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을 놓고 오랜만에 ‘여론 통일’이 됐다.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이 이처럼 똑같은 목소리로 부정적 평가를 일제히 쏟아낸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그만큼 기자회견에서 확인된 박 대통령의 ‘고집과 불통’은 심각했고, 국민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인식의 간극은 넓고도 깊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청와대는 이런 상황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언론의 부정적 평가에 대해 “여러분의 시각을 존중하고, 여러분이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여론의 반응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긴장된 분위기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이런 내용의 기자회견에 여론의 집중포화가 쏟아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비선세력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으로 청와대의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국민의 의견이 하나로 모여 있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민심의 아우성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청와대 의사 결정의 ‘악순환’이다.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을 성공시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책임자는 바로 김기춘 비서실장이었다. 그런데 김 실장 자신이 기자회견의 ‘아킬레스건’인 상황에서 무슨 제대로 된 참모 판단과 건의가 이뤄졌겠는가.
김 실장이 버티고 있는 한 기자회견의 뒷수습 역시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기자회견 이후 들끓는 민심을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할 리도 만무하고, 제대로 된 여론 진정 방안을 찾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에 대한 ‘무한 애정’을 과시한 대통령에게 새해 기자회견이 ‘실패작’이라고 말할 리 있겠는가. 오히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더욱 가리려 할 것이다. 결국 ‘청와대 인적쇄신 거부→국민 여론의 잘못된 해석→그릇된 국정운영’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을 통해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천명했다. 시쳇말로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 기차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박 대통령의 전통적인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새해 기자회견은 민심 이반을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철길에는 적신호가 켜져 있는데 기차는 계속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회견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밝힌 내용도 실망스럽다.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임에도 발언 내용은 기존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현안인 대북전단 살포 문제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문제와 주민 갈등 최소화 및 신변 위협 해소 필요성을 잘 조율해 지혜롭게 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은 일정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민간 차원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대화와 협력의 통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한 것도 긍정적이다. 인도적 지원과 경협 확대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할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동력이 떨어지는 원칙적 언급에 그쳤다. 설 전후 이산가족 상봉과 광복절 70돌 기념 공동행사 제안은 남북관계를 풀 전략이라기보다 할 수 있는 행사의 예시에 가깝다. 게다가 핵심 쟁점인 5.24 조치 해제 문제에 ‘그 얘기를 하려면 당국자 회담에 나와라’고 한 것은 공을 다시 북쪽에 떠넘기는 태도다.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적극적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 남북관계 개선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서서 망설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