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서들의 오만과 뻔뻔함이 도를 넘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 오직 대통령 보위에만 매달린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로서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기엔 정도가 너무 심하다.
대통령 비서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 대상이 되는 건 그들의 발언과 행위가 대통령 의중을 담고 있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인식은 국정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엊그제 열린 대통령비서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의 비서들 발언은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나갔다. 그들의 발언 수위는 박근혜 대통령을 거의 신격화하고 있는 정도다.
비서들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국정감사에 임하면서 했던 몇몇 발언을 보자. 사실상 ‘부통령’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번 국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박 대통령은 눈만 뜨면 어디든 집무실에 있는 것과 같으니 세월호 참사 당일 구체적인 행적을 밝힐 필요 없다는 투다. 오만하기 그지없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진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답변은 더 가관이다. 이 비서관은 ‘대통령 개인트레이너’로 의심받는 제2부속실 3급 행정관(국장급)의 나이를 묻는 질문에 “국정 최고책임자를 보좌하기 때문에, 국가기밀사항을 다룰 수 있기 때문에”라며 나이 밝히기를 거부했다. 만천하에 공개돼 있는 윤전추 행정관의 나이는 34살이다.
이들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위상이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닌 전제군주 시대의 여왕쯤으로 격상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국민과 대통령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이다. 민주공화제 아래에서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국정 운영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상머슴’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늘 국민 여론과 함께 가는 게 순리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런 제약은 대통령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문화된 헌법 조항으로 전락한다. 대통령은 일방적 지시를 내리고, 비서나 장관은 제왕의 명령을 받들어 밀어붙이기 바쁘다. 이미 그런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나 공무원연금법 연내 개정 강행 등이 그것이다.
주요 국정 과제들이 폭넓은 국민 여론 수렴 없이 대통령과 소수 측근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면 그 결과는 국가 장래에 치명적이다. 특히 대통령의 무지나 잘못된 소신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책이 결정될 경우 국정 운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 아래서는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그 위험성을 더 키운다. 지금 박 대통령은 이미 그런 길로 들어선 듯하다.
과도한 비밀주의도 문제다. 경호상 문제 등으로 대통령의 모든 일정을 투명하게 밝히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청와대 행정관의 나이까지 감출 정도가 된다면 지나치다. 이런 비밀주의가 청와대에 국한되리란 보장도 없다. 보안을 강조하는 군대는 물론 정부 부처나 각 공공기관에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정보 공개를 기피할 게 뻔하다. 이런 불투명성은 필연적으로 부패로 이어진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다. 우리 사회의 부패지수가 여전히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실 비서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비서들이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앞에서조차 이처럼 뻔뻔하게 큰소리를 치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뒤를 봐준다는데 국민이고 국회의원이고 눈에 들어오겠는가.
그러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손에는 구정물 한 방울 묻히려 하지 않는다. 비서들의 ‘결사옹위’를 받으며 생색나는 일에만 얼굴을 내민다.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전작권 환수 연기나 세월호 특별법 등 골치 아픈 현안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 없이 경제 살리기만 역설했다. 악역은 비서들에 맡기고 자신은 뒤로 숨는 행보를 계속하는 셈이다.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대통령이라고 하기엔 너무 비겁하다.
< 정석구 - 한겨레신문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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