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은둔 수도자 안토니를 세상에 소개했던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296?~373) 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모델입니다.
옥석은 옥석을 알아본다고 했나요? 아타나시우스는 은둔 수도자 안토니의 깊은 영성을 한눈에 알아 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이 둘은 전혀 다른 두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둘 사이에는 무엇인가 통한 것이 있었나 봅니다.
불교에서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있습니다. 이판은 수도를 하는 스님을 가르키는 말이고 사판은 세상 속에서 포교를 하고 사찰의 행정을 관장하는 스님을 말합니다. 안토니는 굳이 말하자면 수도를 하는 이판격이고 아타나시우스는 포교와 교회행정을 맡은 사판격입니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방법은 달라도 많이 다른 길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영적으로 혼돈스러웠고 신학적으로 논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에 환멸을 느낀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 사막으로 나가 안토니 처럼 수도승이 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세상을 등지고 사막으로 나가기 보다는 세상안에서 신앙의 정도(正道)와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적인 삶을 산 크리스천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 아타나시우스는 악을 직면하여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앙의 절개와 신학의 정도를 지켜낸 사람으로 꼽습니다. 그는 30대의 젊은 나이로 당시 동방 최고의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에 올랐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그후 46년간 다섯번의 파면을 당하였고 20여년 동안 은거와 도피의 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당하는 고난을 기쁨으로 여기며 당시 만연했던 교회내의 이단사상들과 끝까지 싸워 그리스도의 신성을 교회에 정착시켰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진흙탕 싸움입니다. 영적으로 혼탁해 있고 신학적으로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교회에 돌을 던지며 비판을 합니다. 그리고 아예 교회를 떠나서 교회해체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어느 누구하나 교회를 위해 기꺼이 돌을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자리에서 큰소리 높이기를 원하지 돌맞는 자리에서 묵묵히 교회를 지켜나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타나시우스! 그는 그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신앙의 순수함과 신학의 올곧음을 지켜낸 사람입니다. 교회를 향해 날아오는 돌을 맞고 억울하게 유배를 당해도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 사람이었습니다.
은둔 수도자 안토니의 영성이 혼돈과 황량함의 시대에 사막에서 피어낸 선인장이라면, 아타나시우스의 영성은 흙탕물 속에서 아름다움을 토해낸 연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최봉규 목사 - 토론토 드림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