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방문하고 홍콩의 둘째 집에 들렸다가, 아들이 마련해준 크루즈여행으로 싱가폴, 태국, 말레이지아를 들려 다시 홍콩에서 토론토까지 15시간의 비행 끝에 약 5주간의 여행을 마무리 했다. 여행 중에 만난 여러가지 사건과 사람들을 통하여 배우고 느낀 점들이 참으로 많다. 동남아의 열기에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오니 토론토의 추위가 낯설다. 그러나 막상 토론토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토론토의 추위에 익숙해져 있다. 거기에는 추위에 비례한 난방시설이 탁월한 이유도 포함된다. 싱가폴의 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11월 26,27일)는 섭씨 36도에서 38도를 기록했다. 그러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부자 나라답게 어딜 가나 잘되어 있는 냉방시설 때문이었다. 그러나 태국의 푸켓은 사정이 달랐다. 한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제법 잘 갖추어진 관광지가 되겠지만, 캐나다를 기준으로 한다면 미흡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찌는 더위와 습도는 견디기가 힘들고, 리조트를 제외한 지역의 무질서와 불결함이 불편했다. 또 하나는 가게와 가정집들 입구에 설치된 금빛으로 치장한 불상들이다. 분명, 복을 비느라 모셔(?) 두었겠지만, 그들이 복을 받고 사는지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복을 물질에 두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덤으로 물질의 축복까지 받아서, 세계의 갑부들이나 나라들도 모두 선진국 대열에 앞장 서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행은 견문을 넓혀 준다. 그러나 아직도 현실과 맞지 않는 옛 풍습을 고집하거나,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견문이 좁은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도 선진국 여행을 많이 한 사람들과 후진국 여행을 주로 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자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지, 여러가지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임을 이번 여행에서도 확인을 한 셈이다. 페이스북에서 뜻밖에도 학교 후배되는 장로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장로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장로님은 선교에 뜻을 세우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일하면서 선교하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계심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부럽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 장로님의 따님이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신다. 사위가 의사 선생님이라는데, 이 따님 또한 변호사로서 부족함이 없지만 그래도 혼수문제가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한국실정이 실정인 만큼 예단 걱정을 하고 계셨는데, 사돈댁에서 너무나 힘든 예단을 요구하셨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시편 119편을 암송해 올 것”이 예단을 대신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복받은 두 집안이 아닌가!! 장로님께서는 황당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기뻐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간증하셨다. 그런 예단을 요구한 사돈네가 부럽고,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이야기이다.


진정한 ‘복’ 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때, 우리나라의 기독교도 기복신앙에 치우치던 시절이 있었다. 예수 믿으면 집사고 영주권 얻는다고 선전(?)하는 가정교회 사역원 이란 곳이 바로 이런 기복신앙을 이용한 속임수 인데도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복’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복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행복과 평화의 복이다. 값비싼 예물로 열쇠가 몇 개씩인지가 복의 저울이 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대로 살았기에 자녀들이 축복받고 성공하여,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주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예단 대신 말씀을 암송해 오라는 신랑 집안이나, 사재를 털어 선교에 나서겠다는 집안이 서로 사돈이 되었으니, 그 자손들이 번창하고 하늘이 내려주는 신령한 복으로 가득 채워질 것은 보지 않아도 이미 아버지께서 준비하셨음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혼수나 예단이 없으니 다행이지만, 만약에 이런 것을 요구하거나 받기를 원하시는 가정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자손 대대로 복의 근원이 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예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