜 판 4대강 사업’이 되고 말았다.
10년 전에도 한미연합사 잔류 문제는 시끄러웠다. 연합사 터를 얼마나 남기느냐를 놓고 한-미 간에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그러다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헬기로 용산기지 상공을 둘러본 뒤 완전히 옮기는 쪽으로 방침을 굳혔다. 그때 그가 했다는 말이 이거다. “뉴욕 센트럴파크 공원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다면 미국민이 수용하겠느냐?”
우리 정부는 연합사 잔류의 이유로 “전작권 환수가 연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연합사가 평택으로 내려가기로 결정난 건 2004년으로 그때는 전작권 환수의 전 자도 나오지 않았다. 핑계일 뿐이고 실제는 생활상의 편리 때문일 게다. 먼지바람 이는 벌판에 선 평택 기지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독신인 사병들은 그럭저럭 견딘다 쳐도 가족이 딸린 장교들은 심란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뉴욕 못지않은 문화생활과 교육환경을 누릴 수 있는 용산은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다. 게다가 미국의 국방비는 대폭 감축해 평택 기지 안에 아늑한 주거공간을 마련할 처지도 못 된다.
용산에 남는 미군기지는 보안이 취약하니 담장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철조망은 한층 날카로워질 것이다. 경계병의 총끝은 더 날이 설 테고 순찰차의 엔진은 더 바빠질 것이다. 공원 한복판이 그 모양이니 ‘민족공원’은 고사하고 마음 편히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을 게 뻔하다.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을 내 집 정원처럼 누릴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비싼 돈 주고 기지 주변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손해배상 소송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우리 군은 작전권을 행사할 능력이 안 된다고 한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우리가 북한보다 국방비를 더 쓰기 시작한 지 30년은 됐고, 지금은 북한보다 30배도 더 되는 예산을 쓰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정치 민주화를 이뤄냈고, 스마트폰·자동차·선박 등의 제조능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류는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무시 못할 존재가 됐다.
그런데 왜 유독 국방만 이 모양인가. 그것도 가장 가난한 북한 하나 제대로 상대를 못해 미국 뒤꽁무니에 숨고 있으니 말이다. 군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성들은 ‘똥별’ 말고는 달리 부를 말이 없다. 숫자는 500명 가까이 되니 많기도 하다. 세월호 구조를 못해서 해경은 해체된다. 나라를 구하지 못했으니 그들의 계급장을 떼야 한다. 대신 바티칸을 지키고 있는 스위스 용병을 불러들이자. 아마 몇년 안에 자주국방이 달성됐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김의겸 - 한겨레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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